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왜 낯선 사람을 따라갈까?

[그림책 육아 일기 ⑧] 로베르토 인노첸티가 그린 <빨간 모자>

등록 2015.12.30 11:40수정 2015.12.3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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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안전교육으로 낯선 사람들이 강제로 차에 태우거나 끌고 갈 때 '안돼요, 싫어요, 도와주세요!'라고 큰소리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한 명씩 해보았어요. '○○아, 과자 사줄게. 차에 타서 같이 가자'라고 하니 씩 웃으며 '네!'라고 하더라고요. 깜짝 놀라서 낯선 사람이 가자고 하면 '안돼요, 싫어요!'라고 큰 소리로 말하라고 다시 가르쳤어요. 가정에서도 다시 전달해주세요.'


우리 첫째 어린이집 수첩에 적힌 이야기다. 과자 하나에 낯선 사람을 따라간다고 했다니, 우리 아들 이렇게 쉬운 남자였구나. 며칠간 작정하고 계속 교육을 했다.

"잘생긴 아저씨가 삐뽀를 줘도, 이모 닮은 누나가 케이크 먹으러 가자고 해도 절대 따라가면 안 돼. 엄마 아빠를 못 보게 될 수도 있어!"

맛있는 음식과 소방차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이가 엄마를 못 본다는 말에 그만 울음을 터뜨린다. 그런 일은 없을 거라며, 온몸으로 꽁꽁 감싸 안고 달래 주었다. 이렇게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은 늘 안전과 위험이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를 하곤 한다.

에런 프리시가 새롭게 쓰고 로베르토 인노첸티가 그린 그림책 <빨간 모자>를 펼쳐 들었다. 아동 성폭력을 묘사한 이 그림책은 3살 첫째에게는 다소 어렵고 무섭다. 첫째에게 이건 엄마가 보는 책이라고 말했지만, 자기도 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책장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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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 겉표지 에런 프리시 글, 로베르토 인노첸티 그림 ⓒ 사계절


금방이라도 온갖 소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번잡한 도시를 어린 소피아가 혼자 걷고 있다. 책 속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 인형이 말한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지.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도, 실은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거든."

그러나 할머니 댁에 가는 심부름도 잊고 화려한 도시 숲 풍경에 넋을 잃은 소피아에게 이 말이 들릴 리가 없다. 이 책은 빨간 모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림책이기에, 숲 대신 '더 우드'(The Wood)라는 거대한 쇼핑몰이 나온다. 소피아가 인형 가게에서 묘한 표정으로 꽃을 들고 있는 빨간 모자 인형을 보는 장면은 이 책이 보여주는 두 가지 결말에 대한 암시를 풍긴다.

갑자기 한 무리의 자칼 같은 이들이 나타나 소피아를 괴롭히려 한다. 이때 멋지게 차려입은 한 남자가 나타나 소피아를 구해준다. 소피아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그 남자의 오토바이를 잠시 얻어 탄다. 그리고 다시 먼 길을 걸어 할머니 댁에 도착한다.

할머니 댁에 익숙한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고 늑대 꼬리가 얼핏 보인다. 늦은 밤 소피아 엄마의 연락을 받은 경찰이 출동하고, 할머니 인형에게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이 엉엉 울며 이야기가 끝난다.

그런데 할머니 인형은 또 하나의 결말을 이야기해 준다. 이야기는 날씨처럼 변화무쌍하다고, 다르게 끝난다고 상상해보라고 한다. 나무꾼이 어슬렁거리는 늑대를 신고해 늑대가 붙잡히고 소피아는 구출되는 결말을 말이다.

나는 이 책을 읽어줄 때마다 첫째에게 나쁜 아저씨는 잘 생기고 친절하게 웃으며 멋진 차를 타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늘 강조한다.

2009년 EBS 다큐프라임에서 방영된 <아동범죄, 미스터리의 과학 3부작>은 낯선 사람을 쉽게 따라가는 아이들의 심리를 풀어내 화제가 된 바 있다. <1부. 아이들은 왜 낯선 사람을 따라가는가?> 편에서 미국 어린이 안전 전문가 켄 우든 씨는 범죄자들이 아이들을 유인할 때 사용하는 패턴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애정을 표현 / 도움을 요청 / 애완동물을 이용 / 선물을 이용 / 위급상황을 가장 / 장난감과 게임을 이용 / 친숙한 이름을 이용 / 놀이 친구를 가장 / 온라인을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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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에 대한 한국 아이들과 미국 아이들의 시각 차이 ⓒ EBS 다큐프라임


한국에서 일어난 유괴사건 역시 켄 우든 씨가 말한 패턴과 상당 부분 일치했다. EBS 다큐프라임 제작진은 이 패턴으로 국내에서 모의실험을 했다. 부모의 믿음과는 달리, 아이들이 거리낌 없이 낯선 사람을 따라가고 주소를 알려주며 그 차에 올라타는 반응은 충격적이었다.

한국과 미국 아이들은 낯선 사람을 전혀 다르게 그려냈는데, 이 점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 아이들은 '낯선 사람'은 여자일 수도 있고 매일 보는 사람일 수도 있으며 평범하다고 표현했다. 반면, 한국 아이들은 '낯선 사람'은 인상이 험악하고 흉기를 가지고 있으며 더러운 옷차림일 것이라고 말하였다.

실제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자들의 얼굴이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이나 범죄자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보통 사람임을 알려주어야 한다. 하지만 낯선 사람이 평범한 사람일 수 있다는 교육만으로는 아이들을 지켜내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혹시 모를 범죄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무조건 외면하라고 가르쳐야만 하는 걸까? 켄 우든 박사는 '착한 아이 신드롬'을 악용하는 범죄 예방을 위해 '어떻게 어려운 사람을 도울지'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직접 도와주는 것만이 꼭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 자신이 직접 돕기보다는 주위에 도움을 요청함으로써 자신을 지키고 동시에 도움을 주는 방법을 교육해야 한다.

갓 태어났을 때는 품 안에 쏙 들어오던 아이가 점점 내 품보다 더 커져 나간다. 손 하나 발 하나가 삐죽 나오는가 싶고, 어느덧 제 발로 걸어 다니기 시작해 행여 넘어질세라 졸졸 따라다니기 바쁘다. 그러다가 어느덧 혼자 놀이터에도 보내고 심부름도 시키며, 저녁 늦게 귀가해도 그러려니 할 만큼 아이가 훌쩍 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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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도움 요청을 받고 도와줄 누군가를 찾으러 가는 학생의 모습 ⓒ EBS 다큐프라임


아이가 그렇게 자라나는 동안 소중한 아이를 자칼과 늑대 같은 사람들로부터 지키려면 부모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아이들을 지킬 사회적 안전망 구축을 위해 어떤 요구를 해야 할까?

EBS 아동범죄 미스터리의 과학 2부에 나오는 <소아기호증 환자가 미국 아동안전 전문가 켄 우든에게 보낸 편지>에서 작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보이고 한편, 모의 역할 놀이를 통해 실제 상황을 대비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사회는 성범죄자들이 재범을 일으키지 않도록 관리체제를 공고히 하고, 아이들의 안전한 등하굣 길을 위해 안전관리 시스템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소아기호증 환자가 미국의 아동안전 전문가 켄 우든에게 보낸 편지>

나는 소아애호증을 가진 소아성애자입니다.
사람들은 아동 성추행범이라고도 합니다.
내가 당신의 아이를 곧 추행할 것을 알리기 위해 이 편지를 씁니다.
그렇지 않을 거라고요?
얼마나 쉬운지 말씀드리죠.

아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듣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유치한 대화로 치부할 때,
당신은 당신의 아이를 나에게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아이가 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는 귀가 있습니다.
당신이 아이의 친구 앞에서 아이를 혼내거나 비웃을 때,
당신은 당신의 아이를 나에게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아이를 무릎 위에 놓고 귀여워하거나 안아주지 않을 때,
당신은 당신의 아이를 나에게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내 무릎은 어떤 아이든 안을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나는 아이를 무척 잘 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아이에게 칭찬을 충분히 해주지 않을 때,
당신은 당신의 아이를 나에게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관심과 애정이 무척 많습니다.
내가 누구냐고요?
난 당신의 이웃일 수도, 직장 동료일 수도, 아이의 선생님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알 수도 모를 수도 있지만, 당신의 아이는 나를 알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아이에게 주지 않았던 관심과 애정을 주고 있는 좋은 사람입니다.
그 보답으로 당신의 아이가 해야 하는 것은 내 성적 욕구를 따르는 것입니다.

난 멈출 수 없습니다.
아이가 추행당할 리 없다는 당신의 자신감이나
이웃의 아이가 추행당하는 것에 대한 당신의 무관심,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당신의 무지는
나 같은 사람들이 당신의 아이를 추행하기 쉽게 만듭니다.

[그림책 육아 일기 ⑦] "엄마, 엄마도 같이 먹어요, 앉으세요."
덧붙이는 글 * 기사에 소개한 그림책: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 / 에런 프러시 글, 로베르토 인노첸티 그림 / 사계절 펴냄.
* 해당 기사에 삽입한 방송 스크린 이미지샷은 EBS 다큐프라임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육아 일기 #그림책 #빨간 모자 #유괴 방지 #아동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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