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과 율곡선생의 오죽헌 답사

등록 2015.12.16 10:29수정 2015.12.1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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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는 단정히 앉아서 마음을 모으고 뜻을 극진히 하여 골똘히 생각하고 깊이 연구하여야 한다. 이렇게 해서 글 속에 담긴 뜻을 깊이 이해하고 구절마다 반드시 실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만일 입으로만 읽고 마음으로 본받지 않거나 행동으로 실행하지 않는다면, 책은 책대로 나는 나대로 되고 말 것이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 아무리 많은 책을 읽는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친구는 반드시 배우는 일과 착한 일을 좋아하는 사람, 행실이 바르고 엄숙한 사람, 곧고 진실한 사람을 사귀어야 한다. 그와 함께 있으면서 내 마음을 비워 그 사람의 규범과 경계를 받아들여 나의 단점을 다스려야 한다. 게으르고 장난을 좋아하며 말이나 꾸미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과는 사귀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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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 전경 ⓒ 한정규


율곡 이이(1536~1584) 선생의 가르침이다. 겨레의 어머니인 신사임당과 민족의 스승인 율곡 선생이 태어난 오죽헌을 다녀왔다. 15세기 후반에 지어진 오죽헌(烏竹軒)은 사임당의 어머니가 넷째 딸의 아들인 권처균에게 물려주었는데 집 주위에 까마귀처럼 검은 대나무가 많아 권처균이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 지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오죽헌 경내에는 오죽헌, 문성사, 어제각, 사랑채, 안채가 있다. 보물 제165호인 오죽헌은 조선 초기에 지어진 별당건물인데 주거 건축에서는 드물게 이익공의 구조를 하고 있어 주심포와 익공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건축사적으로도 중요한 건물이며 이곳 몽룡실에서 율곡 선생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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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 신사임당 동상 ⓒ 한정규


문성사(文成祠)는 율곡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문성이란 1624년 인조대왕이 율곡선생에게 내린 시호(諡號) 이다.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이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문성사 옆에는 율곡선생이 '이 소나무의 기이한 형상을 보니 천공(天工)의 오묘한 조화를 빼앗았다. 한참을 바라 보노라면 청아한 운치를 느낄 것이다. 소나무가 사람을 즐겁게 하는데 어찌 사람이 즐겨할 줄 몰라서야 되겠는가'라고 예찬한 율곡송이 있어 오죽헌을 더욱 고풍스럽게 하고 있다. 600년이 넘은 배롱나무가 운치를 더하고, 천연기념물 제484호인 율곡매는 홍매로 신사임당과 맏딸인 매창이 그린 매화도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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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사 앞 율곡송 ⓒ 한정규


정조 대왕이 1788년 율곡선생의 친필 '격몽요결(擊蒙要訣)'과 어린 시절 사용하던 벼루를 보고, 책에는 머리글을, 벼루 뒷면에는 율곡선생의 학문을 찬양한 글을 새겨 소중히 보관하라는 명을 내리자 이를 보관하기 위하여 지은 집이 어제각(御製閣)이며, 이곳에 벼루와 격몽요결이 보관되어 있다.


홍재전서 제55권을 보면 '율곡(栗谷)이 손수 초한 격몽요결(擊蒙要訣)의 앞에 쓰다 무신년(1788)'이란 글에, "근자에 들으니 강릉에 초본(草本) '격몽요결(擊蒙要訣)'과 남긴 벼루가 있다고 하므로 속히 가져오게 하여 살펴보았더니, 점획(點畫)이 새로 쓴 듯 처음과 끝이 한결같아 총명하고 순수한 뛰어난 자질과 비가 갠 뒤의 바람과 달처럼 깨끗한 기상을 애연(藹然)히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이렇게 기록하고 또 그 벼루의 명(銘)을 지어 돌려보냈다"라고 적혀 있다.

정조 대왕이 벼루 뒷면에 직접 쓴 내용은, '무원 주자의 못에 적셔 내어, 공자의 도를 본받아, 널리 베품이여, 율곡은 동천으로 돌아갔건만, 구름은 먹에 뿌려, 학문은 여기 남아 있구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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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대왕이 벼루 뒷면에 직접 쓴 글 ⓒ 한정규


오죽헌 사랑채 툇마루 기둥에는 멋스러운 추사체 주련이 걸려 있는데, 정면 앞 기둥에 4개, 뒤에 3개, 측면에 3개로 총 10개가 걸려있다. 주련의 내용은 명나라 진계유(陳繼儒, 1556~1639)의 암서유사(巖棲幽事)로 '객이 초당을 지나다 바위산에 사는 일에 관해 나에게 묻길래 내가 답하기 싫증나 그냥 고인의 시구를 가지고 응답했다'는 구절이다. 사랑채를 빛나게 하는 주련 글씨는 김정희가 직접 쓴 것인지, 집자를 한 것인지는 알 수 없고, 1823년 9월에 오죽헌에 방문해 방명록을 쓴 기록이 있다고 한다. 주련 글씨는 제주도 유배 이후의 글씨로 보인다.

추사체는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글씨로, 일반적으로 제주도 유배(1840~1848) 시절에 형성된 것으로 보는데, 글자의 획이 굵거나 가늘고, 메마르거나 기름지고, 험악하고 괴이해서 얼핏 보면 옆으로 삐쳐나가고 종횡으로 비비고 바른 것 같지만, 조형적인 면에서 예술의 극치에 이른 당대 최고의 서예가로 평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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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글씨의 사랑채 주련 ⓒ 한정규


오죽헌 경내에 있는 율곡기념관은 오죽헌의 역사와 신사임당, 율곡 이이, 이매창, 옥산 이우, 고산 황기로 등 오죽헌과 관련된 인물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관이다. 전시된 유물을 통해 신사임당의 지성과 예술성이 자녀들에게 대물림되었음을 볼 수 있다.

신사임당의 유명한 '초충도'를 볼 수 있고, 친필로 쓴 당시(唐詩) 오언절구 초서병풍이 있는데, 점획이 단정하고 자형이 명료하며 짜임이 단아하여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차분한 풍격으로 신사임당의 인품을 보는 듯하다. 자연을 서정적으로 그린 이매창의 그림, 시대의 예인으로 빛난 옥산 이우 작품, 우리나라 초서의 대가인 황기로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신사임당의 초서병풍 복제품이 수원박물관 2층 서예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 언제든 볼 수 있다.

강릉은 교통이 편리해 하루 여행이 가능한 곳이다. 가슴이 답답하면 동해바다의 시원한 기운을 마시고, 뜻 깊은 역사 유적지인 오죽헌을 둘러보면 예술적 감흥을 받을 수 있어 좋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e수원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오죽헌 #신사임당 #율곡 이이 #추사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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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가슴에 안고 살면서 고전과 서예에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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