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에게 묻고 싶다... "무슨 생각하고 있어?"

영화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와 클라라의 상관관계

등록 2015.07.16 14:41수정 2015.07.1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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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클라라. 사진은 지난 1월 7일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 이정민


클라라가 느꼈다는 '성적 수치심'에 우리는 그녀 편에서 발끈했었다.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이나 백화점 모녀의 폭행 논란으로 '갑질'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이 거셌고, 직장 여성 중 50% 이상이 사내 성희롱을 겪었다는 설문 결과도 있었다. 고 장자연씨 사건으로 수면에 오른 연예인 성상납 논란도 무의식 중에 떠올랐는지 모른다.

그녀에게 수치심을 줬다는 60대의 소속사 회장은 심지어 무기중개상에다 고액체납자라고 했다. 그러던 중 두 사람 간의 대화 내용이 공개됐고, 클라라가 전속계약을 위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배신감을 줬고, 우리는 주저없이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여기까지가 우리가 아는 진실이었다. 하지만 15일, 검찰이 공동협박 혐의로 고소당한 클라라와 그녀의 아버지를 각각 '죄가 안 됨'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오히려 검찰은 클라라를 피고소인으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회장으로부터 협박을 당했다는 진정을 접수하고 이 회장을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조사 결과, 이 회장은 "너한테 무서운 얘기지만 한순간에 목 따서 보내버릴 수 있어, 불구자 만들어버릴 수도 있고 얼마든지 할 수 있어"라면서 협박했다고 한다.

(* 아래 내용에는 영화 <나를 찾아줘>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 그리고 우리 현실의 클라라

올해 들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클라라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영화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를 바라보는 관객의 그것과 묘하게 닮았다.

우리는 사라진 에이미를 추적한 방식처럼, 차례차례 제시되는 제한된 단서들로 클라라의 진실을 추적해왔다. 그녀는 권력에 의해 짓밟힌 연약한 피해자였다가, 자신의 잘못을 무마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음해하는 교활한 거짓말쟁이가 됐다(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미디어는 자극적인 맛과 강한 향의 재료들을 테이블에 올렸다. 대중은 자극적인 입맛대로 클라라를 가능한 한 맛있게 요리했다. 그렇게 끝난 줄만 알았는데, 새로운 재료가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반전에 반전이 거듭됐다.

영화 <나를 찾아줘>(2014)의 두 주인공인 에이미와 닉의 관계는,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을 듯 한 상투적이고 전형적인 부부의 모습이다. 로맨틱한 만남과 결혼에서 권태기에 다다른 부부의 갈등과 외도까지.

이 흔해빠진 부부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드는 건, 에이미가 사라지고, 나타나고, 돌아오는 과정에 동반되는 부부 각자의 증언과 이를 대하는 미디어의 태도 그리고 대중의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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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를 찾아줘>의 한 장면. 오프닝과 엔딩 장면에서 에이미는 남편 닉에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라고 의미심장하게 묻는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초반 에이미의 편에 섰던 관객들은 결국 닉의 편으로 완전히 돌아서지만, 두 사람의  두개골 속 진실은 요원하다. 정도의 차이일 뿐, 에이미와 닉 모두 스스로를 숨기거나 덧붙이고, 우리는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것도 모른 채 진실게임에 몰두하게 된다.

'Control freak' 이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조종하는 괴물'쯤인데, 이는 영미 문화권에서 '만사를 자기 뜻대로 하려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지칭하는 데 쓰인다. 영화 속 닉에게 있어서 에이미는 치밀하고 계획적인 Control freak이고, 사건을 확대 재생산해 대중은 물론 공권력(경찰)마저도 조종하는 미디어 또한 거대 Control freak인 셈이다. 휴일에 소파에 누워 TV 뉴스를 보거나, 퇴근길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읽는 우리는 '씹을 거리'를 원하고, 미디어는 그런 우리를 위해 상투형(stereo type)을 이용한다.

'폭력적인 외도 남편, 아내 살해 후 실종 위장'이라는 쉽고도 자극적인 사건은, 에이미의 빈틈 없는 구성을 통해 리얼리티까지 부여받는다. 익히 들어왔고, 또한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대중은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인다. 놀라운 지점은, 닉의 진심 어린(듯이 보이는) TV 인터뷰가 대중의 호감을 사게 되는 부분이다. 미디어가 제시하는 강력한 반전 앞에, 손바닥을 뒤집는 것 만큼이나 간단하게 태도를 바꿔 드라마에 열광하는 대중의 모습은 무력함 그 자체다.

스마트폰을 등에 업은 요즘의 인터넷 뉴스는 마치 지능적인 스팸메일 같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헤드라인들은, 평소의 관심사가 아닐지라도 우리의 손가락을 향하게 만드는 마력을 가졌다.

그렇게 2년 전 '클라라 레깅스 시구' 는 그녀를 독보적인 섹스 심볼로 만들었고, 올해 초 소속사와의 분쟁은 그녀를 '구라라' 로 전락시켰다.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녀는 미디어를 효과적으로 이용해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고, 하루아침에 미디어와 대중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제와 밝혀진 새로운 진실 앞에서, 클라라가 여성 연예인으로서 겪은 피해를 책임질 이들은 어디에도 없다.

'스타의 사생활'은 대표적인 가십거리 중 하나이고, 가십 속에서 진실을 찾기란 애초부터 요원한 일이다. 클라라와 이 회장의 법적 공방이 이렇게 마무리된다고 해도, 우리는 클라라의 이야기가 이대로 끝나기를 원치 않는다.

<나를 찾아줘>에서 TV쇼에 출연한 닉의 감동적인 인터뷰처럼, 이제 클라라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우리는 귀가 얇지만 의심도 많고, 잔인하면서도 관대하니까. 클라라를 다시 사랑할 준비가 된 지금, 우리는 그녀에게 묻는다.

"클라라,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클라라 #나를찾아줘 #폴라리스 #데이빗핀처 #이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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