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목안시민공원에서 바라본 수리산
허시명
한번은 수리산에서 막걸리를 팔다가 1000만 원이 넘는 벌금을 받고 정식 양조면허를 내기 위해서 막걸리학교를 찾아온 이가 있었다.
"아유, 그렇게 많은 벌금을 내셨어요? 조금 적게 팔았다고 말씀하시지 그랬습니까?" 위로 삼아 그렇게 말했더니 그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자신이 담근 술맛이 좋아서, 이 산 저 산에서 그 술을 가져다 팔았나 보다. 그 사람들이 죄다 잡혀들어가 언제부터 얼마 분량의 술을 팔았는지 실토하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이는 술을 배우고, 수리산 자락의 마을에 양조장을 내고, 수리산 봉우리 하나를 술 이름 삼아 술을 빚고 있다.
산에 가면 사람들이 막걸리를 한 잔씩 하려 든다. 좋은 관행은 아니다. 그래서 단속을 하지만, 단속반원이 산에서 살 수도 없는지라, 그것을 쉽게 막아내지 못한다. 막걸리 한 사발에 2000원, 짭조름한 마른 멸치에 고추장이 안주로 나온다.
굳이 산중의 술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른 술도 아니고 왜 막걸리가 산속에서 먹히냐를 살펴볼 필요가 있어서다. 등산가들이 가지고 다니는 필수품 중에 위스키가 있다. 작은 병 위스키는 50㎖ 정도 되는데, 알코올 40% 위스키 한잔에 140㎉가 들어있다. 공깃밥 한 그릇이 300㎉이니, 반 공기 밥을 먹었을 때의 에너지를 얻는다.

▲ 작은 술병이 매달려 있는 지팡이.
허시명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아예 작은 술병이 달려있는 등산 지팡이를 보기도 한다. 산속에서 탈진했을 때에, 술 한 잔이 위급한 상황을 구해준다. 그렇다면 막걸리는 왜인가? 알코올 도수가 6%이고, 막걸리 한 잔 200㎖에 84㎉ 정도다. 알코올 도수가 낮아 위스키보다 낮은 에너지를 얻긴 하는데, 허기를 면할 수 있고 갈증해소 음료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먹히는 듯하다. 그래서 산밑에서는 소주보다는 막걸리가 훨씬 더 잘 팔리고, 그에 어울리는 두붓집이나 전집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술은 그 바깥에 '길'이 있다

▲ 마로니에 꽃이 피던 날
허시명
산속 수리산 병목안에도 옥수수 막걸릿집이 있다. 여느 막걸리보다 더 달다. 땀을 많이 흘리고 에너지를 많이 소비해서 단 것이 당기는 하산객들에게 단맛 도는 옥수수 막걸리가 인기다.
산속에서 살면서 막걸릿집과 맥줏집이 아슬아슬하게 경합하면서 공존하는 것을 보면서 지내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곳에 살며 술을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서 민속학과 문화콘텐츠학을 배웠고, 외국에 나가 술 공부도 하고 국내외 산지사방으로 술 기행을 다녔다. 왜 술에 싸여 살까? 너무 깊이 취한 것은 아닐까? 수리산을 들고 날 때마다 내게 던졌던 물음들이다.
수리산 산속 마을을 떠나던 날, 이삿짐을 정리하는 데 책만큼이나 술이 많았다. 나의 이사는 책장과 책을 지고 다니는 일인데, 이제 식구가 늘어 술통과 술까지 지고 다녀야 한다. 유통 기한이 있는 발효주들은 맛을 보고 버릴 수 있는데, 증류주는 그럴 수가 없다. 세월이 더할수록 알코올과 물이 굳건히 결합하면서 맛이 순해지니 들고 다닌다.
그러면서 술병 하나에 한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다. 술을 만든 사람의 얼굴, 술을 건네준 사람의 얼굴, 이 술을 함께 마시고 싶은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책은 그 속에 길이 있는데, 술은 술을 둘러싼 그 바깥에 길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