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인양선 감시를 나선 세월호 유가족들이 16일 째인 17일 오후 세월호가 침몰한 해역 인근 진도 동거차도 산 꼭대기에 천막을 치고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 인양준비과정을 감시하고 있다.
이희훈
어쩔 수 없다. 외면할 수 없는 고통이니, 똑바로 응시할 수밖에. 그리하여 아버지는 오늘도 자식이 숨진 그 바다를 바라본다. 한 아버지는 바다를 보며 영국의 힐스보로 참사를 알고 있다고 했다.
수학여행 떠난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던 것처럼, 영국에선 축구경기를 보러 힐스보로 구장으로 간 사람 96명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96명 중 절반은 10대 아이들이었다.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에 침몰했고, 힐스보로 참사는 1989년 4월 15일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절대 다수는 안산에 살았고, 힐스보로 참사 희생자 대부분은 리버풀에 살았다. 안산과 리버풀은 노동자의 도시다.
힐스보로 참사에 책임이 있는 경찰은 진실을 조작했고, 한국의 해양경찰은 배에 갇힌 사람 중 단 한 명도 구출하지 않았다.
한 번 침몰한 배는 저 스스로 떠오르지 않듯이, 감춰진 진실은 저절로 드러나지 않는다. 진실은 그것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투쟁으로 가까스로 인양된다. 영국의 힐스보로 참사 유가족은 20년 넘게 싸워 진실의 큰 조각을 확인했고, 그들은 참사 이후 26년이 지난 지금도 싸우고 있다.

▲ 실종자들이 빨리 가족 품으로 돌아오기 바라며 입은 노란티셔츠엔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가 적혀 있다. 등 뒤에는 실종자들의 이름이 한 명 한 명 적혀 있다.
이희훈

▲ 세월호 인양선 감시를 나선 세월호 유가족들이 16일 째인 17일 오후 세월호가 침몰한 해역 인근 진도 동거차도 산 꼭대기에 천막을 치고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 인양준비과정을 감시하고 있다.
이희훈

▲ 세월호 인양선 감시를 나선 세월호 유가족들이 16일 째인 17일 오후 세월호가 침몰한 해역 인근 진도 동거차도 산 꼭대기에 천막을 치고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 인양준비과정을 감시하고 있다.
이희훈
"우리도 그렇게 해야죠. 끝까지 가야죠."아버지는 아들이 숨을 거둔 바다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고 말했다. 아버지 뒤로 해가 바다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지는 태양은 바다와 하늘을 붉게 적셨다.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힐스보로 유가족처럼 26년을 싸우면 진실에 닿을 수 있을까? 지난 500여 일처럼 26년을 싸우면 자식이 수학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앞을 가늠할 수 없는 답답한 현실. 힐스보로 참사에서 세월호의 미래를 살피는 이 기획의 한국 쪽 이야기는, 동거차도 벼랑 위에 선 아버지들의 사연에서부터 시작한다.

▲ 대화를 마친 소연 아빠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려 했다. 한참을 기분 좋게 대화했지만 멀리 보이는 사고 해역을 바라보니 외동 딸 소연이 생각이 가슴을 때렸다. 소연아빠 김진철씨는 밤하늘에 눈물을 숨겼다.
이희훈

▲ 세월호 인양선 감시를 나선 세월호 유가족들의 동거차도 천막에서 바라 본 낙조.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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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가야죠" 세상의 끝, 벼랑 위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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