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이 밥벌이라는 게 참 좋습니다"

[인터뷰]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 '시대의창' 김성실 대표

등록 2015.12.08 13:52수정 2015.12.0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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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도서 웹진 <북DB>는 김성실 시대의창 대표와 지난 10월 27일 서울 동교동 시대의창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 기자 말

김성실 시대의창 출판사 대표 ⓒ 김성실 제공


"출판이 제 밥벌이라는 게 참 좋습니다."


김성실 시대의창 대표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한 말이다. 밥벌이, "먹고살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는 이 단어가 "좋습니다"라는 단어와 함께 쓰이는 것은 처음 본 것 같다. 27년 동안 출판인으로 살아온 그는 그중 16년을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 시대의창 대표로 보냈다. 그가 '참 좋은 밥벌이'로 해온 출판 일은 "사람 중심의 세상" 속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만드는 데 필요한 담론들을 마련해주는 일이었다.

지난 1999년 창립된 시대의창이 지금까지 펴낸 책은 모두 400여 종. 초기에 펴낸 100여 종은 경제경영 책, 이후 출간된 300여 종 가운데 90% 정도가 인문·사회과학 책이다. 만들기도 쉽고 망하기도 쉬운 게 출판사. 특히 사회과학 출판시장은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시대의창은 지난 16년 동안 큰 위기 없이 입지를 다져왔다. 2002년 사회과학 출판을 시작한 뒤로 10년 동안을 '전성기'라고 표현한 김성실 대표는, 그 시기를 전성기로 꼽은 이유를 매출보다 '출판인으로서의 자부심'에서 찾았다.

대학생 때 한번도 취직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김성실 대표가 출판인이 된 것에도, 경제경영 출판사였던 시대의창이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가 된 것에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숨어 있었다. 누구 하나 사회과학 출판의 미래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그는 오히려 낙관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존감과 "나무한테 부끄럽지 않은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말이었다.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출판의 미래는 책의 '본질'에 더욱 다가가는 것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 김성실 대표. 출판인으로서 그가 걸어온 길과 시대의창이 만들어가고 있는 새로운 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언제, 어떤 계기로 출판계에 입문하시게 됐나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했어요. 그런데 사실 저는 취업하려고 마음먹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어요.(웃음) 대학을 졸업하면 고향에 내려가서 결혼을 준비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졸업을 앞두고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거예요. 그 사람을 버리고 고향에 갈 수 없었어요. 어떻게든 서울에 남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결국 취업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당시 저희 오빠가 한 출판사 편집장이셨어요. 출판인이라는 직업에 제 눈에 들어온 거죠. 그즈음 우리나라 최초의 출판인 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는 서울편집학원도 생겼고요. 이거다 싶어, 저는 1988년 1기생으로 그곳에 다니게 됐습니다. 교육을 마치고 법률 관련 책을 만드는 출판사에 취업했어요. 그리고 크라운출판사로 자리를 옮겼죠. 그때 우리나라에 컴퓨터 관련 책이 막 나오기 시작했어요. 우연히 그 분야에 발령되어 컴퓨터 책을 편집했어요. IT 분야 책 1세대 편집자였다고 할까요? 그렇게 출판계에 입문했습니다."

- 시대의창은 어떻게 해서 탄생하게 된 건가요?
"1994년 크라운출판사에서 퇴직하고는 IT 서적 전문 기획사를 만들었어요. 스타트업인 셈이죠. 윈도우95 베타버전이 나오면서 본격적인 PC시대가 시작되던 때였어요. 당시 분위기도 그랬고 경쟁사도 많지 않아 회사가 굉장히 잘됐죠.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못 자면서 5년 정도 일만 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돌아본 제 자신이, 너무 지쳐 있고 소모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자신을 갉아먹지 않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회사가 가장 잘되던 1999년에 과감하게 기획사 규모를 줄이고 출판사를 열었어요. 시대의창을 시작한 거죠."

시대의창이 펴낸 촘스키 교수의 책들 ⓒ 최규화


2002년 우연히 출간한 촘스키 책 한 권... "책이 출판사를 바꾼 것"

- 창립 초반에는 어떤 책들을 내셨나요?
"1999년 9월에 처음 낸 책이 <사이버 증권거래 초보 벗어나기>라는 책이었어요. 당시가 IMF 외환위기 직후라서 경제경영, 자기계발 책들이 인기였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분야 책들을 많이 내게 된 거죠. 처음에는 어떤 책을 내야 되겠다는 생각이 구체적이지 않았어요. 책을 한 권 한 권 만들어가다가 2002년에 촘스키 책(<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을 내게 된 거예요."

- 저는 출판사 이름도 '시대의창'이라서, 창립할 때부터 뭔가 '세상 사람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겠다' 하는 원대한 포부가 있었던 줄 알았습니다.(웃음)
"그런 거 없었어요.(웃음) 처음에 직원을 알음알음 뽑아놨는데도 그때까지 출판사 이름도 없었어요. 머리를 맞대고 출판사 이름을 짓기 시작한 거예요. 여러 가지 이름이 나왔는데, 찾아보면 이미 다른 출판사가 쓰고 있는 이름이더라고요. 그렇게 고르고 고르다가 시대의창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같기도 하고 멋지기도 해서 시대의창으로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이 이름을 지어놓고 난 뒤에 책을 만들면서 이름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제 마음이 자꾸 무거워지는 거예요. 제 이름도 김성실이라 이름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고 살았는데 왜 출판사 이름도 이렇게 지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웃음)"

- 시대의창이 그동안 펴내온 책들을 보면 어떤 변곡점 같은 것이 보입니다.
"그게 촘스키 책이에요. 출판 에이전시가 보내주는 뉴스레터에 그 책이 있었는데, 신입 편집자가 한번 검토해 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보니까 막 끌리더라고요. 사실 초판을 2500부밖에 안 찍은 책이거든요. 그 전까지 주로 내던 경제경영 책들은 초판 5000권씩 찍었어요. 그런데 그 책이 40만 부 가까이 나갔어요.

그 책이 많이 알려지다 보니까 저도 촘스키에 대해 잘 알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희 직원들이 다 같이 사회과학을 공부하게 된 거예요. 촘스키를 보다 보니까 또 다른 진보 지식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 시선이 바뀌더라고요. 책이 우리를, 회사를 바꾼 거죠."

- 아무리 촘스키 책이 '대박'이 났다 해도, 사회과학 서적들은 대박의 기준도 좀 낮고, 또 번번이 대박을 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런데도 사회과학 출판사로서 방향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도 사회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잖아요.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지만 이제는 사명감을 가지고 내고 있어요. '이런 책은 나라도 내줘야 되겠다' 하는 생각요.(웃음) 그리고 그동안 사회과학 출판계 전반적으로는 위기가 지속됐지만, 저희 시대의창에게는 특별한 위기가 없었어요. 오히려 저희한테는 도서정가제 이후로 지금이 위기죠.(웃음)"

- 그동안 큰 위기는 없었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지난 16년의 세월 가운데 시대의창의 '전성기'라고 할 만한 시절은 언제일까요?
"사회과학 출판을 시작한 이후부터 최근까지 계속 전성기였어요. 물론 매출 면에서 보자면 경제경영 책 만들 때가 더 잘됐죠. 그러나 사회과학 책을 만든 뒤부터 정말 재미있게 일했어요. 출판인으로서 제 정체성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갖게 되고 '출판 일을 하기를 정말 잘했다' 하는 생각도 하고요. 그래서 사회과학 출판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계속 저희의 전성기라고 보는 거예요."

- 책을 만드는 분들은 거의 자식을 낳는 심정으로 만드시잖아요. 잘난 자식이어서든 못난 자식이어서든, 조금 더 애정이 가는 책이 있습니까?
"저희가 4년 동안 편집해서 만든 책이 있거든요. 원고 나오고 나서 편집 기간만 4년이 걸렸어요. <고사성어 대사전>이라는 책인데요, 제가 이 책을 만들면서 '정말 이런 책을 큰 출판사에서 만들어줘야 된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저희가 하다 보니까 시간이나 비용이 너무 만만치 않은 거예요. 사실 이 책을 내고 나서 조금 힘이 빠졌어요. 언론사에 홍보용 책을 보냈는데 어디에서도 기사로 안 다뤄준 거예요. 추천도서 선정도 하나도 안 되고 전혀 주목을 못 받았는데, 나중에 다음카카오에서 연락이 왔더라고요. 인터넷으로 사전 서비스를 하고 싶다고 해서 꽤 괜찮은 금액을 받고 10년 임대를 하기로 했습니다.(웃음)

사실 올해 책을 많이 못 냈는데, 곧 큰 책이 하나 나올 거예요. 편집만 거의 2년 동안 했어요. <E. K. 헌트의 경제사상사>라는 책이에요.(책은 11월 25일 출간됐다 - 기자 주) 1200쪽 정도 되는 책이에요. 시장 반응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출판인으로서 이런 대작을 만들어놓고 나면 기분이 되게 좋아요. 예전에는 훌륭한 편집자들 "나무한테 부끄럽지 않은 책을 만들겠다"라는 말을 하면 별로 와닿지 않았는데, 의미 있는 책들을 한 권 한 권 만들어가면서 지금은 그 말이 정말 와닿아요."

김성실 대표가 주목하는 젊은 작가들의 책 ⓒ 최규화


"사람 중심 가치 좇는 사람들 있어 사회과학 출판 미래 낙관"

- 아까 위기 이야기를 하다가 '도서정가제 이후로 지금이 위기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 1년이 됐는데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저는 기본적으로 도서정가제에 찬성을 해요. 그런데 법제화 이전에 사전작업이 좀 안 된 것 같아요. 공급률 문제, 독자들이 갖는 가격저항 등에 대한 준비가 돼 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지금의 불황이 빨리 회복될 것 같지는 않아요. 도서정가제만이 불황의 원인은 아니라고 봐요. 저는 주변 사람들한테, 지식을 습득할 때 어떤 매체를 보는지 물어봐요. 예전에는 책이 대표적인 매체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시기인데 우리가 그걸 읽어가면서 변화를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인터넷에는 신뢰할 수 없는 온갖 정보들이 넘쳐나잖아요. 책에는 조금 더 심층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콘텐츠를 담아야죠. 저는 그런 노력들을 해나가려고 해요. 책이 속도만 따라가면 오히려 외면받을 것 같아요."

- 출판시장이 두루두루 다 어렵다고들 하지만, 특히 사회과학 분야는 미래를 밝게 전망하는 사람이 더 적습니다. 김 대표님이 바라보는 사회과학 출판시장의 미래, 어떤가요?
"좋은 사회과학 책은 사람 중심의 세상, 더불어 사는 삶을 가르쳐주잖아요. 이런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있어요. 그래서 저는 사회과학 서적의 미래를 낙관합니다."

-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 중에 '이건 우리가 냈어야 하는데' 하고 욕심 날 정도로 잘 만들어진 책이 있나요?
"제가 올 초부터 읽기 시작한 책이 있어요. 아이작 도이처의 '트로츠키' 3부작이에요. 이 책을 우리 출판사에서 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어요. 제가 감동을 받아서 그 출판사 사장님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출판인으로서 정말 부럽고 칭찬해드리고 싶다고 했더니, 사장님이 정말 고맙다면서 자기네 사정상 그 책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저희가 그 책을 다시 낼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내년 초에 저희 출판사에서 책이 나올 거예요."

- 혹시 20, 30대 젊은 저자들 중에 주목하고 있는 저자가 있나요?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등을 쓴 젊은 동양철학자 임건순, <개념여행>을 쓴 정란수,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 등을 쓴 도현신, <인간의 조건>을 쓴 한승태와 <괴물이 된 대학>의 김창인, <버킨백과 플라톤>의 이바로, <도시유감>의 전상현 등입니다. 한겨레 신문 박유리 기자의 글도 관심 있게 보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김 대표님의 꿈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출판은 제가 평생 해야 하는 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의창이 언제까지 존재할지는 모르겠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그런데 그게 평생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고요, 어쨌든 계속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요. 그게 가장 큰 꿈이에요.

저는 똑똑한 사람도 아니고 유능한 사람도 아닌데, 출판계에서 일하면서 혜택을 많이 받고 운도 많이 따랐어요. 사회과학 출판사 하면서 홍대 앞에 사옥도 가지고 있잖아요.(웃음) 앞으로 출판시장이 더 위축되더라도 세상에 필요한 책을 만들어내야겠다, 그게 보답하는 길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출판이 제 밥벌이라는 게 참 좋습니다."

○ 편집ㅣ박순옥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터파크도서 웹진 <북DB>(www.bookdb.co.kr)에도 게재됐습니다.
#김성실 #시대의창 #인터파크도서 #북DB #인터파크 북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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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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