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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 '스타워즈7'...리부트 쏟아지는 이유

[김성호의 씨네만세 69] 리부트 영화의 빛과 그림자

15.07.24 09:15최종업데이트15.07.2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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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부트 전성시대의 포문을 연 <배트맨 비긴즈>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제임스 카메론의 전설적인 시리즈가 지난 2003년 조나단 모스토우의 평이한 오락물 <터미네이터 3-라이즈 오브 더 머신>으로 마무리됐을 때, 많은 영화팬은 찝찝하지만 어쩔 수 없는 종결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이 유망한 시리즈를 그대로 끝낼 수 없었던 제작사가 2009년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을 선보였고 올해 다시금 시리즈의 상징과도 같은 아놀드 슈워제네거까지 불러와서는 새로운 속편을 내놓았다. <터미네이터>가 명실상부한 현역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중심에 선 것이다.

사실 오래된 시리즈가 다시 태어나고 꾸준히 이어지는 건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한 달 앞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오리지널 시리즈 연출자 조지 밀러와 함께 돌아왔고, <쥬라기 월드> 역시 스티븐 스필버그의 지원에 힘입어 <쥬라기 공원 3>가 막을 내린 지 14년 만에 개봉하지 않았던가.

끝난 것 같았던 블록버스터가 리부트 형식으로 다시 돌아오는 현상은 2000년대 중반 들어 가속화되었다. 2005년 크리스토퍼 놀란이 <배트맨> 시리즈를 3부작으로 다시 만든 것을 시작으로 브라이언 싱어가 <수퍼맨 리턴즈>를 내놓았으며, 그 뒤를 <300>으로 유명한 잭 스나이더가 <맨 오브 스틸>로 이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브라이언 싱어 등 할리우드에서 손꼽히는 감독들이 DC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블록버스터 히어로물을 연출해 상당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산업에 뛰어든 코믹스 회사들은 2000년대 중반 DC코믹스의 <다크나이트>, 마블의 <아이언맨>의 성공을 통해 할리우드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여러 작가가 서로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내놓는 작업을 꺼리지 않았던 코믹스 업계의 문화는 영화계에도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코믹스의 리부트 문화, 영화계를 물들이다

마블 시리즈 최고의 리부트로 평가받는 <인크레더블 헐크> 포스터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어느 방향으로든 지나치게 나아갔던 이안의 <헐크>를 5년 만에 에드워드 노튼 주연의 <인크레더블 헐크>로 밀어버린 것도 코믹스의 문화가 아니었다면 상상하기 힘들었다.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스파이더맨>과 <엑스맨>이 새로운 콘셉트로 돌아온 것도 이러한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리부트 열풍은 비단 코믹스 기반 영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2005년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장을 평정한 피터 잭슨 감독은 <킹콩>을 부활시키며 괴수물의 새 장을 열었다. 이는 1998년 롤랜드 에머리히의 <고질라> 이후 대가 끊겼다고 평가받은 괴수물의 부활이란 점에서 상당한 업적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경쟁사의 성과에 자극을 받은 워너 브라더스도 2014년 <고질라>를 내놓았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2007, 2008년에는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영원한 맞수인 실베스타 스텔론이 자신의 대표작 <록키>와 <람보>를 마무리했다. 어디 그뿐인가. 지난해에는 <터미네이터>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한 <로보캅>이 브라질 출신의 기대주 호세 파딜라를 통해 14년 만에 부활하기도 했다.

J.J. 에이브럼스가 <스타트렉: 더 비기닝>을 무덤으로부터 끌어낸 덕분에 우리는 말로만 듣던 시리즈를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로 재능을 인정받은 저스틴 린이 J.J. 에이브럼스의 뒤를 이어 내년 개봉하는 세 번째 편의 감독을 맡는다.

J.J. 에이브럼스는 <스타트렉>의 영원한 맞수인 <스타워즈>의 연출자로 이적을 확정했다. 그가 연출하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는 6편으로 완결된 시리즈의 30년 후 이야기로 단순한 속편이 아닌 리부트 1편 격의 작품이다. 오리지널 시리즈의 핵이라 할 만한 아나킨 스카이워커(다스베이더)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 주목된다.

끝나버린 줄만 알았던 시리즈가 화려하게 부활한 건 <스타트렉> 뿐이 아니다. 길고 긴 역사 속에 서서히 무너져가던 <007>도 극적으로 부활했다. 부드럽고 우아한 007에서 터프한 007로 일대 변혁을 꾀한 <007 카지노 로얄>을 통해서다. 다니엘 크레이그를 앞세워 찍어낸 이 영화를 시리즈 최고의 명작으로 꼽는 팬도 적지 않다.

왠만한 영화는 모두 리부트, <백 투 더 퓨쳐>와 <에이리언>은?

80년대 독보적인 SF <백 투 더 퓨쳐>도 리부트로 되돌아올까? ⓒ 유니버셜


할리우드 오락영화의 거두 롤랜드 에머리히와 스티븐 스필버그도 각각 <인디펜던스 데이 2>와 <인디아나 존스 5>를 준비 중이다. <인디펜던스 데이 2>는 20년의 공백을 딛고 등장하는 리부트 버전이며, <인디아나 존스 5>는 19년 만에 리부트된 <인디아나 존스 4>의 속편이다. 더 오랜만에 나온 영화도 있다. 메간 폭스가 주연한 <닌자터틀>은 <닌자거북이> 이후 무려 24년 만에 등장했다.

이쯤 되니 리부트 된 명작이 그렇지 않은 작품의 수를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에이리언> <백 투 더 퓨쳐> 정도 말고는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한 시리즈물 가운데 리부트되지 않은 영화를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다.

한 시절을 풍미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유행처럼 부활하는 건 단순히 신선한 소재의 고갈 때문만은 아니다. 전작의 높은 명성에 기댈 수 있다는 실리적 판단과 규모가 성공을 담보한다는 믿음이 시장에서 거듭 검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발전한 기술력이 검증된 구성과 만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역시 작지 않다.

이를 위해 영화는 오리지널 시리즈의 향수를 강화하고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진일보한 기술력을 선보이려 노력한다. 이야기의 규모가 커지고 등장하는 인물도 많아지며 부서지는 물건도 늘어난다. 검증된 구성이 있으니 새로운 스타일은 필요하지 않다. 기존의 매력을 고스란히 살리면서 한두 가지 변화를 주면 그만이다. 마치 성공한 모델을 출시한 후 이렇다 할 혁신이 없는 휴대전화 단말기 시장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리부트가 활성화된 현재의 영화시장은 관객에게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여준다. 빛은 사장된 과거의 명작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보여준다는 것이고, 그림자는 대부분의 제작사가 주어진 틀에 만족할 뿐 혁신적인 작품을 내어놓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빛과 그림자 가운데 어느 쪽의 영향력이 더욱 강할 것인지는 오래 두고 살펴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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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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