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폐로마저 '경제성'? 안전과 미래 생각해야

[서평] 탈핵 실천을 위한 안내서 <탈바꿈>

등록 2015.07.21 14:07수정 2015.07.2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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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고리원전 1호기 폐로'를 결정했다는 소식을 인터넷 기사를 통해 접했다. 후쿠시마 사태처럼 만약 고리원전에 문제가 생길 경우, 피해반경에 속하는 양산에 사는 나로서는 환영할 만한 소식이었다. 매우 어려운 싸움 끝에 드디어 탈핵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기사를 끝까지 읽어보니 헛웃음부터 나왔다. 폐로를 결정한 이유가 가관이었기 때문이다.

폐로 결정 사유에는 탈핵은커녕 경제논리만 가득했다. 언론보도로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에너지위원회 논의결과 브리핑에서 "폐로 산업을 키우기 위해 (고리원전 1호기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과 "2030년 이후 가시화될 가능성이 있는 세계 원전 해체시장의 본격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고 했단다. 다시 말하면 고리원전 1호기 폐로 결정에 있어 '탈핵'의 의미는 없었다는 것이다.


가까운 거리인 일본에서 후쿠시마 사태가 벌어진 지 채 5년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이어야 할 정부부처에서 '경제성'을 폐로 결정의 이유로 내세웠다.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일으킨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가장 큰 이유는 빈약한 국민적 압박이라고 생각한다. 탈핵에 호응하는 거센 국민적 압박 없이 정부를 움직이기란 힘든 일이다. 탈핵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기 위한 홍보가 절실하다.

이러한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고 탈핵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가 있다. 바로 '탈바꿈 프로젝트'다.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이라는 의미를 담은 탈바꿈 프로젝트는 핵발전의 위험성과 탈핵의 가치를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탈핵이라는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까지 담아 하나의 책으로 엮었다. <탈바꿈>이라는 책이다.

핵발전은 값싼 에너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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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바꿈>, 책 표지 ⓒ 오마이북

나는 지금까지 핵발전은 수력 또는 화력발전보다 '값싼 에너지'라고 알고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이렇게 배웠고, 주변에서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내게 핵발전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에너지'였다. 텔레비전의 공익광고에서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철석같은 믿음은 후쿠시마 사태 이후, 완전히 깨져버렸다.

값싼 에너지와 친환경 에너지라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던 핵발전소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핵발전은 본래 '값비싼 에너지'며 '환경에 해로운 에너지'였다. 정부가 그동안 값싼 에너지라고 홍보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핵발전소 가동 중단 시 해체 비용과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비용 등 '사후 처리 비용'이 빠져 있었다. 그럴 뿐만 아니라 관련 사고 발생 시 드는 천문학적인 처리비용도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핵발전소는 다른 발전소와는 달리 사후 처리 비용이 막대하다. 우리나라는 이제야 경주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이 지어졌다. 하지만 핵발전 이후 나오는 폐연료봉을 처리하는 고준위 방폐장은 아직 공론화조차 되지 않았다. 여론 수렴에서 시작해 방폐장 건설까지 이르는 데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실제로 후쿠시마 지역은 쓰나미 등에 의한 직접적인 사망자보다 핵발전소 사고가 영향을 준 간접 사망자가 더 많습니다. 힘든 피난 생활로 질병을 얻거나 절망감을 느낀 후 자살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럼에도 정부 및 이권을 챙기려는 쪽에서는 다양한 이유를 대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핵발전소의 재가동과 이권 구조 회복을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본문 33쪽)

또한 안전사고 처리비용은 어떤가. 체르노빌부터 후쿠시마까지, 핵발전소는 한 번 사고가 터지면 주변은 폐허가 된다. 만약 사고가 발생했을 때 드는 복구비용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금액일 것이다. 정부가 이에 대비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전력생산 비용만으로 값싼 에너지라고 칭하기에는 어불성설이다.

차별을 조장하는 에너지

"핵발전은 정의롭지 못한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에너지를 가장 적게 쓰는 지역과 사람들이 오히려 가장 큰 희생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라늄 채굴 지역에서는 대대손손 그 땅에서 살아온 주민들이 강제로 쫓겨나고 암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핵발전소가 지어지는 바닷가 인근 주민들도 경작지와 어장을 잃고 방사능 오염에 위협당하고 있습니다.

또 희생 속에 만들어진 전기는 대형 초고압 송전탑을 통해 에너지 소비가 많은 대도시와 대공장으로 보내집니다. 그 과정에서 산림을 비롯한 논밭이 훼손되고,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전자파의 위협에 노출됩니다. 그러나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대도시 사람들은 해당 지역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환경 파괴, 주민들의 희생을 잘 알지 못합니다."(본문 181~182쪽)

우리나라 핵발전소는 모두 외곽에 있다. 동해안(고리, 월성, 울진)에 19기가 있고 서해안(영광)에 6기가 있다. 부산을 제외한다면 모두 우리나라 주요 도시와 상대적으로 먼 곳에 있다. 핵발전이 안전하다면 왜 서울 인근에 짓지 않을까. 대부분의 전기를 수도권에서 소비하는 데, 왜 생산은 수도권이 아닌 곳에서 이뤄져야 하는지 의문이다.

핵발전소가 생산한 전기를 보내려면 대형 초고압 송전탑이 필요하다. 핵발전소가 외곽에 있기 때문에 대도시까지 가려면 많은 송전탑이 지어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송전탑 용지로 선정된 주민들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밀양 송전탑 사건'이다. 왜 핵발전소의 송전을 위해서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생겨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핵발전소는 인근 주민의 암 발병률을 높인다. 지난해 10월, 부산에서 "갑상샘암의 경우 원전 주변 지역에서 발병률이 높고 갑상샘과 방사선 노출과의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논문 등이 발표됐기 때문에 피고의 책임이 인정된다"는 1심 재판부의 판결이 나와 주목받은 바 있다. 왜 다른 곳의 전기 공급 때문에 핵발전소 인근 주민이 고통받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저당 잡은 미래를 돌려주자

"지금 핵발전에 대한 모든 결정권을 쥔 사람들은 어른들이고, 청소년들은 결정권도 발언권도 없고 의견을 낼 수도 없습니다. 분명 우리가 더 많은 시간을 살아갈 것이고 더 많은 시간을 핵발전소, 핵 쓰레기와 함께 보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본문 216쪽)

앞서 언급했듯이 핵발전은 사후 처리 비용이 천문학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하면 미래를 담보로 줄기차게 전기를 써대고 있다. 우리는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래 세대는 우리가 아무 대책 없이 쌓인 핵폐기물을 처리하느라 골머리를 앓을 것이다.

과거 수많은 전쟁이 있었을 때, 청년들은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어른임에도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왜 청년인가?"라며 비토(veto)했다. 핵발전소 건설 결정에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겠다. "핵발전소 건설을 결정하는 것은 어른임에도 핵폐기물을 감당하는 것은 왜 청년인가?"라고 말이다.

우리는 모든 결정에 있어 다음 세대를 염두에 둬야 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소모해버리면 다음 세대는 그만큼의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탈핵을 위한 실천을 시작해야 한다. 고리원전 1호기 폐로가 탈핵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폐로의 논리가 '경제성'이 아니라 '탈핵'이 되도록 끝까지 압박해야 한다. 탈바꿈, 꿈이 현실이 되는 그 날까지 말이다.

"탈핵을 위한 실천은 아주 사소한 일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주변에 알려야 합니다.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함께해야 합니다."(본문 222쪽)
덧붙이는 글 <탈바꿈>(탈바꿈 프로젝트 엮음/ 오마이북/ 2014. 11/ 정가 1만6000원)

이 기사는 본 기자의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탈바꿈 -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

탈바꿈프로젝트 엮음, 히로세 다카시 외 지음,
오마이북, 2014


#핵발전소 비판 #탈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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