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내음도 맡고, 바람과 햇볕도 먹고, 들길을 씩씩하게 걸으면서 이 모두를 가만히 느끼면서 삶을 배웁니다.
최종규
돈을 많이 벌어서 살아야 홀로서기이지 않습니다. 삶을 스스로 지을 때에 홀로서기입니다. 손꼽히는 대학교에 들어가거나 손꼽히는 회사에 일자리를 얻기에 홀로서기를 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아파트 한 채를 '내 집'으로 장만하기에 홀로서기라고 하지 않아요.
연봉이 높은 회사를 다닌다 한들, 그 회사가 사라지면 어찌 될까요. 내 집인 아파트가 있다 한들, 전기가 끊어지고 물이 끊어지면 어찌 될까요. 내 자동차가 있다 한들 기름이 마르면 어찌 될까요.
현대문명을 거슬러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내 삶이 서는 자리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첨단문명이나 도시 사회에 등을 돌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이 어디에서 비롯하는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기계나 연장을 안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손수 짓고 빚고 가꾸고 가다듬을 줄 아는 몸짓이 되어야 합니다.
'으르렁거리거나 히힝 하는 말 울음소리를 내지는 못했지만, 마음을 최대한 맑게 하고, 검은번개의 앞이마의 삼각형 표시에 마음을 집중하고, 자신의 생각을 그곳으로 투사하면, 검은번개가 반응을 보였다.' (136쪽)'덜신은 바다표범과 더불어 노래하고 헤엄치며 놀았다. 그들은 친구들인데, 어떻게 그들의 신뢰를 배반할 수 있을까.' (159쪽)아이들은 스스로 일어서는 길을 스스로 배울 수 있을까요? 나는 이 물음에 '네!' 하고 말하려 합니다. 이르든 늦든, 더디든 빠르든, 아이들은 저마다 스스로 일어서는 길을 스스로 배운다고 느낍니다. 어떤 아이는 학교를 차곡차곡 다니면서 시나브로 배울 테고, 어떤 아이는 아무 학교도 안 다니면서 천천히 배울 테지요. 어떤 아이는 예순 살이나 여든 살이 되어서야 알아차려서 새로 배울 테고, 어떤 아이는 아흔 살에 눈을 감으면서도 하나도 못 배울 테지요.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뒤져서 지식이나 정보를 빠르게 얻는 아이가 있을 테고, 책도 인터넷도 없이 머리와 생각과 느낌으로 차근차근 깨닫고 알아차리는 아이가 있을 테지요.
옛사람은 텔레비전을 켜서 날씨 방송을 들어야 날씨를 알지 않았어요. 개미 움직임이나 제비 날갯짓을 보면서 날씨를 알았어요. 바람맛을 보고, 구름 흐름을 살피면서 날씨를 알았어요. 그리고, 옛사람은 식물도감을 뒤져서 풀이름을 알지 않았지요. 옛사람은 모두 어버이한테서 풀이름을 배웠고, 풀이름뿐 아니라 풀을 어떻게 다루고 건사하면서 어디에 어떻게 쓰는가 하는 대목까지 낱낱이 익혔어요.
'덜신은 라그다의 손에서 하프를 받아서 부드럽게 연주를 시작했다. 그 소리는 상쾌하게 동굴에 울려퍼졌다. 즉시 덜신의 가슴에서 노래가 나왔다. 이 노래는 인간의 말도 리듬도 아니었다. 그 노래는 바람, 나무, 파도, 새 그리고 동물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서로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었다.' (223∼224쪽)

▲ 학습이 아니라 삶을 보여주고 느끼도록 하면, 아이들은 모두 새로우면서 아름다운 넋으로 자라리라 생각합니다.
최종규
'자란 나뭇잎들은 그 자체가 말이었다. 나무들은 모든 날씨와 태양, 달, 별의 복잡한 운행을 알고 있었다. 나무들은 새들의 이야기를 알았고, 새들로부터 다른 식물이나 동물들의 움직임을 전해 들었다 … 미래는 도토리나 밤의 껍질 속에 보호되어 잠자고 있었다.' (231쪽)우리 집 여덟 살 아이가 걸레질을 합니다. 설거지도 합니다. 곁님이 집에서 구운 빵을 썰 적에는 큰아이한테 빵칼을 맡겨 봅니다. 우리 집 다섯 살 아이도 요즈막에는 제 잠옷을 제법 잘 갭니다. 다섯 살이나 되어서야 잠옷을 개느냐고 나무랄 어른이 있을 수 있는데, 이 아이는 그동안 실컷 노느라 바빠서 옷을 개는 일에는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어요. 이제는 제 옷을 스스로 건사하고 다루는 손길을 스스로 깨닫습니다.
모든 아이가 똑같은 나이에 똑같은 지식이나 정보를 익혀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가 똑같은 나이에 똑같은 교과서를 받고는 똑같은 수업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여덟 살이면 초등학교를 가야 하거나, 열네 살이면 중학교를 가야 하지 않아요. 나이는 그냥 나이일 뿐이에요. 혼인을 몇 살에 해야 하는 법이란 없고, 아기를 몇 살에 낳아야 하는 법도 없습니다. 누군가는 열아홉 살에 아기를 낳을 테고, 누군가는 마흔 살에 아기를 낳을 테지요. 어떤 아이는 열아홉 살에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고, 어떤 젊은이는 스물아홉 살에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어요.
나이에 맞추어 어떤 지식을 아이한테 밀어붙이기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삶을 즐기고 누리고 가꾸고 사랑하고 펼칠 수 있는 길을 열도록 옆에서 따사로이 지켜보면서 도와주면 되리라 느껴요. 아이들이 저마다 스스로 일어서도록 북돋우면 되리라 느껴요.
'"이 싸움은 복수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왕자의 마음에서 화를 풀어내야만 하는 싸움이다. 그러니 결과는 나쁘지 않을 것이다."' (269쪽)청소년문학 <벌거숭이 왕자 덜신>에 나오는 덜신 왕자는 어떻게 될까요? 숲에서 홀로 살아남은 덜신 왕자는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씩씩하게 다스리는 길을 스스로 배웁니다. 이리하여 '앙갚음'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깨달았고, '사랑'도 무엇인가를 스스로 알아차렸어요. 새가 지저귀는 노래에 깃든 이야기를 스스로 알아듣고, 바람에 춤을 추는 나뭇가지가 들려주는 노래를 스스로 받아들입니다.
사랑을 받으며 사랑스레 자라는 아이들이 가슴속에 꿈씨 한 톨을 곱게 심을 수 있기를 빕니다. 언제나 사랑으로 곱게 자라는 꿈씨를 가슴속에 심으면서 날마다 새롭게 깨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는 모두 맨손이고 알몸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새롭게 태어나고, 처음부터 새롭게 하루를 열면서 기쁘게 웃을 수 있습니다.
벌거숭이 왕자 덜신
C. W. 니콜 지음, 서혜숙 옮김,
논장,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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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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