▲ 세종대왕 동상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과 명함을 주고받으며 상대방의 직급을 파악하고, 나이 묻는 것이 실례라는 걸 알면서도 굳이 상대방의 나이를 알려 든다. 물론 이것은 상호 존중에 익숙하지 않고, 서열을 나누어 제자리(?)를 찾아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의 독특한 습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분의 높낮이를 확정하지 않고서는 상대방을 호칭할 수도, 일컬을 수도 없는 한국어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와 상관없이 무조건 존대하는 '매너 있는' 사람도 있지만, 사회적 서열을 언어생활에서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또한, 우리는 친근한 사람과 서먹한 사람을 구별하고 싶어 한다(예전에 어떤 모임에 참석했는데 나머지 사람들이 전부 자기네끼리 반말을 하면서 내게만 높임말을 할 때 소외되는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어라는 언어 자체가 높낮이를 전제한다는 사실이다. 영어에서 명사를 인칭 대명사로 나타내려면 선행사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알아야 하는 것처럼, 한국어에서 어미를 선택하려면 주체, 상대방, 대상이 나보다 높은지 낮은지 알아야 한다. 이것을 문법성에 빗대어 문법존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어제 드신 막걸리 상했어요"라는 문장과 "어제 마신 막걸리 상했어요"라는 문장을 비교해보자. '상했어요'의 해요체를 쓴 걸 보면 상대방은 말하는 이보다 높거나 격식을 차리는 사이임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문장에서 '먹다'의 높임말 '들다'를 선택하고 주체 존대의 선어말어미 '시'를 붙인 것을 보면 '드시다'의 주체는 상대방이다. 이에 반해 두 번째 문장에서는 예사말인 '마시다'를 썼으므로 주체 존대를 하지 않았다. 따라서 상대방이 아니라 말하는 이가 '마시다'의 주체임을 알 수 있다.
영어 문장을 번역하다 보면, 문법성이 문장의 의미(이를테면 대명사의 선행사)를 이해하는 단서로 쓰일 때가 많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어에서도 문장에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정보를 문법존대를 통해 알아낼 수 있다.
한국어의 존대법, 친소 표지로 바뀌었으면일각에서 교사와 학생이 서로 별명을 부르고 반말을 하며 권력 관계를 극복하려는 실천을 벌이는데, 이 글에서 보듯 한국어의 존대법은 현실의 권력 관계를 반영하거나 고착화하는 것 외에도 순수한 문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물론 영어의 문법성이 언어 생활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문제가 있듯―이를테면 "Is it your brother or your sister who can hold his breath for four minutes?"(출처: 스티븐 핑커, <The Sense of Style>)라는 문장에서 'his'라는 대명사가 남성과 여성를 통칭하는 것―한국어의 문법존대도 나이, 신분, 지위의 차이를 강요하는 문제가 있다.
언어적 장치는 힘이 세기 때문에, 우격다짐으로 바꿀 수 없다. 문법존대를 강제로 없애면 또 다른 '문법 젠더'(종류로서의 젠더)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어의 존대법이 높낮이가 아니라 친소(親疏)를 나타내는 표지로 바뀌었으면 좋겠다(이를테면 아이가 자기 엄마 아빠에게는 반말을 하면서 친구 엄마 아빠에게는 높임말을 하는 것). 세상이 평등해져야 언어가 평등해지는 것인지, 언어가 평등해지면 세상이 평등해질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조금씩 변해가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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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회사에서 번역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환경단체에서 일했다. “내가 깨끗해질수록 세상이 더러워진다”라고 생각한다. 번역한 책으로는『새의 감각』『숲에서 우주를 보다』『통증연대기』『측정의 역사』『자연 모방』『만물의 공식』『다윈의 잃어버린 세계』『스토리텔링 애니멀』『동물과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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