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고차 월든 표지 잉여 청춘의 학자금 상환 분투기 <봉고차 월든> 표지사진.
문학동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켄을 통해 학자금으로 저당 잡힌 청춘에 대한 공감은 많이 했다. 하지만 끝까지 읽어 내려가는 것이 아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통스러웠고 외면하고 싶은 현실들을 직접 마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 장, 한 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으며 다시 손을 뻗어 읽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켄이 변하지 않는 현실에 무기력해지는 모습만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학자금으로 인해 좌절하고 힘들어했지만, 그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인생 중 순간을 놓쳤을 때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저 대출을 갚기 위한 인생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원하는 것을 이루고, 보고 느끼고 싶었던 것을 드러낸다. 내적 욕망이 강한 청년이었다.
학자금으로 인해 하루살이 같은 삶을 살았지만 그 안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것. 이를 실천으로 옮겨 그는 알래스카로 간다. 알래스카에서 다양한 업무를 하며 돈을 갚아 나가고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꽤 만족하는 삶을 살았다. 알래스카에서 일하며 학자금을 드디어 다 갚던 순간, 인문학과 철학에 대한 욕심을 갖고 대학원 진학을 꿈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편하게 갈 방법을 두고 고민한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새미와 함께 히치하이킹을 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켄은 대학원 진학을 위해 짬짬이 일을 하며 자신이 원하는 모습대로 삶을 움직인다.
이후 켄은 대학원 진학에 성공한다. 또다시 등록금으로 인한 빚을 지고 싶진 않아서 봉고차 생활을 하게 된다. 모든 행동의 원인에는 학자금이 있었지만 켄은 대출 상환에 파묻힌 삶을 살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그에게 더 호기심을 갖고 책을 끝까지 잡게 해 준 이유였다.
다 때려치우고 하고 싶은 것 하며 살아가고 싶지만 빚과 다른 현실의 짐 때문에 무기력하게 사는 현대인들. 우리에게 켄의 자유분방함은 동경과 대리만족의 시원함을 선사해준다.
수백만 명의 다른 대학 졸업생들과 달리 그나마 일자리라도 있으니 행운이라고 생각하거나,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굶주리고 에이즈를 앓으며 참전 중인 이십대들보다는 나은 처지라고 쉽사리 내 상황을 정당화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나쁜 상황에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그렇게 하는 것은 일종의 체념 행위 같았다. 그 대신 나는 비통함과 증오,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을 가슴에 품었다. 그런 배은망덕함이야말로 엄청난 빚과 이따위 허드렛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다. (본문 84쪽 중에서)'나만의 알래스카'를 꿈꾸며 살자젊은 날의 여행을 위한 몇십만 원이 사치로 느껴지는 현실. 무엇을 기대하고 꿈꾸며 살 수 있을까? 여전히 불안한 현재의 상황으로 인해 미래를 준비 못하는 청년 세대들은 나를 위한 투자가 점차 망설여진다. 내 삶의 방향이 '빚'에 의해서 결정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무기력해지고 '아무 것도 하기 싫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사실 이런 말이 굉장히 비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떠한 희망도 발견할 수 없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쉽사리 '힘내라'고 말을 하기도 쉽지 않다.
나는 소위 '직업 없는 세대'의 일원이었다. '망가진 세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 세대와 달리 우리 세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취직을 하거나 괜찮은 월급을 받을 수가 없으며, 대학을 졸업한대도 마찬가지다. 이십대에 집을 사고 가정을 꾸릴 만한 경제력을 갖출 수가 없다. 우리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더 빈곤하고 더 불안한 첫 세대가 될 것이다. 이상하게도 이런 현실을 나보다 우리 부모님이 더 안타까워하는 것 같았다. (본문 315 쪽 중에서)사실 책을 읽으면서 무조건 켄처럼 살고 싶단 생각이 드는 건 아니었다. 빚을 내지 않기 위해 봉고차에서 살며 무소유를 미덕으로 삼는 삶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봉고차 월든>에서 켄을 보며 느낀 건 무조건 '빚'만 갚으며 사는 삶이 재미가 없다는 것. 그것 말고도 켄처럼 자유분방하게 사는 것이 정답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켄과 친구 조지는 서로 다른 삶을 살며 빚을 갚아나갔다. 저마다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존중하며 그렇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빚을 다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돈에 혈안이 된 모습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최선을 다해 제 몫을 하고 빚을 갚아나가며 열심히 사는 모습 중 하나라고 느꼈다.
그렇지만 욕심은 생긴다. 물론 나는 봉고차에서 살아야 하거나 알래스카로 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저마다의 알래스카'를 꿈꾸며 살아가는 건, 버텨야 하는 삶에서 자신을 움직이는 희망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나에게 알래스카는 아직 정확히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나만의 알래스카를 꿈꾸며 잔뜩 쌓여있는 학자금을 다 털어내는 그 날까지 현재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 가끔은 무기력하고 가끔은 늘어지더라도 그런 현재를 충실히 즐긴다고 생각하면서.
봉고차 월든 - 잉여 청춘의 학자금 상환 분투기
켄 일구나스 지음, 구계원 옮김,
문학동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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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부추기는 사회, 봉고차에 살며 빚 갚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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