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도 같이 먹어요, 앉으세요"

[그림책 육아 일기 ⑦] 백희나 글, 그림 <삐약이 엄마>

등록 2015.10.21 16:39수정 2015.10.2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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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멘붕을 불러오는 순간 오디의 협찬으로 이루어진 걸작 ⓒ 송은미


"엄마!"


아이가 한창 어려 옹알이를 할 적에는 '엄마' 소리 한 번 들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어쩌다 아이가 어물쩍하게 '음, 마'라고 웅얼거리면 엄마를 불렀다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요새 말이 늘어 원하는 것을 야무지게 말하는 첫째가 엄마를 부를 때면 나도 모르게 긴장한다. 오늘도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바지런히 움직이는데 첫째가 '엄마'하고 부른다. 내가 바쁜데 왜 불렀냐고 볼멘소리를 하려던 차에 아이가 말한다.

"엄마, 엄마도 같이 먹어요. 앉으세요."

가슴 뭉클한 이 순간, 엄마라서 참 좋다.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할 때면 <구름빵> <장수탕 선녀님>으로 유명한 백희나 작가의 <삐약이 엄마> 그림책이 떠오른다. 뚱뚱하고 먹을 것을 좋아하는 고양이 '니양이'가 예쁜 달걀을 꿀꺽 삼켜 먹었다. 그런데 니양이 뱃속에서 달걀이 부화하더니 그만 니양이가 병아리를 낳고 만다. 당황한 니양이와는 달리, 니양이 품속으로 파고들어 삐약거리는 병아리! 그때부터 니양이는 병아리를 '삐약이'라고 부르며 항상 삐약이를 데리고 다닌다. 이웃들도 니양이를 '삐약이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엄마가 되기 전엔 정말 몰랐다, 내가 이런 사람인지...

그림책 <삐약이 엄마> 겉표지 (백희나 글, 그림) ⓒ 책읽는 곰


엄마가 되었다는 것! 이전에도, 앞으로도 이보다 더 내 인생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올 상황이 있을까? 엄마 역할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직장에 첫발을 디딘 순간보다, 결혼하고 누군가의 아내와 며느리라는 역할을 얻은 것보다 더 혁명적이고 놀라웠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정말 몰랐다. 잠귀신이던 내가 아기 울음 소리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 불침번을 서게 될 줄이야. 정말 아파서 누워만 있고 싶은 날에도 기어이 일어나 아이가 먹을 반찬을 요리하는 나는 내가 봐도 놀라웠다. 때마다 아기 기저귀와 육아용품을 배달해 주시는 택배 아저씨와 안면을 트고, 내 이름 석 자를 불러주는 그 목소리를 무척 반기게 된다는 것도 몰랐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아파하는 아이를 보며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 진심 어린 마음을. 휴대전화에 아이들 사진으로 가득하고 내 사진은 사라진 지 오래며, 엄마들이 SNS와 카톡 프로필을 왜 아이 사진으로 도배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비록 김에 밥을 싸 먹으며 끼니를 때워도, 아이 이유식만은 최고급 한우와 유기농 채소로 정성 들여 만들며 뿌듯해 했다. 잠자던 아이가 눈을 떠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빙그레 웃으면, 마치 내 마음에 크리스마스트리 전구가 환하게 켜진 것처럼 따뜻해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첫 아이를 낳을 때만 해도 나는 정말 어수룩한 엄마였다. 먹고, 자고, 울면서 완벽하게 '아기' 역할을 해내는 아이와 달리, 아기 응가만 봐도 허둥지둥하던 나는 정말 서툴기 짝이 없었다. 아이와 함께 24시간 집안이라는 일터에 살게 되면서 나라는 존재가 없어지는 것만 같아 서글프고 불안했다. 그런 우울함과 불안을 애써 감추며,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고 장영희 교수는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란 책에서 '못했지만 잘했어요'라는 모순 형용을 말한 바 있다. 자발적으로 일을 쉬고 집이라는 창살 없는 감옥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온 지도 3년째, 나름으로 열심히 노력한 나에게 '못했지만 잘했다'고 말하고 싶다.

아이 낳고 주야장천 젖을 물리며 3시간만 통잠을 자면 좋겠다고 외쳤던 초창기는 이제 까마득하다. 일어나면 고양이 세수를 하고 닥치는 대로 육아와 살림을 한 시간, 커가는 아이와 씨름하느라 육아서를 읽고 육아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며 고군분투한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이 육아 일기를 쓰며 힘들어했던 지금도 까마득해지겠지.

아이도, 엄마인 나도 '못했지만 잘했어요'

흔한 미역 놀이의 끝 미역 말고 아이를 보면 웃음이 나온다. ⓒ 송은미


못했지만 참 잘했다. 아이를 낳기 전 내 생애 이렇게 또 인내하고 배려하는 삶을 사는 시간이 있었을까? 앞으로도 내 생애 아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끼니도 미루고 생리 현상도 참으며 이렇게나 헌신적으로 사는 시간은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림책 속 악명 높은 니양이도 삐약이가 생기면서 변한다. 삐약이 배가 아플까봐 깨끗하고 맛있는 음식만 삐약이에게 먹이고, 성질이 나쁜 개집 앞을 지날 때면 삐약이를 보호하며 걸어갔다.

그런 삐약이 엄마가 꼭 내 모습 같다. 아이가 생기고 나니 내 이름 석 자 대신 '○○엄마'로 불릴 때가 더 많다. 아이가 보채면 손에 든 장바구니가 많아도 그 무거운 아이까지 둘러업고 계단을 오른다. 징그럽다고 만지지도 못하던 생선과 닭도 아이에게 깨끗하게 먹이려고 꾹 참고 손질한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내가 만든다는 생각에 환경과 사회 문제에 좀 더 관심을 두고, 내 목소리를 행동으로 옮겨 줄 단체들도 후원하게 되었다.

이제는 아이가 생기면서 변한 내 모습과 새로 생긴 엄마 역할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물론 지금도 이 엄마라는 역할이 너무나 커서 영영 이 삶을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은 불안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못했지만 잘했어'라고 다독이면 언젠가는 엄마 역할과 더불어 또 다른 삶의 역할도 열심히 해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내가 엄마로서 자라고 있는 이 시간, 아이도 점차 완벽한 아기였던 모습에서 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한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 서툴게 신은 양말, 대충 닦은 치아, 형이상학적인 그림, 밥 먹고 나면 초토화되는 식탁까지….

아이는 '못했지만 잘했어요!'가 절로 나오도록 열심히 자기 삶을 살고 있다. 장영희 교수 말처럼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기쁜 사람과 슬픈 사람 등 서로 다양한 사람들이 도와가며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이다. 이 속에 아이와 내가 함께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니양이가 삐약이 엄마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된 것처럼, 내 이름 석 자에 '○○엄마'라는 새로운 이름이 덤으로 생긴 그 선물에 감사한다.

[그림책 육아 일기⑥] 엄마는 어떻게 벌레가 되었을까?

○ 편집ㅣ박혜경 기자

덧붙이는 글 * 기사에 소개한 그림책: <삐약이 엄마> / 백희나 글, 그림 / 책읽는곰 펴냄.
#삐약이 엄마 #육아 일기 #그림책 육아 일기 #백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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