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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인사이드' 백감독, 리들리 스콧이 될까

[김성호의 씨네만세 75] CF감독과 영화감독, 그 가깝고도 먼 거리에 대하여

15.08.19 09:09최종업데이트15.08.1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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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뷰티 인사이드> 포스터 ⓒ NEW


흔히들 광고를 가리켜 자본주의의 꽃이라 이야기한다. 소비자의 잠재된 욕망을 자극해 소비를 이끌어내는 광고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낸 비유다. 광고를 꽃이라 한다면 TV CF(Commercial Film)는 무엇이 될까. 아마도 '꽃 중의 꽃'이라는 장미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경제성장과 함께 집집마다 TV가 한 대 씩 자리를 잡으며 영상의 시기가 도래한 마당에 CF는 활자매체의 한계를 넘어서 개인의 사적 영역까지 곧바로 전달되는 자본주의의 첨병이 되었다.

짧게는 15초, 길게는 1분 정도로 만들어지는 CF는 여러 가지로 영화와 닮아있다. 짜임새 있는 콘티와 미장센에 대한 고민 끝에 탄생하는 한 편의 CF가 본질적으로 영화와 무엇이 다른가 생각해보면 둘의 유사점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영화감독 가운데선 유독 CF 연출자 출신이 많다. 영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유사한 부분이 적지 않아 영화연출의 꿈을 간직한 이들이 임시방편으로 CF 연출에 나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 리들리 스콧 2013년작 <카운슬러> 촬영 당시의 리들리 스콧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조금만 찾아보면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연출자 가운데서도 CF 연출 경력을 가진 감독이 꽤나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에이리언>, <블레이드 러너> 등 내로라하는 명작을 만들어온 리들리 스콧과 흥행 면에서 만큼은 형을 능가해온 토니 스콧의 출발이 CF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특히 리들리 스콧은 세계 3대 광고제로 꼽히는 칸 광고제 그랑프리와 클리오상에서 수상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다.

<플래시댄스>, <나인 하프 위크>, <야곱의 사다리>, <로리타> 등을 연출한 애드리안 라인 역시 CF 감독 출신이다. 스콧 형제와 마찬가지로 영국 출신인 그는 세계적인 광고대행사 J.워터톰슨에 입사해 특유의 감각적인 영상연출 솜씨를 십분 살려 수십 편의 CF를 찍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들리 스콧 만큼이나 CF 업계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은 마이클 베이도 빼놓을 수 없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연출하며 엄청난 인지도와 함께 끔찍한 악평을 쌓아나가고 있는 그는 사실 클리오상과 칸 광고제 등에서 수차례 수상한 특출난 CF 감독 출신이었다. <나쁜 녀석들>, <더 록> 등 끝내주게 재미있던 그의 전성기 작품을 기억하는 팬들에겐 불편한 말이겠지만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에서 펼쳐진 간접광고의 향연은 차라리 마이클 베이의 진면목에 가까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이클 베이와 아트 센터 디자인 대학교 동문인 잭 스나이더도 CF 업계에서 잔뼈 굵은 할리우드 연출자다. 자동차, 스포츠, 음료 등 주요 브랜드 CF를 두루 거친 그는 JEEP사의 광고를 통해 클리오상까지 수상한 바 있다. 그는 이후 CF 감독 출신다운 감각적 연출을 선보인 <300>의 전세계적 성공을 통해 할리우드의 유망한 연출자로 자리잡게 됐다.

앞서 마이클 베이 역시 그런 인물이었지만 CF 뿐 아니라 뮤직비디오까지 폭넓은 활동을 펼친 연출자도 적지 않다. <세븐>, <파이트 클럽>, <조디악>,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나를 찾아줘> 등을 연출하며 세계적인 명감독으로 입지를 굳힌 데이빗 핀처도 그 중 하나다. 나이키 등 스포츠 브랜드 광고부터 흑백 이미지가 강렬했던 마돈나의 'Vogue' 뮤직비디오 등을 두루 연출한 그의 경력은 이후 작품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듯 보인다.

그밖에 <히트>를 통해 총격전 연출에 있어서만큼은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은 마이클 만, <미녀 삼총사> 시리즈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맥지, 색다른 SF <디스트릭트 9>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닐 블롬캠프 등도 CF를 거쳐 영화 연출에 입문한 감독들이다.

▲ 웰컴 투 동막골 CF감독 출신으로는 예외적으로 영화 연출에 성공한 박광현 감독 ⓒ 필름있수다


CF 감독 출신 연출자가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할리우드와 달리 한국 영화계엔 CF 출신 감독이 눈에 띄지 않는다. CF 뿐 아니라 뮤직비디오, 심지어는 드라마 PD 출신 영화감독도 희귀한 상황이다. 2005년작 <웰컴 투 동막골>을 연출한 박광현 감독이 국내 광고 대상 수상 경력이 있는 중견 CF 감독 출신이긴 하지만 이렇다 할 차기작이 나오지 않으며 CF 감독 출신 영화감독의 명맥이 끊어진 모습이다. 드라마 PD 출신 감독으로는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의 오종록, <역린>의 이재규, <조선명탐정 : 사라진 놉의 딸>의 김석윤 등이 있지만 이렇다 할 족적을 새기진 못하고 있다.

사실 영화 연출에 있어 출신은 결정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박광현과 오종록, 이재규, 김석윤의 영화가 영화연출을 전문적으로 공부해 온 다른 감독의 작품에 비해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지 않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변호인>을 통해 평단과 관객 모두를 만족시킨 양우석 감독이나 <더 파이브>의 정연식 감독은 웹툰 작가 출신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명감독으로 손꼽히는 이창동, 굵직한 대표작을 줄줄이 내놓은 유하, 일관되게 감성적인 작품을 발표해온 원태연 등은 소설가·시인 출신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무엇을 전공했고 어떤 직업을 가졌었는지는 영화 연출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언정 결정적인 제약요소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어느 한 감독이 영화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이후에 같은 업계의 후배들이 뒤를 따라 영화 연출에 뛰어들 수 있다는 사실이 수년 간 입증되어 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영화산업의 저변이 넓지 않고 상대적으로 제작환경이 폐쇄적인 등 제도의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리들리 스콧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CF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에서 보듯 선도적인 사례의 존재가 중요한 것도 사실이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한효주 주연의 <뷰티 인사이드>(NEW)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백감독은 백종열이라는 본명으로 광고, 뮤직비디오,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 온 인물로 칸 국제광고제 그랑프리와 클리오상을 수상한 인텔&도시바 합작 소셜 필름 'The Beauty Inside'를 원작으로 삼아 영화 연출에 도전했다. <그놈 목소리>, <설국열차> 등의 오프닝 타이틀을 만들기도 했지만 본격적인 연출은 처음이다.

짧은 호흡의 광고, 뮤직비디오 촬영 경험이 123명의 배우가 연이어 한 인물을 연기하는 작품의 연출에 도움이 될 수 있었을까? 캐릭터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장편 연출이 힘겹지는 않았을까? 영화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해 후배들의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을까? 20일이면 우리는 그 답을 알 수 있다.

▲ 백감독 <뷰티 인사이드> 언론 시사회서 질문에 답하는 백감독(백종열) ⓒ NEW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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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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