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륭행궁 건륭제는 광악루 안에 행궁을 만들고 강북 제일의 풍경으로 여겼다고 한다.
김대오
꿈에 나타난 노반, 누각 건설에 도움
누각 안으로 들어서자 장인의 신으로 불리는 노반(魯班)상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광악루를 건설할 당시 한 장인의 꿈에 노반이 나타나 광악루의 설계도를 전해줬으며 공사가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꿈에 노반이 등장해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노반상 위로 절묘한 하늘의 솜씨라는 의미의 '교탈천공(巧奪天工)'이 쓰여 있는데 마지막 황제 부의의 동생인 부걸(溥杰)이 1988년 쓴 것이라고 한다. 광악루는 장인의 신 노반이 와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경이롭고 빼어난 누각임을 자랑하고 싶은 전설과 글귀인 셈이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어두운데 방화를 위해 광악루 전체에 전기시설을 설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누각 2층은 바로 건륭제의 행궁이다. 행궁 안에 청대 그려진 <남순성전도(南巡盛典圖)>가 있는데, 랴오청이 경항운하의 중심으로 얼마나 경제적 호황을 누렸는지 짐작하게 한다. 건륭제의 재위기간은 강희제 61년에 이어 두 번째로 긴 60년인데 전국 각지에 36개의 행궁을 두었다. 건륭제는 광악루 안의 이 행궁을 강북 제일의 풍광으로 아꼈다고 한다.
건륭행궁에서 3층으로 올라서자 누각 중간에 마름모꼴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지만 대체로 어둡고 더 좁아진다. 위를 올려다보자 광악루 내부를 지탱하는 11.58m 높이, 32개의 버팀목이 견고하게 둘러쳐져 있다. 못을 사용하지 않고 구조적 결합으로 이렇게 크고 높은 누각을 버틴다는 것이 놀랍다.
왕지환의 시 <등관작루(登觀雀樓)>의 마지막 구절처럼 천리 밖 더 멀리 내다보기 위해 한 층의 계단을 더 오른다(更上一層樓). 광악루 제일 높은 곳인 4층에 올라서자, 군사초소답게 사방의 창문으로 동창호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역사기록엔 광악루 정상에서 맑은 날이면 동쪽으로 태산이 보였다고 하는데 약 130km 밖의 태산이 육안으로 관측 가능한지는 의문스럽다. 다행히 날씨가 맑아 시안을 모방한 바둑판 모양의 랴오청고성은 구석구석 내려다보인다.

▲광악루의 정상 바둑판 모양의 랴오청고성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김대오
특히 서쪽 창문 틀 안에 동창대교가 멋진 모습을 드러내는데 322m 다리에 266개의 <수호지> 명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고성의 기와 너머로 멀리 새롭게 건설된 고층빌딩들이 원근의 조화를 이룬다. 푸른 하늘과 동창호의 푸른 물빛도 엷은 경계를 안개 띠처럼 펼치며 풍광을 뽐낸다. 역사와 문화, 고대와 현대, 자연미와 인공미가 어러지는 모습을 한꺼번에 관람한 느낌이다. 비교적 낯선 도시였던 랴오청이 고성을 정비하여 전통의 멋을 되살리며, 대운하의 길목인 동창호를 새로운 성장 동력 삼아 도약을 준비하는 도시라는 것이 단박에 느껴진다.

▲광악루의 연꽃 조정 천장을 장식하는 조정(藻井)으로 연꽃이 꼭대기에 매달려 있다.
김대오
아쉬운 걸음을 돌려 내려오려다 문득 천장을 올려다 보니 그곳에 붉은 연꽃이 피어있다. 호숫가에나 피어있을 연꽃이 누각의 꼭대기에 조각되어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이다. 자투리 나무로 이 멋진 누각을 만든 장인들의 마지막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오래 오래 누각이 호숫가를 지키는 것이었으리라. 나무로 만든 누각의 취약성이 바로 '불'이기 때문에 장인들은 마지막까지 물에서 피는 연꽃으로 이곳이 불타 소실되지 않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연꽃 덕분인지, 장인들의 정성이 갸륵해선지 광악루는 건축 이후 640년 동안 한 번의 화재도 없이 온전한 모습으로 보존되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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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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