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BMW 활보... 평양 공기가 달라졌다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⑤] 평양에 도착하다

등록 2015.11.25 14:23수정 2015.11.25 18:42
1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그리고 10만인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일본 순회강연을 마치고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북녘의 수양딸을 찾아 북한을 여행했습니다. 또 지난 10월 초에도 북한을 한 번 더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새 연재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를 통해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하려 합니다. - 기자 말

a

중국 심양에서 북한 평양으로 향하는 고려항공 여객기 내부 모습. 한 승무원이 승객들에게 음료를 제공하고 있다. ⓒ 신은미


평양행 고려항공 기내에 들어서 자리에 앉자 한 승무원이 내게 말을 건넨다.

"신은미 녀사 아니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지난 겨울 참 안됐습니다.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고 말했다가 종북으로 몰리셨다는 소식 많이 들었습니다. 강연장에서 폭발물 테러까지 당하셨다던데 건강은 어떠십니까?"
"꼭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고 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왼팔이 좀 안 좋아 평양에 가면 수기치료라는 걸 받아보려고 해요."

2014년 말과 2015년 초까지 내가 남한에서 겪었던 '종북몰이' 소식을 북에서도 뉴스로 다뤘는데, 이 승무원은 <로동신문>을 읽고 알게 됐다고 한다. 이 승무원을 만나기 전에 나는 내 이야기가 북 언론 지면에 오르내렸다는 것을 남한 언론을 보고 알게 됐었다.

북녘의 동포들이 '남한은 북한 맥주가 맛있다고 말하면 종북으로 매도당하는 우매한 사회'이며 '북녘의 소식을 전하는 강연장에 폭발물이 던져지는 무시무시한 사회'라고 오해할까봐 걱정이다. 하지만, 나도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으니 설명해줄 길이 없다.

심양을 떠난 비행기가 압록강을 건넌 지 얼마 되지 않을 무렵, 창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 봤다. 강이 보인다. 북한 동포 승객에게 물어보니 청천강이란다. 이내 우리는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다.

"고저 통일을 말했다고 오케 그럴 수가..."


a

지난 6월 24일 평양 순안 공항으로 마중나온 수양딸 김설경. 이제 제법 엄마 티가 난다. ⓒ 신은미


평양 순안공항 새 공항청사는 거의 완공된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임시청사를 통해 입국했다. 공항 분위기가 마치 무슨 큰 행사라도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심양 공항에서 비행기가 연착될 정도라면 모름지기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새 공항청사 완공식에 다녀간 게 아닌가 추측해본다.

세관 짐 검사대 너머 마중나온 사람들을 쳐다보니 수양딸 설경이가 기다리고 있다. 꽃다발을 들고 내게 걸어오는 설경이에게서 제법 아기 엄마 티가 난다.

"오마니, 안녕하십니까. 올마나 힘드셨어요. 세상에 말입니다, 고저 통일을 말했다고 오케 그럴 수가 있습니까. 야~아, 천만 다행입니다."
"아냐, 괜찮아. 이게 모두 조국이 분단돼서 일어난 일이야. 출국정지 때문에 미국 아이들 걱정시키고, 집에 돌아갈 수 없어 불편했던 것 이외에는 괜찮았어. 그나저나 의성(설경의 아들)이는 잘 크고 있지?"
"네, 지금 육아원에 있습니다."
"그래, 어서 보고싶구나."

설경이와 내가 안부 인사를 나누는 사이, 4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다가와 인사를 한다. 앞으로 2주 동안 함께할 분이다. 이름은 김혜영. 첫 인상은 단아하면서도 눈매가 매섭고 흐트러짐이 없다. 몇 마디 인사만 나눴지만 성격이 강직하고 빈 틈이 없을 것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게 눈짓을 한다. 마치 '저렇게 매섭고 냉정하게 보이는 사람과 어떻게 2주일이나 함께 다닐 수 있냐'는 듯이.

반면 2주 동안 우리를 태워줄 운전기사는 서글서글한 눈매에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있는, 상냥하고 친절하기가 그지 없는 전형적인 이웃집 아저씨 스타일이었다. 남편은 운전기사와 몇 마디 나누더니 다행이다 싶은지 날 쳐다보며 안도의 표정을 짓는다.

달라진 평양 풍경, 불과 2년 사이인데...

a

평양 시내 차량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차창을 여니 매연 냄새가 코를 찔렀다. ⓒ 신은미


a

2015년 6월 평양의 거리. ⓒ 신은미


설경이와 우리 부부를 태운 차량이 평양 시내에 진입한다. 거리는 차들로 꽉 차 있고 신형 차량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대부분이 평화자동차에서 생산된 북한산 자동차나 중국제 자동차들이지만, 렉서스나 BMW 같은 고급 차량도 보인다. 내가 마지막으로 북한을 여행한 게 2013년 9월인데, 2년도 채 되지 않아 차량이 2배 가까이 늘어난 것 같다.

창문을 내리니 신선한 평양의 공기 대신 매연 냄새가 차 안에 들어온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경제발전과 공해는 양립한다고 하는데, 이건 사회주의 경제 체제 아래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여하간 이제 평양 공기가 좋다는 말은 옛말이 된 것 같다. 차량이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설경이가 아쉬워하며 작별인사를 한다.

"오마니, 긴 여행 힘드실 텐데 어서 좀 쉬십시오. 저는 의성이 데리러 가야 합니다. 편하실 때 집으로 오십시오."
"어머, 가야 해? 얘, 좀 더 있다가지. 그럴 줄 알았으면 호텔로 오기 전에 의성이도 볼 겸 탁아소로 먼저 갈 걸 그랬구나. 그래, 어서 가봐. 의성이 아빠한테도 안부 전해줘."

"다른 나라 호텔 화재도 방송에 나갑니까?"

a

평양 고려호텔. 화재로 인해 파손된 벽을 수리 중이다. ⓒ 신은미


미국에서 떠나기 전, 우리가 예약해놓은 고려호텔에 큰 화재가 있었다는 뉴스를 봤다. 주변 사람들이 고려호텔에 가지 말라고 조언했었는데, 막상 와보니 벽의 타일이 떨어진 정도라 안심이 된다. 체크인을 하면서 호텔 직원에 물어봤다.

"고려호텔에 화재가 있었다는 뉴스를 미국에서 들었어요. 큰 피해는 없었나요?"
"두 동을 연결하는 다리에서 불이 났는데 전혀 일 없습니다. 긴데 미국에서는 다른 나라 호텔에서 난 자그만 불도 방송에 나갑니까?"
"…."

그사이 객실료도 약간 오른 듯하다. 하루에 157달러. 2주일 머무를 예정이지만 지방에 갈 일정을 고려해 9일간 숙박료만 미리 지불했다.

이번 여행부터는 가능한 모든 영수증을 챙기기로 했다. 북한의 물가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여행을 다녀오면 사람들이 북한의 물가를 묻곤 하는데 기억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종이가 귀해서인지 영수증도 아주 작다. 대신에 봉투에 넣어 보관하기가 쉽다. 편지봉투 하나에 2주 동안의 영수증을 모두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a

고려호텔 숙박료 영수증. ⓒ 신은미


안내원과 운전기사에게 함께 식사하자고 제안했더니 흔쾌히 수락한다. 40대 중반의 안내원 김혜영 선생은 고급중학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김책제철소라는 공장에서 공원으로 일했다고 한다. 일이 끝난 뒤 공장 안에 있는 전문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 김일성 종합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단다. 그녀의 전공은 문학. 아이는 딸만 둘이라고.

첫 인상과는 달리 푸근한 미소와 자상한 마음씨를 지닌 분이다. 우리 가족의 안위를 묻기도 하면서 부모 없이 있을 우리 아이들 걱정도 한다. 아무 말 없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던 남편의 얼굴도 서서히 펴지기 시작한다. 40대 초반의 운전기사 리용호씨는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하나란다. 부인은 요리사라면서 가족 자랑에 여념이 없다.

북녘의 동포들은 유독 가족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요즘 우리는 가족에 대해 묻거나 말하는 것을 반기지 않거나 실례로 여긴다. 그러나 사실 우리도 예전엔 그랬었다. 부모님 연세는 어떻게 되는지, 뭘 하시는지 등을 묻곤 하지 않았나. 우리의 옛 정서를 북한 동포들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가급적이면 '달러' 쓰라는 북한

a

2015년 6월 북한 여행 안내원 김혜영 선생(사진 오른쪽). 항상 심각한 표정이지만 누구보다 자상한 마음씨를 지녔다. ⓒ 신은미


식사를 마치고 중국에서 쓰다 남은 인민폐로 지불하려고 하자 가능하면 달러로 지불해달라고 한다. 2013년 여행 때까지만 해도 인민폐, 달러, 유로 가리지 않고 받았는데 이번에 와서 보니 달러를 선호하는 느낌이다. 인민폐와 유로가 달러에 비해 가치가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아마도 북한은 자국 통화와 함께 외국 통화가 동시에 사용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일 것이다. 외국인은 물론 북한 주민들도 외화를 소지하고 있으며, 실제 사용도 한다. 외화식당 또는 외화상점이라는 곳에서는 외화만 사용 가능하다.

많은 양의 외화가 통용되는 상황해서 북한 당국은 어떤 금융 정책을 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언젠가는 북한도 자국 통화만 사용하는 경제 환경이 돼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북한 화폐에 대한 신용 회복 외에는 방법이 없을 듯하다. 가치 하락이 심하고 때로는 화폐 개혁을 통해 구권 일부만 교환해주는 상황에선 어느 누구도 북한 화폐를 소지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북 정부가 정책적으로 외화 사용을 금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경기 위축 그리고 경기 타격은 피할 수 없다. 북한 화폐의 신용 회복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래도 궁극적으로는 자국 화폐가 기반이 되는 경제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과연 난 평양에서 페북을 할 수 있을까

헤어지기 전 안내원 김혜영 선생과 다음날 일정을 의논했다.

"김 선생님, 손전화 심(SIM)카드를 샀으면 좋겠는데요. 요즘 여기서 외국인들도 전화 사용이 가능하다고 들었어요."
"네, 맞습니다. 보통강 호텔에 고려린크 지점이 있는데 그리로 가시지요. 긴데 국제전화만 가능하고 국내전화는 안 됩니다."
"국내전화는 쓸 일이 없으니 괜찮아요. 설경이나 설향이한테 전할 말 있으면 김 선생님께 부탁 드릴게요. 사실 전화 통화보다는 인터넷 사용이 필요해요. 인터넷도 되겠지요?"
"네, 됩니다. 외국인용 심카드는 국제전화, 이메일, 인터넷 모두 가능합니다."

"페북도 되겠지요?"
"페북이라니요?'
"페이스북이요."
"그게 뭔가요?"
"인터넷이 연결되면 할 수 있는 건데 설명드리기가 좀 힘드네요. 막아놓지만 않았으면 가능할 텐데…. 중국에서는 페이스북이라는 것이 안 되거든요."
"뭐 인터넷도 된다니까 일 없을 겁니다."

과연 북한에서 페북을 할 수 있을까? 미국에 있는 아이들에게 카톡이나 메신저로 안부를 전할 수 있을까?

살짝 흥분된 감정을 추스르며 상점에 들려 그 '말썽 많았던' 대동강 맥주를 사 방에 돌아온다. 씁쓸한 기분으로 맥주병을 바라보며 한 잔 들이켠다. 그래도 대동강 맥주맛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a

고려호텔 객실 안에서 대동강 맥주를 한잔 들이켰다. ⓒ 신은미



○ 편집ㅣ김지현 기자

#평양 #북한 #페이스북 #신은미 #통일
댓글1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