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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호>의 호랑이 '김대호'는 수준급이다

[미리보는 영화] 사라진 전통과 자연에 대한 헌사... 예술과 재미 사이를 오가는 과감함

15.12.09 18:04최종업데이트15.12.0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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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호>의 한 장면. ⓒ NEW


미지의 영역을 굳이 파헤치지 않고 보듬은 사람들이 있었다. 야생을 곧 미개함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경외의 대상으로 삼아 공존했던 그들.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닌 바로 100여 년 전 우리 윗세대 모습의 일부다.  

그 정신을 영화 <대호>가 증폭시켰다. 지난 8일 언론에 최초 공개된 이 영화를 두고 여러 평이 나오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자연을 남다르게 여겼던 포수꾼들의 이야기로 보는 모양새다.  

항일에 갇히지 않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했고, 호랑이와 사투를 벌인 사내들이란 설정, 여기에 지리산이라는 공간적 특수성 때문에 영화는 여러 장르적 요소가 섞일 수밖에 없었다. 각 장르의 미덕을 고루 차용하면 성공이고, 단순 나열에 그치면 실패였다. 산군 내지 신령처럼 모셔졌던 호랑이의 존재감 역시 확실히 각인시켜야 하는 과제 또한 있었다.

<대호>가 기대고 있는 역사적 사실은 단 한 줄이다. 지금은 사라진 호랑이에 대한 마지막 기록, 그러니까 조선의 얼을 말살하려는 일제 정책으로 무분별하게 포획했던 그 존재 하나만 잡고 들어갔다. '1921년 경주에서 포획되었다'는 기록 이후 대한민국에서 호랑이는 실재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영화의 구도 역시 단순했다. 일제 정책에 협조해 앞장서 호랑이를 잡으려 한 포수대와 그들을 멀리하며 호랑이에 대한 남다른 사연을 안고 사는 천만덕(최민식 분) 간의 갈등이 그것이다.

때문에 자칫 <대호>는 일제 치하 불온한 시대를 보냈던 민초들의 저항 내지는 잔인했던 전범국의 압제를 묘사하는 데 그칠 수도 있었다. 시대적 배경 자체가 하나의 함정일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이게 가장 편하게 관객의 마음을 끌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우려와 달리 영화는 자신이 무엇을 말하려는 지를 분명히 했다. 백성들의 어설픈 봉기를 택하기보다 호랑이의 잔혹한 살상 장면을 그리며, 우리가 몰랐던 혹은 외면했던 야생의 속성을 파고들었다.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와 조선의 마지막 사냥꾼 간 대립이 그렇게 설득력을 담보할 수 있었다.

호랑이의 힘

▲ '대호' 최민식, 압도적인 카리스마 지난달 10일 오전 서울 압구정CGV에서 열린 영화 <대호> 제작보고회에서 천만덕 역의 배우 최민식이 입장하고 있다. <대호>는 조선 최고의 포수 천만덕(최민식 분)과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대호에 대한 이야기이자 자연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12월 16일 개봉. ⓒ 이정민


최민식, 정만식, 김상호, 오스기 렌, 정석원 등 장점이 분명한 배우들이 총출동했음에도 영화에 대한 우려는 컸다. 호랑이 때문이었다. 우선적으로 호랑이의 완성도가 전제돼야 했다. 이 부분은 <대호>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관객들은 컴퓨터그래픽(CG)을 전면에 내세운 한국 영화들의 실패담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7광구> 안 괴물이나 <미스터 고> 속 고릴라는 해당 영화의 주체들에겐 뼈아픈 기억이겠지만, 대중 사이에선 여전히 희화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물론 기술적 완성도만 따지면 <미스터고>의 링링은 그간 한국영화 CG 캐릭터 사상 가장 완성도 높은 캐릭터였다. 오히려 이야기의 허술함과 배우 간 호흡의 빈틈을 끝내 메우지 못했다는 게 결정적 패인이긴 하다. 그런데 또 다른 영화 <최종 병기 활>은 어떤가. 영화 자체는 흥행했지만, 잠시나마 등장한 어색한 CG 호랑이 장면이 흠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여러모로 호랑이가 문제고 관건이었다.

그렇다면 <대호>는? 결론부터 말하면 수준급이다. 기술적 구현이 100% 완벽할 수는 없듯 분명 군데군데 어색함도 보였지만, 이야기의 힘과 배우들의 호연이 그걸 메꿨다. 리액션이 없는 상태에서 연기하는 것만큼 배우입장에서 어려운 건 없다. 대호와 가장 많은 분량을 호흡해야 했던 최민식의 공이 그래서 크다.

반대로 말해 호랑이의 비중 역시 절대적이었다는 뜻. 영화 속 호랑이는 각 배우들의 감정선을 받아내며 하나의 캐릭터로 온전하게 자리 잡았다. 공식석상에서 최민식이 "우리 주연배우 (김)대호씨 왜 자꾸 안 나오냐"며 재치 있게 찾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절반은 김대호씨의 몫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대호>는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와 정서적으로 가깝다. 혹자는 이 작품을 두고 너무 순진하고 착하기만 한 게 아니냐며 비판할 수도 있고, 분량이 다소 길고 전개가 느려서 상업영화와 거리가 멀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한국영화들이 모두 흥행했던가. 철저히 상업영화를 표방했던 작품들은 저마다 다른 운명을 맞았다. 그 어떤 기준을 적용해서라도 <대호>가 2015년 한국 상업 영화의 지평을 한 뼘 더 넓혔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

▲ 최민식-정만식-김상호, '대호'와의 한판 대결! 영화 <대호>에 출연배우와 박훈정 감독(오른쪽에서 두번째). 또 다른 주연인 '대호'의 모습은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이정민



덧붙이는 글 영화 <대호> 관련 정보.

제공 및 배급 : NEW
제작 : 사나이 픽쳐스
출연 : 최민식, 정만식, 김상호, 성유빈, 오스기 렌, 정석원
각본 및 감독 : 박훈정
러닝타임 : 139분
개봉일 : 2015년 12월 16일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대호 최민식 정만식 정석원 김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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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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