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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어디에서 왔어요?"
"우본, 똑같애, 경기도"
"우본이 지방 이름이군요. 경기도처럼"
"네~."
대화 중간 중간 말이 막히면 "똑같애"라는 말을 쓰는 버릇이 있는 바누손은 태국 '우본랏차타니'라는 지방에서 왔습니다. 문장으로 말 할 실력이 안 되기 때문에 짤막짤막 몇 개의 '단어'로만 이야기합니다. 그걸 모른다면 그에게 '왜 그리 말이 짧냐, 왜 늘 반말지거리 하느냐'고 시비 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직접 이야기해 보면 그는 항상 웃으며, 최선을 다해 뭔가를 설명하려 한다는 느낌을 주는, 참 예의바른 사람입니다.
태국 청년의 코리안드림은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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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 이주노동자 핸드폰으로 태국 뉴스를 검색하고 있다. ⓒ 고기복
올해 서른 한 살인 바누손에게 한국에 오기 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묻자 핸드폰에서 고무농장 사진을 찾아 보여줍니다. 사진엔 우유빛 고무 수액을 채취하는 태국 사람들이 깡통을 들고 있기도 하고, 정글용 칼을 들고 담배를 입에 물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는 십 년 넘게 대규모 고무 농장에서 고무 수액 채취 등의 일을 했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고무 농장에서 자랐고, 중학교 때부터는 실질적인 노동자 생활을 했던 그는 농장생활을 해서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고 이주 노동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따라 소작농으로 일했던 그에게 한 달 동안 고무를 채취하면 얼마를 벌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다시 '똑같애'로 시작했습니다.
"똑같애. 200만 원"
"한국 돈 200만 원요?"
"세 명이 하나."
"세 명이 한 팀이군요."
"네~."
한 작목반에서 월 200만 원을 벌면 절반은 농장주에게 돌아가고, 남은 돈을 머릿수대로 나눠 갖기 때문에 고된 일의 대가는 늘 초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 5년 가까이 고무 가격이 계속 떨어졌고, 지난해 군부 쿠데타 이후에는 농가보조금마저 사라져 더욱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고무를 채취하는 모습과 농민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찾아 보여 준 바누손은 손가락을 하나씩 꾹꾹 누르며 몇 해를 세더니 다시 "똑같애"라고 말합니다. 손을 휘휘 저으며 "더 힘들어"라고 합니다. 그에게서 태국 군부의 쿠데타가 시골 농부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똑같애. 2010, 2011, 2012, 2013. 2014 밀리터리. 더 힘들어."
"한국은 어때요?"
"똑같애. 일 없어."
'똑같애'라는 바누손의 말처럼 어쩌면 사람 사는 모습은 달라도 이치는 같을 것입니다. 매해 실질 소득이 떨어져서 힘들었던 태국이나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한국이나 어렵긴 마찬가지입니다. 시골에서 일만 하느라 결혼도 못했다는 그는 하루 빨리 돈도 벌고, 결혼도 준비하고 싶다고 합니다. 구직 중인 그가 하루 빨리 일자리를 찾아 코리안 드림을 이룰 수 있기를 응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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