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서울' 아닌 청년들, 인생실패 아니라고 쓰는 글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 후기] '지방소도시 청춘남녀 인터뷰'의 탄생 비화

등록 2015.12.31 10:54수정 2015.12.3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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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최고의 활약을 펼친 시민기자에게 주는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에 윤근혁, 배지영 시민기자가 뽑혔습니다. 두 사람만의 최고의 기사를 쓰는 비법을 알려드립니다. [편집자말]
"군(산)여고 2학년 7반 담임 선생님인데 진짜 예뻐. 새만금 마라톤 대회에 반 학생들을 다 데리고 나왔다니까. 완주하고 모여서 고기 구워먹는데 분위기가 너무 좋더라. 학생들도 다 예쁘고. 어떤 사람은 신기하다고 사진까지 찍드라야. (웃음) 나는 어떻게 했게? (선생님) 번호 따 왔지. 그런 멋진 기사는 우리 배지영이가 써야지. 꼭 써!"


이재희 언니가 군산여고 심은정 선생님 전화번호를 알려준 때는 2014년 5월이었다. 4월 16일 이후, 한 글자도 쓰지 못하던 나는 '예쁜 선생님'과 '예쁜 학생들'이라는 말에 끌렸다.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던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또래들. 나는 하루 동안 생각한 뒤에야 용기를 냈다. 심은정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심은정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거의 한 달 만에 글을 썼다. 기사는 '지각했다고 뺨 맞은 학생, 지금 이렇게 됐다'는 제목을 달고 세상으로 나갔다. 마침 스승의 날이었다. 20여만 명이 읽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도 이런 스승이 있네요'라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감동했다고 따로 쪽지를 보내는 사람도 몇 명이나 있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하라"고 서울 가다가 시작된 인터뷰

2014년 3월, '지방소도시 청춘남녀 인터뷰'를 쓰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 배지영


2014년 8월 15일, 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 대회'에 갔다. '내 새끼들이 왜 죽었는지 진실을 알고 싶다'는 부모들을 사찰하고, 길바닥에서 며칠이고 자게 만드는 몰염치에 속이 상했다. 먼지만한 힘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 가는 관광버스를 탔다. 내 옆자리에는 '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 유재임 사무처장이 앉았다.

"사무처장님, 며칠 전에 독일 오스나부뤽에서 오페라 상임지휘자로 일하는 분을 만났거든요. 이름은 송안훈, 휴가라서 군산 집에 왔대요. 어릴 때는 보리 구워 먹고 놀았대. 피아노는 고등학교 때 본격적으로 쳤고요. 주위에서 다 말렸대요. 늦었다고. 근데 미칠 듯이 해서 독일까지 간 거예요. 그 사람 인터뷰 글 썼는데 읽어볼래요?"


아직 <오마이뉴스>로 송고하지 않은 글, 내 자매와 노는 인터넷 카페에 올려놓은 글을, 유재임 사무처장이 읽었다. 그녀는 "지영, 전에도 이런 젊은이 글 쓰지 않았어?"라고 물었다. 군산에서 고등학교 졸업하는 학생들이 읽으면 딱 좋을 것 같다면서 몇 명 더 쓰라고 했다. 소책자로 만들어서 졸업생들에게 나눠주는 건 어떠냐고 제안을 하면서.

한 해 3천여 명의 아이들이 군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인서울'은 그 중 10% 미만. 스무 살 봄을 고향에서 맞는 청춘들은 풀이 죽는다. 200여 년 전에도 그랬다. 볼 것도 많고, 기회가 많은 한양에서 살라고 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유배 가서도 아들들에게 '한양 사대문 안'의 삶을 당부했다. 그래서인가. 지금 우리나라 인구의 약 50%는 서울과 수도권에 산다.

우리나라 사람만 '도회지'를 동경하는 건 아니다. 10여 년 전, 길에서 미국 사람 유지니오를 만났다. 원래 그는 필리핀 옆에 있는 섬나라 팔라우 사람. 태평양을 가리키며 "저 바다 너머로 가서 살아라"고 한 그의 어머니 덕분에 미국으로 갔다. 나도 엄마, 아이들의 앞날을 고민한다. 그러나 '공부 잘 해서 서울 가라'는 말은 안 나왔다. 

"제굴아, 엄마랑 이모가 왜 대형마트 안 가는지 알지? 거기서 물건 사면, '서울 부자사람' 한테 돈이 다 가는 거야. 그래서 우리 식구들은 동네 식당, 동네 마트, 동네 카페 다니는 거고. 나중에 너랑 네 친구들이 군산에 있는 회사 다니거나 동네에서 장사할 수도 있거든. 그러니까 물건은 동네 가게에서 사야 한다이."

나는 일찌감치 아이들의 미래에 연대하기 위해서 동네 가게를 다녔다. 그러니 인터뷰 기준을 정할 때 쉬웠다. 군산에서 삶을 꾸려가는 젊은이들, 떠났다가도 군산으로 돌아온 청년들 얘기를 쓰기로 했다. '세월호 특별법제정을 위한 범국민 대회'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연재 제목도 정했다. '지방소도시 청춘남녀 인터뷰'로.

처음 만난 사람은 김형석씨. 우리 동네에서 세탁소 하는 청년, 일이 한가해진다는 오후 8시에 만났다. 형석씨는 대형마트 정규직원으로 일하다가 세탁기술 배우게 된 이유를 조곤조곤 얘기했다. 세탁협동조합을 만들어서 '꿈의 주 5일 근무'를 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저 같은 사람이 기사에 나오면, 누가 읽기나 할까요?"라고 물었다.

그 뒤로 마술사 김승준씨, 발효 빵 만드는 이산하씨, 요리하는 김대열씨를 만났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마술사 문태현씨와 플라스틱 재활용 회사를 하는 오복성씨와 비키니 선수 김수정씨를 만났다. 중학교 졸업반인 우리 큰애도 재미있다고 글을 읽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들어가서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일주일 하고는 "이렇게는 못 살아요. 자퇴할 거야"라고 했다.

"자퇴가 나쁘다는 게 아니야. 근데 자매가 만날 자퇴한 청년들 글을 쓰니까 제굴(큰애)이가 저러지. 거기에 얼마나 깊은 고민이 들어있는지는 아직 모르잖아."

동생 지현이 말했다. 남편은 "공부만 하러 학교 다니는 거 아니야"라며 큰애를 설득했다. 친구들이랑 쉬는 시간에 매점 가고, 점심시간에 축구하는 것도 다 공부라고. 비 오는 날, 우산 없어서 비 맞고 걸어오는 것도 해봐야 한다고. 나는 큰애에게 자퇴하라고 했다. "대신, 3개월 치 등록금 낸 거 아까우니까 그때까지만 참아"라고 했다.

2015년 7월. 고등학교 자퇴하고 싶다던 우리 큰애 강제굴. 제굴은 야자 안 하고 집에 와서 저녁밥을 했다. 나는 '야자 대신 저녁밥 하는 고딩 아들'이라는 연재 기사를 쓰고 있다. ⓒ 배지영


나는 폭넓은 인간관계를 못 한다. "열심히 사는 젊은이들 보거들랑 재깍 제보해주세요"라고 부탁할 곳도 많지 않다. 그런데도 연재는 이어졌다. 지인들과 <매거진군산>을 통해서 계속 인터뷰 의뢰가 들어왔다. 다른 지방 청년들도 자신의 얘기를 써달라고 이메일로 요청해 왔다. 나는 따로 밥벌이가 있는 사람, '출장 인터뷰'는 못 가니까 미안하다고 했다. 전주에서 '우리가 깨달은 것들'을 운영하는 원민씨는 군산까지 찾아왔다.  

"배지영 기자는 한가하게 포퓰리즘 기사만 쓰고 있네요. 군산에 살고 있는 사람 맞습니까? 왜 송전탑 문제(한전은 공단에 전기를 공급한다고 옥구 평야를 가로지르며 철탑공사를 강행, 어르신들은 우회도로를 제시하며 투쟁 중)나 백석제(얼마 전에 1급 습지로 밝혀짐, 군산시는 이곳에 대학병원을 지으려고 함) 기사는 쓰지 않습니까?"

비슷한 내용의 쪽지나 이메일이 올 때마다, 나는 멍해졌다. 마음을 가다듬고 남편한테 물어봤다. 남편은 "그 사람들은 호소를 하고 싶은 거야. 들어주는 데가 없잖아"라고 말했다. 남편 말에 하나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은 나는 "현장 기사를 쓰는 사람은 신이야. 나는 그럴 능력이 없어. 눈물이 앞선다고" 말했다. 남편은 좀 생각하더니 말했다.

"배지영이 쓰는 기사도 의미 있어. 우리 사회는 '공부 잘 해서 성공해야 한다'는 통념이 있잖아. 그런데 배지영은 그런 성공과는 다르게 사는 젊은이들 글을 쓰잖아. 그렇게 안 살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그러니까 체제에 저항하는 글을 쓰고 있는 거야. 지금처럼 한 분야를 정해서 글을 쓰는 것도 좋은 거라고."

이름, 나이, 직업 세 가지만 알고 하는 인터뷰

내가 인터뷰 하는 젊은이들은 유명인이 아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는다. 정확히 알고 가는 정보는 세 가지. 이름, 나이, 지금 하는 일 뿐이다. 인터뷰는 카페에서 하거나 일터로 찾아가서 한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기가 쉬운가. 초반에는 겉돈다. 녹음 중지를 누르고 나서야 진짜 이야기가 나온 적도 있다.

'헬조선'은 지방에 사는 젊은이들에게도 해당한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산전수전공중전'을 겪는다. 청년들이 그런 이야기를 담담하게 해줄 때 감동 받는다. '내가 질문을 똑똑하게 잘 하면, 더 좋은 이야기도 나올 텐데'라고 고민도 한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데미안>에서, 나는 답을 얻었다.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먼 옛일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가능하다면 훨씬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내 어린 시절의 시작은 물론, 훨씬 더 이전의 먼 조상의 일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2015년, 사람들이 살아온 얘기를 듣고서 글을 쓰는 데에 많은 시간을 썼다. 다 쓴 글은 1차 독자인 동생 지현에게 보낸다. 그 중 20%는 퇴짜 맞아서 다시 썼다. 그리고는 인터뷰 해 준 사람들한테 보낸다. 녹음을 하고 그걸 풀어서 글로 썼지만, 혹시라도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는지, 직업상의 전문용어를 내가 잘못 썼는지 봐 달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 어떤 이는 '애썼다'는 말이 처절해서 싫다며 '노력했다'로 고쳐달라고 한다. 어떤 이는 졸업한 고등학교나 대학 이름이 밝혀지는 게 싫다고 빼 달라고 한다. 대부분은 그렇게 단어 몇 가지만 고친다. 그런데 어느 청년은 내가 A4 3장 분량으로 쓴 글을 6장으로 덧붙여서 보냈다. 자기 홍보를 무척 많이 해서.  

"이렇게는 (기사로) 못 나가요."

나는 성숙한 자세로 말했다. 그러나 충격은 컸다. 남편은 아직 안 들어왔고, 동생 지현은 자고 있을 시간. 오래도록 뒤척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우리 식구 중에서 가장 '현자'인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그 사람도 몰라서 그랬을 거야. 소개해주는 사람이 아마 '광고도 되고 좋을 거야'라고 했겠지"라며 간단하게 정리했다.   

'어떻게 살까?' 질문을 던지고 싶어서 쓰는 글

그래도 여전히 낙담. 글 쓴다고 흰머리가 늘고, 옆구리에 살이 쪘다. 꽃 같은 내 아이들에게 "글 쓸 때는 말 좀 시키지 말라고!" 짜증을 냈다. 인터뷰 글을 안 썼으면 놀러 다니는 얘기나 한 번씩 썼겠지. 밥벌이 끝나면 애들이랑 뒹굴고 놀다가 잤을 테고. 그런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기 얘기를 써 줘서 고맙다고 문자를 보내준 젊은이들 생각도 났다. 

"청춘남녀 인터뷰 글은 좋은 대학 못 가도, 좋은 직장 못 들어가도, 돈 많이 못 벌어도, 인생실패 아니라고 쓰는 거예요. 우리 큰애처럼 공부 말고 다른 걸 하려는 고등학생들 읽으라고요. 20, 30대 젊은이들도 읽고요. '어떻게 살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어서 쓰는 글이에요. 인터뷰에 응한, 그 한 사람을 광고해주려고 쓰는 글이 아니에요."

나는 이틀 동안 생각한 뒤에 청년을 소개해준 사람한테 '카톡'을 보냈다. 그 청년도 "죄송합니다. 몰라서 그랬어요"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인터뷰 글을 쓰고 있다. 엄마가 쓴 글을 제법 읽은 우리 큰애는 자퇴한다는 말을 안 한다. 정규 수업이 끝나면 집에 와서 저녁밥을 한다. 공부하는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불안해하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야자 대신 저녁밥 하는 고딩 아들'을 연재기사로 쓴다. 남편은 가게를 오랫동안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 동네 오래된 가게들'도 쓴다. '나이가 많다'고 거절했던 젊은이들은 '청춘남녀 인터뷰 번외 편 서른여섯에서 마흔까지'로 묶어서 쓴다. 쓰다 보니 글 쓸 거리가 자꾸 딸려 나오고 있다.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영화 <암살>에서 독립운동가 안옥윤이 한 말이다. 그 전에 하와이 피스톨은 "두 사람을 죽인다고 독립이 되느냐"고 물었다. 군산이라는 소도시 청년들이 뜨겁게 살아가는 얘기를 쓴다 한들 바뀌는 건 없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도 청년들 삶을 기록하고, 자기 생활을 가진 고등학생들 얘기가 자꾸 터져 나온다면, 균열은 생길 거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2015년 2월. 아이들의 미래에 연대하기 위해서 우리 식구들은 동네 가게에 간다.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나는 '지방소도시 청춘남녀 인터뷰' 기사를 쓴다. ⓒ 배지영




#야자 대신 저녁밥 하는 고딩 아들 #지방 소도시 청춘남녀 인터뷰 #동네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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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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