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비 청평사 마당에 덩그러니 남은 '청평사 문수사 시장경비' 흔적.
정도길
울창한 숲 속을 얼마나 걸었을까, 편안한 걸음걸이가 끝나는 것을 예고라도 하듯 하늘이 열린다. 온 몸에 땡볕의 열기가 파고든다. 일주문이 없는 터라, 직행으로 청평사에 닿았다. 몇 개의 계단을 오르니 널찍한 절 마당이 나타나고, 뒤로는 암석지대 오봉산이 병풍으로 펼쳐져 있다.
절 마당 한가운데 우뚝 선 안내 간판과 받침돌 하나. '청평사 문수사 시장경비'라는 비석으로, "고려 말 원나라에서 청평사에 보내온 대장경과 사찰 후원금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비석"이라 적혀있다. 마당에는 받침돌만 덩그러니 남았다. 비와 받침돌이 영원하지 못함에 애틋함이 묻어나는 느낌이다.
일주문이 없는 청평사는 처음으로 회전문(보물 제164호)을 지난다. 청평사에서만 볼 수 있다는, 회전문이라는 이름 자체도 낯설다. 회전문을 지레짐작하면, '빙글빙글 돌아가는 문'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런 뜻을 가진 것은 아니다. 중생들에게 윤회전생을 깨우치게 하는 '마음의 문'이란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규모가 작은 회전문은 가운데 한 칸은 통로로 이용되고 양쪽 2칸은 마루가 깔려 있다. 양쪽의 좁은 공간에는 사천왕상이나, 다른 아무런 장식이 없다. 이 문은 1555년경 보우대사가 건립했다고 전해지며, 한국전쟁 때 불탔으나 축대만큼은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천장에는 사찰에서 보기 드문 홍살을 가로로 배열한 것이 특징이다. 좌우로는 같은 규모의 건물 한 동씩이 자리하는데 그 용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대웅전 청평사 대웅전.
정도길
청평사 중심법당은 대웅전. 정면 3칸, 측면 3칸 맞배지붕 건물로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편이다. 중앙계단 소맷돌은 용이나 거북 등을 장식하는 보통 사찰과는 달리 태극문양을 새겼다. 태극문양은 왕실과 관련 있는 건축물에서만 새기는 것을 감안하면 왕궁의 보호를 받는 사찰임을 증명한다. 회전문에 홍살을 설치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불단에는 주불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 협시보살로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셨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 보현보살은 '행을 실천'하는 보살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문수·보현보살이 손에 든 연꽃 위에는 문수동자와 보현동자가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일반사찰에서 보기 드문 형태로 특별나다. 동자의 머리 모양은 중국의 형태를 닮았는데, 불교가 중국을 거쳐 들어오면서 받은 영향이리라.
무릎을 꿇는다는 것, 진정한 '사과'와 '참회'란 무엇일까

▲깨달음 암흑에서 시작한 어리석음은 밝은 세상에서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정도길
공양미를 올리고 공손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사람이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터. "무릎을 꿇을 바에야, 차라리 죽음을 달라"는 말을 짚어보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 왜, 무릎을 꿇을까. 그건, 자신이 저지른 잘 못을 비는 '사과'와 자신의 부족함을 반성하는 '참회' 등 두 가지 때문이 아닐까. 사과와 참회의 기본은 진정성.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과와 참회는 아무런 감동도, 그 의미도, 없다.

▲영지 고려시대 정원인 영지.
정도길
부처님 앞에 108배를 올렸다. 나의 건강을 위하고 명예를 위하여, 나의 재산 증식을 위하고 내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는, 그런 기도가 아님은 물론이다. 염주 한 알을 돌릴 때마다, '참회합니다'라는 주문은 끝없이 이어진다. 오로지 나 자신의 부족함을 비는 진심을 담은 108배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얼굴과 온 몸은 땀범벅이다. 개운하기 이를 데 없고 날아갈듯 상쾌하다. '진정한 참회'는 이렇듯 맑고 깨끗함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웃나라 일본은 70년 세월을 '진정한 사과' 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 더러운 물속에 자신을 가두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광복 70년을 맞아 문득 이는 생각이다.

▲청평사 강원도 춘천시에 자리한 청평사 뒷모습.
정도길
청평사는 댐이 생긴 후 유명해졌다. 소양댐에서 배로 15분 걸리는 '섬 속의 사찰'로 찾아가는 매력 때문이다. 연인들은 기차를 타고 춘천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소양댐까지 간다. 여기서부터는 청평사행 배를 타는 것이다. 각종 교통편을 갈아타면서 육지와 호수의 주변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어 좋다. 하늘을 덮은 우거진 숲 속을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길목마다 청평사와 관련한 이야깃거리는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번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지로서는 '딱'이라는 생각이다.

▲108기도 <108산사순례> 그 서른한 번째 여행지인 춘천 청평사에서 108배를 올리고, 31번째 염주 알을 꿰었다.
정도길
'맑게 평정되었다'는 청평사에서 일어나는 생각 한 조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림자'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림자는 평생 나를 따라 다니면서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떠날 수도 없는 그림자다. 그림자는 나의 분신이요, 나의 영혼이다. 그림자는 맑은 날이면 더욱 뚜렷해진 모습으로 내 곁에서 머문다. 비오거나 흐린 날이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그렇다고 영원히 나를 떠났을까. 다시, 맑아지는 날이면 그림자는 원래 모습으로 내 곁에 살짝 와 있다.
살아가면서 착한 일을 많이 행하면, 선행의 그림자로서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이요. 나쁜 일을 더 많이 하면, 악행의 그림자로 나를 괴롭히며 쫓아 올 것이다. 나쁜 일은 생각도 내지 말며, 착한 일은 행동으로 실천하라. 내가 짓는 업은 그림자의 모습으로 죽음을 다하는 그날까지 평생 나를 따라 다닐 것임을 알아야만 한다. <108산사순례> 그 서른한 번째 여행, 춘천 청평사에서 31번째 염주 알을 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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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글빙글 돌아가는 문? 차원이 다른 청평사 회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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