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페북을? 엄마 또 추방당했어요?"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⑥] 평양에서 페이스북을 할 수 있다니

등록 2015.12.07 12:08수정 2015.12.0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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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그리고 10만인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일본 순회강연을 마치고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북녘의 수양딸을 찾아 북한을 여행했습니다. 또 지난 10월 초에도 북한을 한 번 더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새 연재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를 통해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하려 합니다. - 기자 말

 고려호텔의 아침 식사 풍경.
고려호텔의 아침 식사 풍경. 신은미

이번 여행에 동행한 박아무개 교수는 전날 밤 헤어질 때 자신은 아침을 먹지 않을 예정이니 로비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막상 식당에 와 보니 박 교수는 언제 왔는지 혼자 식사를 하고 있다. 커피만 한 잔 마시려고 식당에 들렀다가 호기심이 생겨 이것저것 조금씩 맛보고 있단다. 그리고 점심때 냉면을 먹을 생각으로 많이 참고 있는 중이란다.

그런데 박 교수가 앉은 테이블을 보니 이미 텅 빈 죽그릇이 놓여 있다. 또 수북이 담은 밥을 토장국 그리고 여러 반찬과 함께 정신없이 먹고 있는 게 아닌가.

북한에도 전자결제카드가 있답니다

 '나래' 현금카드 사용설명서.
'나래' 현금카드 사용설명서.신은미

아침식사를 마친 나는 우선 1층 로비에서 '나래'라는 이름의 현금카드를 샀다. 전자결제 기능이 있는 이 현금카드를 이곳에선 '나래카드'라고 부른다.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 때문에 북한에서는 신용카드 사용이 불가능하다.

대신 '나래카드'는 대부분의 식당이나 상점에서 모두 사용 가능하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평양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할 경우, 중간중간에 사용료를 입금해야 하는데 '나래카드'가 사용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에서든지 사용료 입금이 가능하다.

 북한 스마트폰. 안내원의 휴대전화를 촬영한 것이다.
북한 스마트폰. 안내원의 휴대전화를 촬영한 것이다.신은미

 평양 시내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택시들.
평양 시내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택시들.신은미

안내원들이 갖고 있는 스마트폰을 보면 변화하는 북한의 모습이 보인다. 일전에는 대부분 구식 전화기를 들고 다녔다. 그러나 지금은 휴대전화 가입자 수가 350만 명을 넘었단다.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언뜻 보기에 내 스마트폰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안내원의 전화기를 들여다보고 있던 난 얼른 심카드를 사러 가자고 재촉했다.


호텔을 나서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택시다. 2013년 9월에 왔을 때도 길에서 택시를 자주 봤지만, 지금처럼 많진 않았다. 각양각색의 택시들이 거리를 질주한다. 택시 디자인이나 회사 이름이 다양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평양에 택시회사가 적어도 7~8개는 되는 것 같다. 심지어 고려항공도 택시회사를 운영한다.

북한에서는 택시를 사회주의의 이념에 맞지 않는 교통수단으로 여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택시가 있긴 하나 기껏해야 외국인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택시를 이념적으로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했다면, 아마도 '사람이 사람을 태우고 끄는 인력거처럼 봉건사회의 비인간적인 교통수단' 정도로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일반 주민들이 이용하는 택시가 이렇게 많이 늘어났다니. 이들의 이념에 변화라도 생겼다는 말일까. 아니면 경제가 발전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사람들이 택시를 많이 이용하느냐는 질문에 김혜영 선생은 "출퇴근 시간엔 택시 잡기가 쉽지 않다"라면서 앞으로 택시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해줬다.

택시요금, 서비스의 질, 운전기사의 매너, 청결 상태 등 여러 가지가 궁금해진다. 안내원에게 나중에 택시를 자주 이용해보자고 제안했다.

"엄마, 거기 어디에요?"... "응, 엄마 지금 평양이야"

 전자결제카드 '나래'와 고려린크 심카드.
전자결제카드 '나래'와 고려린크 심카드.신은미

보통강호텔 로비에 있는 고려린크(Link) 지점에 도착하니 단체관광 안내원들이 여권 뭉치를 들고 심카드를 사고 있다.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내 차례가 왔다. 여권과 함께 직접 작성한 신청서를 제출하고 심카드를 구입했다. 가격은 200달러. 첫 구입시 내장돼 있는 데이터 50MB를 모두 사용하고나서부터는 별도로 충전할 양만큼의 돈을 내야 한다.

50MB 가격은 약 30달러. 50MB라면 사진 열 몇 장을 보낼 수 있다. 헉, 가격이 엄청 비싸다. 물론 이 가격은 외국인 관광객에 해당되는 가격이며 국내 주민에게는 훨씬 싸다고 한다. 남편이 불평을 늘어놓자 고려린크 여직원이 "앞으로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면서 우리를 위로한다.

북한 심카드를 넣은 전화기를 떨리는 마음으로 켜봤다. 여기저기 눌러본다. 내가 원하는 모든 누리집이 다 열린다. 흥분된다. 카카오톡도 되고, 메신저도 되고, 중국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던 페이스북도 된다. 미국 프로골프 누리집도 열리고, <오마이뉴스>도 볼 수 있었다.

사실 이전까지는 북한에 올 때마다 일종의 고립감 같은 것을 느끼곤 했다. 호텔에서 국제전화 정도는 쓸 수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로 인해 매번 북한에 갈 때마다 불편한 심경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남편에게 "세상과 격리돼 모든 걸 잊고 여행에만 전념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라고 주문을 걸었다.

하지만 이런 '낙천적 합리화'로 아무리 포장해봐도 내 마음 역시 늘 갑갑했다. 그런데 이제부터 나는 세상과 분리되지 않았다. 적어도 내게 북한은 더 이상 고립된 나라가 아니다. 손바닥만한 스마트폰 하나가 북한을 세계와 연결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인터넷 연결이 되자마자 미국프로골프 경기 결과 검색에 여념이 없다. 나는 남편으로부터 겨우 전화기를 빼앗아 미국의 아이들과 페북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아이들이 깜짝 놀란다.

"엄마, 거기 어디세요?"
"여기는 북한, 오바."
"뭐라고요? 북한? 거짓말…. 무슨 북한에서 페북을…. 엄마 북한에서도 추방당하셨어요? 지금 어디세요?"
"아니. 여기 북한이야. 지금 평양에 있어."

"에이~, 엄마 좀 어떻게 되신 거 아니에요? 북한에서 무슨 페북을…."
"집에는 별일 없지?
"네."
"그래 이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연락할게."

아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하긴, 북한에서 페이스북을 하는 나도 믿기지 않기는 매한가지니까.

북한 식당에서 가격표 보는 법

 평양 해맞이식당 안내판. 사진 오른쪽은 일식 안내판이다.
평양 해맞이식당 안내판. 사진 오른쪽은 일식 안내판이다.신은미

고려린크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소요했다. 이번 여행에 동행한 박 교수는 옆에서 지쳤는지 시원한 냉면을 먹으러 가자고 재촉한다. 우리는 '해맞이식당'이라는 곳에 가기로 하고 차에 올랐다.

박 교수는 식당이나 상점의 가격표를 볼 줄 몰라 어리둥절해 한다. 예를 들어 비슷한 물건이 어떤 상점에서는 24,000원이라고 적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상점에서는 300원이라고 표기돼 있기 때문이다.

북한 상점은 외화를 사용하는 상점과 북한 화폐를 사용하는 상점으로 구분돼 있다. 외화를 사용하는 상점의 가격표는 1달러당 공식 환율인 북한돈 100원(2015년 현재 106원이지만 계산 편의상 100원으로 한다 - 기자 말)으로 환산된 가격이 적혀 있다. 예를 들어, 외화상점에서 구두 한 켤레가 2000원이라면 그건 곧 20달러인 것이다.

북한돈을 사용하는 상점의 가격표에는 1달러당 북한 내 실거래 환율인 약 8000원(1달러당)으로 환산된 가격이 적혀있다. 구두 한 켤레에 160,000원이라고 표시돼 있다면 그건 곧 20달러(160,000/8,000 = 20)다. 그리고 북한돈을 사용하는 상점 내에는 으레 화폐교환소가 있다. 그곳에서는 달러를 공식환율이 아닌 실거래환율, 즉 1달러를 북한돈 약 8000원에 교환해 준다.

이렇듯 북한의 공식 환율은 실제 환율이 아니다. 그저 외화 상점에서의 가격 표시를 위한 환율로밖에 구실을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들은 쉽사리 혼동하곤 한다.

 평양 해맞이식당의 냉면.
평양 해맞이식당의 냉면. 신은미

 평양 해맞이식당의 쟁반국수.
평양 해맞이식당의 쟁반국수.신은미

박 교수는 공식환율로 환산된 외화식당의 냉면값 320원을 실거래환율(1달러당 8000원)로 잘못 계산했다. 그의 계산 방식대로 하면 냉면값은 4센트(320/8,000 = 0.04)다. 이걸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약 47원이다. 냉면값이 너무 싸다고 좋아하던 박 교수는 실제 그 식당의 냉면값이 3달러20센트(320/100 = 3.22, 공식 환율 적용)인 걸 뒤늦게 알게 되곤 크게 실망했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먹는 냉면값에 비하면 가격이 1/3 정도라면서 이내 미소를 짓는다.

소적쇠구이(석쇠에 구운 소불고기)와 육회를 안주삼아 맥주를 마셨다. 식욕이 확 돈다. 박 교수는 쟁반국수 200그램을, 운전기사는 쟁반국수 300그램, 남편은 냉면 300그램, 안내원 김혜영 선생은 냉면 200그램을 주문했다. 평소 나는 냉면 100그램을 먹곤 했는데, 이날은 200그램을 주문했다. 박 교수는 냉면을 그램 단위로 주문하는 걸 무척 신기해한다.

인터넷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냉면 국물까지 주욱 들이켜니 속이 다 뻥 뚫린다. 창문으로 밖을 보니 평양 아이들도 튜브를 들고 물놀이를 가는가 보다.

 식당 창밖으로 본 아이들의 모습. 물놀이를 가는지 튜브를 들고 있다.
식당 창밖으로 본 아이들의 모습. 물놀이를 가는지 튜브를 들고 있다.신은미

정착한 '독립채산제'

현재 많은 북한의 식당들은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고 있다. 독립채산제란 이익의 일부를 국가에 내고 나머지 이익은 식당 경영진이 소유하고 식당 운영은 스스로 하는 제도다. 예전에는 기업소가 운영을 엉망으로 해 손실을 내도 모두 국가에서 지원해줬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익을 내는 건실한 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북한을 여행하다 보면 간혹 운영이 부실한 국영기업소를 볼 수 있다. 이용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화장실은 물이 줄줄 새어 바닥을 흥건히 적셔도 수리를 하지 않아 차마 들어가기가 싫을 정도다. 국가에서 예산을 책정할 테고 경영진 또한 월급과 배급을 꼬박꼬박 받으니 나태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각별히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 같지도 않은 이런 기업소들은 국가의 재원을 낭비할 뿐 사회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국영기업소의 이런 폐단을 간파한 북 정부가 정책적으로 독립채산제를 도입한 것인지, 아니면 정부의 재정 부족으로 인해 더 이상 모든 기업소를 예전처럼 지원할 수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생겨난 제도인지 알 수 없으나 나는 이런 북한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오늘날 북한의 많은 식당이 독립채산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여전히 국영식당도 있다. 국영식당이란 이익보다는 주민들에게 싼 값에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으로 국가가 운영하는 기업소다. 이곳 사람들은 이런 식당을 '인민 봉사 식당'이라고 부르는 듯하다. 안내원의 말에 따르면 "국영식당은 식당의 이익보다는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식당이기 때문에 국영식당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접대를 받을 때에는 고마운 마음이 절로 생긴"다고 한다.

나 같은 외국인들이 들르는 외화식당은 거의 모두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곳이다. 외화만 사용할 수 있는 이런 식당의 가격은 국영식당에 비해 훨씬 비싸다. 접대원들의 서비스도 최상이다. 국가가 아닌 기업소로부터 월급을 받는 종업원들은 친절할 수밖에 없다. 접대원이 상냥하고 서비스가 좋아 손님을 많이 끌 경우 월급도 올라간다고 하니 말이다.

이제는 타 식당 요리사나 접대원을 스카우트하는 일도 벌어진단다. 시설이나 음식의 질도 매우 훌륭한 편이다. 몇몇 식당은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다. 이것 또한 그럴 수밖에 없다. 식당들 사이에 경쟁 구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런 외화식당의 주 이용 고객은 외국인들일까? 아니다. 식당에 갈 때마다 확인해봤는데, 외국인 관광객을 본 기억이 없다. 손님 대부분은 북한 주민들이다. 그렇다면 왜 북한 주민들은 값이 저렴한 국영식당에 가지 않고 비싼 외화식당을 찾는 걸까.

 국영식당 청류관 밖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
국영식당 청류관 밖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 신은미

아마도 그건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음식을 제공하는 국영식당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국영식당인 옥류관의 경우 주로 일종의 배급표를 받고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옥류관이 초대형 식당이라 할지라도 그 많은 수요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 국영식당 앞을 지나갈 때마다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로 식당 주위는 늘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러니 외화를 소지하고, 구매력을 갖춘 주민들은 양질의 음식과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화식당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이런 사실은 북한에 구매력을 갖춘 시민들이 그만큼 많이 생겨났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외화를 어떻게 소유할 수 있는 걸까. 주로 중국과의 활발한 경제활동을 통해서다. 동시에 남한은 경제 교류의 기회를 중국에 넘겨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아쉬움을 넘어 화가 나기까지 한다.

지금 평양에는 외화식당들과 외화 상점들이 수없이 생겨나고 있다. 나는 이런 현상이 독립채산제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은 이익을 남기고 그 이익의 일부가 재투자돼 확대 재생산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나는 북한의 경제가 사회성을 실천하는 국영 기업과 개인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독립채산제 기업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으로 발전하면 좋겠다.

"고난의 행군 시절, 남편이 갑자기 부르더니..."

 평양 시내에서 서점을 찾아가는 중.
평양 시내에서 서점을 찾아가는 중.신은미

점심식사를 마친 우리는 박 교수와 함께 그녀가 필요한 책들과 영어 자막이 있는 북한 영화 DVD 그리고 북한 음악 CD를 구입하기 위해 식당을 나섰다. 박 교수의 북한 여행 목적은 연구활동을 위한 것이고 내 목적은 관광 겸 수양 가족을 만나는 것이었다. 나는 북한 여행이 처음인 박 교수를 위해 많은 일정을 그와 함께하기로 했다.

서점까지 거리는 2~3킬로미터, 우리는 걷기로 했다. 안내원 김혜영 선생이 다소곳이 팔짱을 낀다. 그리곤 조용한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언니."

주체사상으로 똘똘 뭉쳐있고, 공산주의 도덕으로 무장한 안내원 김혜영 선생이 부르주아 정서에 젖어있는 나를 언니라고 부른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언니, 맛있게 드셨어요? 난 오늘 소적쇠구이를 먹으니 옛날 생각이 났어요."
"옛날 생각이라니요?"

"말씀 놓으세요."
"아니에요. 별말씀을. 무슨 생각이 떠올랐어요?"

"남편 얘기예요."
"그래요, 남편 자랑 좀 해보세요. 나는 남편 흉밖에 할 말이 없는데."
"오마나, 언니두. 저렇게 자상한 남편을 두고…."
"어서 말해 보세요."

"거의 십몇 년 전인가 봐요. 고난의 행군 시절 때였으니까. 정말 힘들었지요. 옥수수국수를 불려 죽을 만들어 먹었으니까. 애들은 저한테 장마당에 가서 장사라도 해 배불리 먹게 해달라고 아우성을 치구. 나는 '당원인 엄마가 굶어 죽어도 그래서는 안 된다'고 애들을 타이르곤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전화를 해 나 혼자만 어디로 나오라는 거예요. 나가 보니 나를 고깃집으로 데리고 가는 것 아니겠어요?

당시 식량이 모자라다 보니 개인이 운영하는 자그마한 식당들이 많이 생겼을 때라 돈만 있으면 그래도 끼니를 이어갈 수 있었어요. 돈이 어디서 생겼는지 남편이 돼지불고기 2킬로구람을 시키더니 먹으라는 거예요. 자기는 밖에서 잘 먹는다며 손도 안 대면서. 잘 먹긴 뭘 잘 먹겠어요. 얼국은 새까맣고 빼쩍 말라가지구. 어서 먹으라 해 정신없이 먹었지요. 배가 불러올 때쯤 그때서야 집에 있는 애들이 떠오른 거 아니겠어요. 먹다 남은 고기를 싸들고 집으로 달려갔어요."

"어머, 얼마나 흐뭇했어요. 나도 그런 감동을 한번 받아봤으면…."

"오마나, 언니두. 행복에 겨워 그러는 거 다 알아요. 그런 감동은 경험하지 않는 게 더 좋아요."

그녀는 노래를 부르면서 걷자며 남편이 생각날 때마다 부른다는 <심장에 남는 사람>을 선창한다. 아, 내가 지난해 한국에서 연 '통일 토크콘서트' 때 불러 '종북'이란 소리를 들은 바로 그 노래. 이런 사실을 아는 박 교수가 나를 쳐다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나도 그녀를 꼭 껴안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녀가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이렇듯 북한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북녘의 동포들을 만나 오랜 세월 헤어져 살며 다하지 못한 사랑을 나누는 일이다. 그리고 그들과 나눈 사랑은 오랫동안 그 여운을 남긴다.

 평양의 거리.
평양의 거리.신은미


○ 편집ㅣ김지현 기자

#평양 #북한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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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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