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아이였다, 저녁에 어른이 되는 것은?

[인터뷰] 신작 <속삼임의 바다> 출간한 '카네기상 수상작가' 팀 보울러

등록 2015.12.11 17:46수정 2015.12.1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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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도서 웹진 <북DB>는 영국 소설가 팀 보울러와 지난 11월 26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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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보울러 ⓒ 다산북스 제공


<해리포터>를 제치고 만장일치로 '카네기 상(영국의 권위 있는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되었던 소설 <리버보이>의 작가 팀 보울러. 그는 현재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학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리버보이> <스타시커>와 같이 우정, 가족, 희망 등의 주제를 판타지 한 분위기로 풀어내는가 하면 반대로 <블레이드>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와 같이 범죄나 가족의 붕괴 같은 극한 상황에 처한 10대들의 방황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늘 '성장'이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다.

이번에 그가 우리에게 소개한 열다섯 살 소녀의 이름은 '헤티'. 고립된 작은 섬에 살고 있는 헤티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형상을 보거나 남들은 듣지 못하는 바다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소녀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헤티를 그저 몽상가로 취급할 뿐이다. 폭풍우가 치던 어느 날, 파도에 떠내려 온 정체불명의 노파에게 운명적 인연을 느낀 헤티는 노파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자신의 살고 있던 좁은 세계를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의 항해를 시작한 것이다.

팀 보울러의 신작 소설 <속삭임의 바다>는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던 한 소녀가 자신의 좁은 세계를 떠나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과정을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춘기 소녀의 심리, 소녀를 둘러싼 환경, 환상적인 이야기에 깊은 주제의식이 더해졌고, 각각의 인물들은 우연하고 필연적인 만남 속에서 서로의 '인연'에 대해 암시하고 있다.

현실적인 묘사와 환상적인 설정의 조화가 인상적인 이번 작품의 인물과 줄거리, 주제는 작가 팀 보울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 힘은 '사람 사이의 인연'에 있다"

- <속삭임의 바다>는 마치 상상 속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이 스토리를 쓰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저와 아주 가까운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병을 얻었습니다. 한 사람은 오래 지나지 않아 병에서 회복되었지만, 또 한 사람은 불치병이라 죽음을 향한 여정에 들어갔습니다. 두 사람의 대조적인 상황이 저에게 주인공 '헤티'와 '노파'의 관계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 관계를 통해 상실과 성장이라는 주제를 다루고자 했지요. 그 결과물이 바로 <속삭임의 바다>입니다."

- 이 작품은 시대적 배경이 모호합니다. 현재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과거의 특정한 시점을 떠올리게 하는 단서도 없습니다. 의도한 것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근원적인 이야기로써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입니다. 그런 만큼 독자들을 21세기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시대를 불분명하게 함으로써 독자들이 장소에 집중하도록 유도하고 싶었습니다. 고립된 섬에 사는 헤티의 외로움에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 그에 비해 작품 속에서 모라 섬의 지형은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됩니다. 모델이 된 실제 장소가 있나요?
"제가 영국 사람이니 아무래도 영국의 섬들과 닮은 부분이 있겠죠. 어떤 사람들은 책을 읽고서 모라 섬이 스코틀랜드 북부 해안의 섬들과 흡사하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제가 특정한 섬을 딱 집어 모델로 삼은 것은 아닙니다. 모라 섬은 어디까지나 제 상상 속에서 탄생한 섬입니다."

- 바다유리(유리병 등이 바닷물에 오랫동안 휩쓸려 조약돌 모양으로 매끄럽게 깎인 것)라는 것이 작품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바다유리가 영국 사람들에게 혹은 작가님께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영국에서 바다유리가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바다유리를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바다유리에 특별한 관심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휴일을 맞아 어느 섬에 갔을 때 아내가 해변에서 예쁘장한 바다유리를 찾아보고 싶다고 했고, 함께 해변을 거닐다가 바다유리와 연관된 스토리를 생각하게 되었지요. 정작 바다유리는 못 찾았지만 대신 이야기를 얻은 셈입니다. 나중에 <속삭임의 바다>를 쓰면서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바다유리를 등장시킨 겁니다."

- 갑작스레 등장한 낯선 노파에 대한 일부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중세의 마녀사냥을 떠올리게 합니다. 글을 쓰면서 염두에 둔 사건이 있었나요?
"마녀사냥을 떠올릴 수도 있겠네요. 닮은 점이 있지요. 편견과 증오와 두려움이 뒤섞여 낳은 폭력이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모라 섬이 특정한 섬을 모델로 하지 않았듯이 이것도 특별히 염두에 둔 사건이 있지는 않았습니다만, 독자들로서는 비슷한 경험이나 비슷한 역사적 사건을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자주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 헤티의 할머니와 퍼 노인은 나이가 많다는 점은 같지만 태도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헤티의 할머니는 이성적이고 현명한 반면 퍼 노인은 고집불통에 편견으로 가득 차 있지요. 이러한 대비를 보며 어떻게 나이 드는 것이 이상적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상적인 노인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적인 사람이란 것 자체가 존재할 수 없지요. 노인이든 젊은이든 말입니다. 이상적인 사람의 모습을 제시하는 것은 자신의 일이 아닙니다. 작가로서 저는 다만 매우 대조적인 성격과 특성 그 자체의 대비를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 헤티의 할머니와 퍼 노인의 대비는 극적인 상황을 증폭시켜 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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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보울러 ⓒ 다산북스 제공


- 헤티는 노파를 감싸다가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합니다. 작가님도 그러한 경험을 하신 적이 있으신지요.

"저는 퍽 운이 좋았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항상 둘러싸여 있었고 특별히 심각한 갈등은 없었거든요. 하지만 작가가 자신이 경험한 것만 써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요. 헤티와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저 역시 강한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꼈을 겁니다."

- 지극히 현실적인 묘사와 환상적인 설정들의 조화가 인상적입니다. 이 작품에서 환상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이 작품에서 환상은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경이나 주인공들 자체는 매우 현실적이지요. 모라 섬이라는 장소도, 헤티라는 인물도요. 여기에 환상을 등장시킴으로써 이야기를 더욱 다채롭게 하고자 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환상이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헤티 입장에서는 그것이 환상이 아닙니다. 자신이 겪는 또 다른 현실이라고 할 수 있지요."

- 작가님의 작품들은 탁월한 묘사와 은유적 표현으로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작가로서 작품을 완성시키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이번 <속삭임의 바다>를 집필하시면서 가장 신경 썼던 점에 대해서도 함께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묘사나 은유 같은 표현법들도 제가 글을 쓸 때 신경 쓰는 것들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역시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 그 자체입니다. 독자들이 재미와 감동과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스토리를 쓰는 것 말입니다. <속삭임의 바다>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쓰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 아닐까요?"

- 작품 속 인물들은 우연하고 필연적인 만남을 통해 서로의 '인연'에 대해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운명이나 인연의 신비로움은 작가님의 작품 속에서 유난히 아름답게 그려지는데요, 인연이라는 것이 살아감에 있어 어떤 힘을 준다고 생각하시나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존재이지요. 고립되어 살아가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사람 사이의 인연이 우리에게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 영향의 종류도 굉장히 다양하고요. 때로는 긍정적인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부정적이기도 합니다. <속삭임의 바다>에서도 그렇지요. 그래도 결국 우리가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 힘 또한 사람 사이의 인연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닐까요."

"10대들에 대해 글쓰는 것, 내 안의 '10대'와도 교감하는 일"

- 작품을 통해 꾸준히 10대 주인공을 다루고 있습니다. 10대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인생에서 10대보다 더 변화무쌍한 시기가 또 있을까요? 아침에는 어린 아이였다가 저녁에는 어른이 되기도 하지요. 그렇기에 더욱 흥미로운 시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10대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요. 더구나 제 안에는 여전히 10대 때의 제가 남아 있습니다. 10대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이 시대의 10대들과 교감하는 것일 뿐 아니라 제 안의 10대와 교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 용기를 내어 배를 타고 섬을 떠나는 헤티의 모습을 통해 성장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생을 살아감에 있어 본인의 선택을 믿고 나아간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작가님께서 헤티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많은 청소년들이 헤티에게 공감할 수 있을 겁니다. 혼란을 겪는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하지만 헤티는 결국 용기를 냅니다. 그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요. 하지만 성장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청소년들이 헤티에게 공감하면서 헤티의 용기 또한 전달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작가님은 그동안 <리버보이>, <스타시커> 등의 전작들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성장'이라는 주제에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들을 선보여 왔습니다. '성장'이라는 주제에 애정을 갖고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성장이라는 건 어떤 존재가 다른 존재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작가로서 저는 그런 변화 자체에 흥미를 느낍니다. 그래서 청소년이라는 독자층에 주목하는 것이고요. 성장은 청소년 시기에 가장 크게 일어나니까요. 하지만 저는 청소년 독자라고 해서 특별하게 취급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일부러 유치한 단어를 골라 쓰지 않습니다. 성장 과정에 있다는 것이 곧 무시당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 작가님께 '가족'이란 아주 소중한 존재였고 특히 외할머니, 친할아버지와의 관계가 각별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요, 작가님의 작품 속에는 노인과 청소년들의 관계가 늘 중점적으로 다뤄집니다. 노인과 청소년이라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온 인물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신가요?
"저는 노인과 청소년이 특별히 분리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꽤 다른 존재이긴 합니다. 노인에게는 없는 것이 청소년에게는 있고, 또 청소년에게는 없는 것이 노인에게는 있지요. 하지만 결국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서로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오히려 매우 다른 존재들이기에 그 인연이 더욱 흥미로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 한국 독자들은 작가님의 작품을 굉장히 사랑합니다. 앞서 말한 성장과 인연, 운명 등에 대해 보다 깊이 사유해볼 수 있는 작품들이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의 피드백을 받으실 텐데요, 작품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 한국 독자들만의 특별함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한국 독자들의 메일을 자주 받곤 합니다. 최근에도 한국의 청소년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는데, 제 작품을 읽고 삶의 용기를 얻었다고 하더군요. 또 제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만나 본 독자들은 하나같이 굉장히 열성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 주었지요. 그런 모습들을 보며 저는 한국 독자들의 풍부한 감수성을 가지고 작품을 받아들인다고 느꼈습니다. 저로서는 참으로 감사할 뿐이지요."

-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한국 독자 여러분, 저의 작품들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 작품도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네요. 이 이야기는 용기 있는 한 소녀의 성장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필을 하면서 저 자신도 헤티의 강인한 내면에 빠져들곤 했답니다. 여러분도 함께 공감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터파크도서 웹진 <북DB>(www.bookdb.co.kr)에도 게재됐습니다.

속삭임의 바다

팀 보울러 지음, 서민아 옮김,
놀(다산북스), 2015


#팀보울러 #속삭임의바다 #다산북스 #인터파크 북DB #북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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