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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르 칸 핍박하는 인도, 김제동 공격하는 헬조선

[분석] 불관용의 시대, 영화 <피케이 : 별에서 온 얼간이>의 씁쓸한 현실판

15.12.09 13:57최종업데이트15.12.0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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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피케이 : 별에서 온 얼간이> 종교는 의복(Fashion)이다. 그 한꺼풀 벗겨야만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다. ⓒ 와우픽쳐스


인도의 국민 배우 아미르 칸이 주연한 영화 <피케이 : 별에서 온 얼간이>에는 인도사회가 직면한 가장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담겨있다. 영화의 주인공 피케이(아미르 칸)는 외계인으로서 신과 종교라는 관념에 대해 무지하다. 따라서 편견도 없다. 그런 피케이의 순수한 눈에, 인도의 종교들은 이상한 점 투성이다.

종교는 신의 목소리를 빌어 교인들에게 저마다 다른 고통을 강요하거나 불합리한 분쟁을 부추긴다. 그러나 피케이의 눈에 각 종교 간의 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의복(Fashion) 같은 겉치레 뿐이다. 오히려 기이한 열정(Passion)으로 자신의 종교를 절대 선으로 내세우는 모습만은 무섭도록 닮아있다.

아미르 칸과 종교적 불관용

지역 극우 정당 'Shiv Sena'는 아미르 칸의 뺨 한 대에 인도 루피 1렉(우리 돈 175만 원 가량)을 걸었다. 실제로 뺨을 때린 사람은 없었고 그 대신 클릭 한 번으로 뺨을 때릴 수 있는 '슬랩아미르(Slapaamir)'라는 홈페이지가 만들어졌다. ⓒ slapaamir.com


피케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인도 사회에는 종교적 관용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으리라. 의복을 벗어 던지면 당신들은 모두 같은 인도인, 아니 인간이니 그 사실에만 주목하자는 것이었을 테다. 영화에서는 그 꿈같은 주장을 관철하는 데 성공한다. 그것도 인도인 여성과 파키스탄인 남성의 애정을 매개로 구종교의 성직자를 물리친다.

판타지다. 영화에서 외계인에게 피케이(PK:peekay, 주정뱅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 현실에서 그런 행동을 하다가는 주정뱅이 취급당하기에 십상이다. 실제로 피케이 역을 맡은 인도 국민배우 '아미르 칸'이 처해 있는 상황을 보면, 영화 속 결말이 아직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라는 게 더 확실해진다.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아미르 칸은 지난 11월 23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인도 사회에 팽창하고 있는 종교적 불관용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인도에서는 힌두교의 우상 숭배를 비판하던 학자가 괴한에게 살해당했고, 암소를 도축했다는 의혹을 받는 이슬람교도가 주민들에게 맞아 죽는 일이 잇따라 일어났다. 이에 종교적 불관용을 경계하는 사회 각층의 항의가 이어졌다. 아미르 칸도 "(인도 사회의 불안과 공포가 너무 심해서) 아내 키란 라오(Kiran Rao)가 자녀의 안전을 위해 인도를 떠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인도 사회의 절대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종교에 대한 저항. 영화 속 피케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반응은 영화와는 달리 '인도가 싫으면 파키스탄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 피케이가 멋지게 꺾은 성직자 '타파스비'의 말이, 현실에서는 주류를 차지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이해하려면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신인 무굴 제국의 역사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식민의 역사는 분단과 분열의 역사로

슬랩아미르의 주소(slapaamir.com)는 현재 '키스아미르(kissaamir.com)'로 바뀌었다. 분노로 날린 따귀의 횟수는 그대로 키스의 횟수로 둔갑했다. 마이애미에서 광고를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만든 사이트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 kissaamir.com


무굴 제국의 역사와 한반도의 역사는 유사한 점이 많다. 우선 열강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는 점이 그렇다. 각각 '해가 지지 않는 나라'와 '아침 해처럼 기세등등한 나라'로부터 모진 시련을 겪었다.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을 얻은 것도 비슷한 점이다.

조선이 독립 과정에서 남북으로 나뉘었듯이, 인도의 전신인 무굴 제국 역시 크게는 힌두교를 중심으로 한 인도와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한 파키스탄으로 나뉘었다. 그 이외에 파키스탄에서 독립한 방글라데시(서파키스탄), 인도와 파키스탄의 최대 분쟁 지역인 카슈미르도 구 무굴제국의 영토다.

물론 조선과 무굴제국에서 벌어진 분단에는 매우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했다. 그러나 잠재되어 있던 분열의 가능성을 분단으로 심화하는 산파 역할을 한 게 식민통치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영국은 시크교인을 육성하여 모슬렘과 힌두 교인에 저항케 하거나, 수적으로 적은 모슬렘을 지원해 힌두 교인을 견제하는 방식을 통해 분열을 조장했다.

이들의 지배 방식은 식민지 인도를 대표하는 정치기구 '국민회의'의 구성을 놓고 모슬렘과 힌두교도들의 대립을 격화시켰다. 결국, 모슬렘의 지도자 '이크발'의 주도로 파키스탄이 독립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일제에 저항한 독립 세력이 좌우로 갈려 각각 남북의 건국 세력이 된 우리 역사와도 닮았다.

무엇보다도 유사한 점은 식민의 시름이 분단의 아픔으로 이어지며 현재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인도와 한국 모두 식민과 분단으로 미뤄진 정치·사회적 평등과 진보가, 형제국가와의 대결 구도에 의해 여전히 지체되는 중이기 때문이다. 아미르 칸이 요구한 '종교적 관용'도 마찬가지다. 종교가 정치와 사회를 지배하는 인도 사회에서 관용이라는 구호는 단순히 종교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평등과 진보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칸'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미르 칸은 모슬렘이다. 분별없는 사람들은 그의 이름에서 이슬람교와 파키스탄, 나아가 인도-파키스탄 간 전쟁으로 사망한 인도인들의 피까지 연상해낸다. 아미르 칸이 말한 관용이라는 구호 안에서 평등과 진보를 읽는 대신 이교도의 침탈, 적군의 내습을 읽어내며 분노하는 이유다.

거기에 힌두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집권당 BJP(인도국민당)가 이 분노를 부추겼다. BJP 대변인인 샤나와즈 후사인은 "이슬람교도에게 인도보다 살기 좋은 나라는 없다, 인도가 당신(아미르 칸)을 스타로 만들었음을 잊지 말라"고 했다. 또 다른 BJP의 정치인은 "만약 아미르 칸이 인도가 불안하다고 느낀다면 파키스탄으로 떠나면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심지어 인도 재무장관은 불관용에 대한 모든 지적을 가리켜 "좌파에 경도됐다", "여당을 반대하는 측의 새로운 정치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칸'이라는 이름만으로 손쉽게 반정부, 반국가, '종파(從巴 파키스탄 추종)'를 끌어낸 것이다.

이런 구도에서 모슬렘의 목소리는 충분히 검토되기도 전에 원천적으로 억압된다. 결국 인도사회에서 '모슬렘'이라는 반(半) 태생적 기질은 근거 없는 불평등과 혐오의 매개가 된다. 실제로 인도 인구의 15% 안팎을 차지하고 있는 모슬렘들은 상시화한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 2006년 '사차르 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내 모슬렘은 교육과 사회 기반 시설, 직업 선택 등에서 실질적인 불평등을 겪으며 사회 주류에서 밀려났다. 실업률과 빈곤율이 치솟아 오죽하면 '새로운 불가촉천민'으로 불리기까지 한다.

헬조선의 주정뱅이 피케이, 김제동

방송인 김제동이 지난 11월 3일 오전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뜻을 담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이 사진은 이날 오전 11시경 서울 방배동 근처에서 주진우 시사IN 기자가 촬영했으며, 주 기자가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 주진우


인도가 겪고 있는 식민과 분단의 후유증을 아미르 칸의 처지를 통해 알 수 있다면, 한국이 겪고 있는 식민과 분단의 후유증은 방송인 김제동의 처지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최근에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며 "역사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마음까지 국정화하시겠습니까? 쉽지 않으실 겁니다"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그러자 보수 성향 시민단체인 '엄마부대봉사단' 이 '김제동 방송 퇴출 운동'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정화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김제동 퇴출'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엄마부대봉사단의 주옥순 대표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김제동 그 친구가 그전부터 촛불시위, 한진중공업, 제주 강정마을 등 국가 정책마다 앞장서서 반대했다, 그 친구 아들뻘인데, 그 친구 그냥 두면 안 된다"고 밝혔다. 요컨대 국가 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것을 더는 두고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김제동이 현안에 대해 자기 의견을 드러내고 극우 세력의 원색적인 비난에 시달린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극우 세력은 김제동의 의견에 대해 반박하기보다 '야당의 정치 대변인', '종북주의자', '반국가주의자'라는 혐의를 씌우며 아예 입을 틀어막으려 들었다. 이처럼 상대 주장의 오류를 지적하고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주장한 사람을 왜곡하고 파괴하려는 행위는 결코 바람직한 논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은 진보적 인사들에게 '종북'이라는 옷(Fashion)을 입혀 외적인 기준만으로 상대를 몰아세우는 혐오을 조장한다.

아미르 칸을 곤경에 빠뜨린 종교적 불관용이 모슬렘을 불평등과 혐오 속으로 내몰았다면, 김제동을 몰아세운 정치적 불관용, 즉 '종북'은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모든 사람을 혐오의 범주에 몰아넣는다. 김제동의 처지는 그동안 진보를 추구하는 시민사회가 물밑에서 겪어야 했던 혐오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국가의 잘못을 지적하는 시민 세력을 '너 종북이지!'라는 말 한마디로 가로막는 철권통치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아니, 이제는 가히 종북이라는 종교적 신앙으로까지 발전해 평등을 신봉하는 이들을 이교도로 내몰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불평등이 들끓는 한국을 '헬조선'으로 인식하는 이유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4인칭 블로그'(http://blog.naver.com/4thperson)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미르칸 피케이 김제동 힐링캠프 국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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