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기, 제대로 망가졌다

[다다와 함께 읽은 책 34] 허은미가 쓰고, 윤미숙이 그린 <웃음은 힘이 세다>

등록 2015.12.18 13:27수정 2015.12.18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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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화내는 사람이 있을까? 다섯 살 둘째 녀석 말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엄마, 왜 아까 무서운 얼굴 했어?"
"네가 자꾸 엄마 말 안 듣고, 너 맘대로 하려고 하니까 기분이 안 좋아서. 왜? 무서웠어?"

"응."
"그럼 웃으면서 화낼까?"


말을 꺼내놓고 보니, 그게 진짜 되나 싶어 웃으면서 화를 내봤다. 망했다. 스타일만 구겼다(한번 해보시라, 생각보다 힘들다). 우스꽝스러운 내 얼굴을 본 애들은 배꼽을 잡고 웃는다. 뭐가 그렇게 좋다고 웃는 걸까. 생각해보니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아이들은 웃음이 '빵빵' 터진다.

큰애가 "엄마 (동생을 가리키며) 쟤가 방귀 뀌었어" 하고 이를 때 "넌 방귀 안 뀌니?" 한 마디만 해도 "깔깔깔". "엄마 고구마를 잘 못 말하면 뭔지 알아?" "모르겠는데?" "정답은 고소미" 엉뚱한 퀴즈를 내놓고는 "깔깔깔". "엄마는 왜 아빠를 자기라고 불러?" "그럼 뭐라 부를까? 여보?" 여보라는 말이 뭐가 웃긴지, 그래도 "깔깔깔". 꼭 두더지 게임을 하는 것 같다. 웃음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그런데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눈물을 찔끔거리며 웃는' 게 사람 뿐이라니. 허은미가 쓰고, 윤미숙이 그린 <웃음은 힘이 세다>를 읽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웃지 않는 빨강머리 소녀 웃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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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힘이 세다> 겉표지. ⓒ 한울림어린이

좋아하는 마음은 숨기기 어렵지. 새어나오는 방귀도 숨길 수가 없어. 터져 나오는 웃음도 참을 수가 없지. 사람도, 말도, 침팬지도, 늑대도 모두 웃어.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늑대들이 싸움이 난 후 어떻게 화해하는지 알아? 우두머리 늑대가 힘이 더 센 늑대에게 다가가 간질간질 장난을 친대. 그러면 어느새 싸움은 끝이 나고, 평화가 찾아온대.

그리고 말야.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눈물을 찔끔거리며 웃는 건 사람 뿐이래. 사람들은 좋아서 웃고, 웃겨서 웃고, 반가워서 웃고, 행복해서 웃고, 덩달아 그냥 웃기도 하지. 사진 찍을 때도 웃어. 근데 거기 빨강머리 넌 왜 안 웃는 거야?


"웃고 싶지 않으니까."
"왜 웃고 싶지 않은데?"
"몰라, 그냥 기분이 안 좋아. 괜히 심술이 나고, 자꾸 짜증이 나."

그럴 때 필요한 게 바로 웃음의 뿅망치지. 짜증괴물, 걱정괴물, 불안괴물, 후회괴물, 귀찮아괴물, 미움괴물, 심통괴물을 모두 뿅망치로 날려버려. 그래도 웃음이 안 나온다고? 그렇다면 늑대의 지혜를 빌릴 수밖에. 간질간질간질. "우하하, 그만해." 그래 그렇게 웃는 거야. 온 세상이 너를 따라 웃을 때까지(근데 이 말,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웃음은 힘이 세다, 웃음은 힘이 세다'라... 이 말의 이미를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9살 큰애에게 물었다.

"이 책 제목 말야, 웃음은 힘이 세다는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아니, 모르겠어."
"엄마도 헷갈리네... 알 것도 같고. 근데 웃지 않고 있으면 어때? 화내고 있으면?"
"외롭겠지, 친구들이 안 오니까."
"그래? 그렇지, 외롭겠네."
"아, 이제 알겠다. 반대로 웃고 있으면 친구들이 많이 오니까, 너도 나도 웃게 돼. 그래서 웃음은 힘이 세다고 하나봐."

아홉살 딸아이 입에서 '외롭겠지'는 말이 나올 줄 몰랐다. '바빠서 잘 못 챙겨 봤는데, 학교 생활 잘 하고 있는 거겠지?' 갑자기 걱정도 되고 뭔가 짠한 마음이 밀려온다. '그래도 큰애는 작은 일에도 잘 웃는 편이니,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웃음이 헤픈(?) 딸에게 별 일 아닌 것에 뭘 그렇게 웃냐고 타박 아닌 타박을 할 때가 많았는데,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살짝 다짐도 해본다.

사실 엄마아빠 피로물질 제거에 정말 탁월한 비타민은 바로 아이들 웃음인데... 가령 이런 날. 버스도 안 와, 지하철도 늦어, 날도 추워... 퇴근길 인파에 떠밀리다시피 해서 퇴근 후 2시간 만에 집에 도착한 그런 날. 정말 "딱 여기까지만!" 하고 두 손 들고 싶을 때 나를 덩달아 웃게 한 건 아이들 웃음 소리였다.

방실방실 웃는 아이들을 보며 '그래 이 맛에 살지, 뭐 사는 게 별 건가' 하고 스스로 마음 토닥였던 것. 그래 이거구나. 이제 엄마도 알겠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쉴 만큼 지친 엄마 마음도 일으켜 세우는, 니들 웃음이야말로 진짜 힘이 세. 엄마도 너희들, 더 많이 웃게 해줄게.

ps.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은 바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대사 중 하나.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웃음은 힘이 세다

윤미숙 그림, 허은미 글,
한울림어린이(한울림), 2015


#웃음은 힘이 세다 #한울림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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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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