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쓰시죠? 축하해요"
이 첫 마디에서 특종이 나왔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 후기]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문제의식'

등록 2015.12.31 10:54수정 2015.12.3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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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최고의 활약을 펼친 시민기자에게 주는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에 윤근혁, 배지영 시민기자가 뽑혔습니다. 두 사람만의 최고의 기사를 쓰는 비법을 알려드립니다. [편집자말]
335.

30일 현재 제가 올해 들어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 개수입니다. 쉬는 날 포함해서 하루에 한 개꼴로 썼네요. 이 가운데 기억에 남는 기사는 3개 정도인데요.

어떤 방식과 생각으로 그 기사들을 쓰게 됐는지 적어보겠습니다.

영어 못 알아들은 나만 특종 한 사연


먼저 소개할 기사는 "한국교육 사실은" 돌발발언에 외국대표들 박수 세례" (5월 20일자)입니다. 지난 5월 20일 15년마다 열리는 전세계인의 교육올림픽이라는 세계교육포럼 행사가 인천 송도에서 진행되던 날. 이날은 특히 한국교육특별발표회가 오후 4시쯤부터 열렸죠.

게으른 저는 오후 2시쯤에 서울에 있는 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이 행사의 현장중계를 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안내문에 '동시통역 안 됨'이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영어로만 진행하고 통역은 안 한다'고 하니 맥이 풀렸습니다.

결국 전철을 타고 송도에 있는 현장으로 갔습니다. 두어 시간 걸렸죠. 현장에 가니 행사가 진행되고 있더군요. 한국 패널이든 외국 패널이든 죄다 영어로 뭐라 뭐라 하더군요. 다행히 현장에선 동시통역이 되기에 이어폰을 꽂고 유심히 귀를 기울였습니다.


모두 한국교육 추켜세우기에 여념이 없더군요.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다음처럼 '다양성'과 '평등성'을 부르짖기도 하더군요.

"경쟁보다는 협력, 다양성을 추구하는 미래형 인재를 키우는 것이 (한국의) 교육 비전이다. 모두를 위한 평등한 교육을 보장함으로써 교육은 양극화를 극복하는 사다리가 되어야 한다."

일제고사로 경쟁을, 국정교과서로 획일화를, 귀족형 중고교로 불평등 교육을 조장하는 정부의 수장치고는 허풍이 세더군요.

그런데 돌발사태가 터졌습니다. 참석자 질문이 시작된 이날 오후 6시쯤이었습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한 여성 참석자가 질문을 하려고 손을 들었는데 사회자가 질문권을 주지 않는 거예요. 그것도 서너 차례나.

결국 이 여성은 "발언권을 달라"고 말하면서 영어로 발언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어 동시통역은 끊긴 상태여서 어떤 말을 했는지는 그때는 몰랐죠. 이 여성이 바로 한국 정부가 70명의 한국대표 인사(장·차관과 교육감 포함)로 뽑은 인물 가운데 한 명인 평화교육기구 '모모'의 문아영 대표였습니다.

문 대표의 영어 발언을 알아들을 수 없는 저는 당연히 수첩에도 적을 수가 없었겠죠? 그래서 핸드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친구들을 동원해 번역을 해볼 요량이었죠. 현장에는 30여 명의 한국 기자가 있었는데 이들은 잘 받아 적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문 대표의 발언은 한국교육의 문제점을 일목요연하게 지적한 내용이었습니다.

문아영 대표 = "한국 정부가 이 중요한 국제 행사 시간에 90분간에 걸쳐 스스로의 교육에 대해 칭찬만 늘어놓은 것은 정말 촌스러운 일이다. 스스로 칭찬한다는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한국 학생들의 고통, 탈학교 문제, 교실 붕괴 등에 대해 한두 마디라도 하면 좀 나았을 텐데 이런 것을 숨긴 것 자체가 정말 수준 이하였다."

문 대표 발언 당시 회의 포럼 참석자 수백 명이 문 대표에게 박수를 보냈고 외국 대표 등 100여 명은 그의 주위로 몰려와 그의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날 밤 9시 40분 해당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하지만 영어를 잘 받아 적던 나머지 기자들은 기사를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결국 수많은 기자가 똑같은 현장을 봤지만, 저만 특종을 하고, 특종상도 받게 되었습니다. 영어를 모르는 데다 수전증까지 있는 제가 쓰거나 찍은 기사와 동영상은 여러 언론에 인용되었습니다. 조회 수도 동영상까지 포함하면 수백만 건에 이르렀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중요한 것은 취재 기술과 어학 기능이 아니더군요. 진짜 중요한 것은 '문제의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정부의 허풍을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요.

의심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라

교육부가 정부 세종청사 안에 세워놓은 최규동 홍보 입간판. ⓒ 윤근혁


두 번째로 생각나는 기사는 '천황 위해 죽자'는 이가 민족의 스승? 교육부, 최규동 초대 교총회장 선정 논란 (3월 7일자)입니다.

올해 2월 중순쯤에 교육부는 '이달의 스승' 사업을 벌인다면서 '민족교육자 12명'을 발표했습니다. 이 때 저는 생각했죠. 12명의 뒤를 파봐야겠다고.

하지만 뒤를 파볼 능력이 부족한 저는 결국 민족문제연구소에 "이분들 친일 행적을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공문 이런 거로 했느냐고요? 아닙니다. 그냥 전화로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뒤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최규동이 '죽음으로써 천황의 은혜에 보답하자'는 글을 쓴 사료를 발견했다고. 민족문제연구소로 찾아가서 이준식 연구위원에게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사를 썼죠. 이것이 올해 상반기 내내 교육부가 '이달의 친일 스승 파동'을 겪게 한 첫 기사입니다. 결국 교육부는 12명의 선정자들을 모두 취소했고 황우여 장관은 국회에서 사과했습니다.

'이달의 스승' 선정자는 교육부가 보도자료를 낸 것입니다. 모든 기자들이 다 봤다는 얘기죠. 그런데 저는 이 '이달의 스승' 기사로 특종을 했고, 특종상도 받았습니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친구를 잘 사귀어뒀다'는 겁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제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뻔뻔하게 부탁할 수 있었던 것이죠. 기자에게 친구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또한 의심을 풀기 위한 행동을 했다는 것 또한 잘한 일 같아요. "12명의 '민족의 스승' 가운데 친일파가 들어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한 기자는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 기사는 제가 제일 먼저 쓰게 되었습니다.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부탁'이라는 최소한의 행동을 했기 때문이죠.

'어떤 질문을 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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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 모습. ⓒ 윤근혁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기사는 이른바 국정교과서 복면 집필진 가운데 한 명을 처음 확인한 기사,'발뺌' 국편, 결국 인정... 국정교과서 집필 교사 사퇴 입니다. 2신인 이 기사의 1신 보도 제목은 <"내가 국정교과서 집필자다" 9개월 된 역사교사 실토>(12월 10일자)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난 10일 오후 1시쯤 저는 서울 대경상업고 교무실에 있는 한 교사의 책상 옆으로 다가갔습니다. 약간 성격이 급하고 어벙한 저는 제 소개 없이 "축하드립니다. 국정교과서 집필 맡으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희고 앳된 얼굴을 한 김형도 교사는 밝게 웃으며 "예. 제가 맞습니다"라고 대꾸했습니다. '복면집필자 46명 가운데 한 명을 잡았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번 국정교과서 제작이 극비리에 추진되다 보니 김 교사는 극비 집필 방법을 알려줄 '전령병'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기사를 본 어떤 사람은 "대경상업고 전교조 조합원이 김형도 교사가 집필자란 사실을 알려주었네. 윤근혁이 날로 먹었네."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학교에는 제가 아는 교사도 없고, 전교조 조합원 한 명도 없습니다.

사실 김 교사의 존재 자체는 몇 단계를 거친 제보자가 알려줬습니다. 김 교사의 소문을 다른 이를 통해 전해들은 한 분이 남편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다시 그 남편은 한 교사에게 전해주고, 그 교사는 다시 저에게 제보해주고…. 이런 복잡한 정황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김 교사에게 실토를 받아내지 못했다면 기사를 쓰지 못했을 겁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자칫하다간 대형 오보를 날릴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현장에 달려간 겁니다. 달려가서 그 학교를 앞에 두고 짬뽕을 시켜 먹었습니다. 30분가량 짬뽕 국물까지 마시면서 "김 교사를 만나면 첫 질문을 어떻게 할까"를 고심했습니다.

교사들은 '발문법'을 배웁니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가 수업 성과를 좌우하기 때문이죠. 저도 그 짬뽕 집에서 발문법을 고민한 것이 부족하나마 이번 기사를 세상에 내보인 계기가 된 것이죠.

문제의식, 행동 그리고 질문

윤근혁 시민기자 ⓒ 윤근혁


저는 앞에서 이 세 가지 경험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책상머리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죠. 오로지 현장에 몸을 담고 있어야 나올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은 겁니다.

"취재도 현장에 답이 있다."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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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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