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 문수물놀이공원 서비스 사용료 현황.
신은미
물놀이장의 프런트 데스크. 이발 750원(한화 약 110원), 미용 2000원(한화 약 295원), 미안(얼굴 마사지) 15000원(한화 약 2200원), 전신 안마 40000원(한화 약 5900원), 부분 안마 20000원(한화 약 2950원)이라고 적힌 가격표가 보인다.
특이한 것은 머리 미용료와 전신 안마비가 무려 20배나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대체 안마를 얼마나 오랫동안 하는지 알 수는 없으나 안마와 머리를 하는 데 드는 시간이 각각 1시간가량이라고 가정해볼 때, 안마의 가격이 미용료보다 무려 20배나 비싸다.
머리 미용에 필요한 기술이나 안마에 필요한 기술, 그리고 들어가는 재료나 도구 등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여겨진다. 그러니 북한에서 재화나 용역의 가치가 그것에 투입된 노동시간에 의해 정해지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수요와 공급에 의해 시장물가가 정해지는 것도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전신 안마와 머리 미용이 동일한 노동과 물질이 투입되는 상품이라고 단순화할 경우, 전신 안마에 대한 수요가 머리 미용에 대한 수요보다 수십 배나 크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궁금해진다. 대체 북한에서는 재화나 용역의 가치 또는 가격이 어떻게 정해지는 건지. 재화나 용역에 투입된 노동시간이나 또는 시장의 원리 이외에 또 다른 요인, 예를 들면 이념적인 요인 같은 것이 있을까? 전신 안마는 '봉건시대의 전근대적이고 비인간적인 서비스'라서 원하는 이는 돈을 더 내고 즐기라는 뜻인 걸까. 이런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북한을 여행하면서 늘 궁금한 것 중의 하나가 '도대체 어떻게 물가가 결정되는가'라는 것이다.
북한동포들의 생활 수준 어찌 됐든, 여성의 머리 미용료가 한국 돈으로 295원이라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싸다. 이는 물론 북한 주민들을 위한 가격이다.
한국언론에 의하면 북한 근로자의 한 달 봉급은 북한 돈으로 약 5000원, 그러니까 한국 돈으로 불과 735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월급을 받아 미용실 두 번 가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과연 북한동포들은 어떻게 생존한다는 말인가?
그동안의 북한여행을 통해 관찰한 바에 의하면, 국가로부터 배급을 받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봉급이 낮은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공공요금이 거의 무료에 가까워 배급만 제대로 나온다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당시 북한동포들의 국립교향악단 공연 푯값이 북한돈으로 50원(한화 약 7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 문화생활도 가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배급이 원활하지 못하다든가, 누군가 배급되지 않는 품목을 원할 경우 어려움을 겪을 것은 자명하다.
그러다 보니 가족 중 한 사람 정도는 외화식당이나 상점 같은 곳에 나가 일을 하거나, 아니면 장마당에 나가 장사라도 해야 보다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평양의 기업소 평균 월급은 미화 50달러(북한 돈으로 약 40만 원) 정도 되는 것 같다. 4인 가족 중 한 사람은 국가로부터 배급을 받는 직종에서 일하고, 다른 한 사람은 월 50달러 정도의 수입을 가져올 수 있는 일을 한다면, 북한의 싼 물가를 고려해볼 때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아무리 국가에서 배급을 준다고 해도 한 달에 1달러도 안되는 봉급으로는 한 가족이 살아갈 수는 없다. 또한 국가가 개인이 필요로 하는 모든 품목을 배급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연유로 장마당이 생성됐을 테다. 그리고 장마장이 퍼져나가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주인 없는 식당은 문전성시

▲ 남한에서 '맛대로촌닭'을 운영하는 최원호 사장이 평양에 연 닭고기 전문식당이다. 5.24 조치로 남한의 주인은 이곳을 관리할 수 없게 됐는데, 북한 주민들이 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신은미
'문수물놀이공원'을 나와 늦은 점심을 먹는다. 김혜영 선생이 안내한 식당은 '닭고기 전문식당'. 식당을 향해 걸어가면서 나는 깜짝 놀라고 또 반가워 어쩔 줄을 몰랐다. 왜냐하면 이 식당은 남한의 한 사업가가 평양에 문을 연 식당이기 때문이다. 이 식당의 정식 이름은 '락원 닭고기전문식당'인데 간판엔 그냥 '닭고기전문식당'이라고만 적혀 있다.
나는 2012년 5월 미국인 친구들과 함께 북한 관광여행을 왔을 때 이 식당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식당 주인이 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한참 뒤 <오마이뉴스> 기사를 읽은 다음이었다(관련 기사 :
"평양에 있는 치킨집, 한시도 잊은 적 없어요").
이 식당은 김포공항 근처에 있는 '맛대로촌닭' 사장님이 6.15시대라 불렸던 2007년 평양에 연 식당이다. 그러나 5.24 조치로 인해 교류가 중단돼 이 식당엔 더 이상 주인이 없다.
그래도 북한 동포들은 이 식당을 잘 운영하고 있다. 음식 맛도 여전히 좋고 식당은 손님들로 북적인다. 언젠가 5.24 조치가 풀려 남한의 사장님이 돌아오시는 날, 식당의 봉사원들과 모두들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추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사장님의 '민족 화합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에 대한 염원'은 결실을 맺을 것이다.
평양에 신식 마켓이 생기는 이유

▲ 평양의 슈퍼마켓인 '광복지구상업중심' 안의 모습.
신은미

▲ 평양의 슈퍼마켓인 '광복지구상업중심'에 진열된 이탈리이산 와인.
신은미
점심식사를 마친 박 교수는 자료 수집을 위해 인민대학습당으로 향한다. 나는 북한의 물가를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 김혜영 선생에게 마켓으로 안내해달라고 요청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광복지구상업중심'이라는 슈퍼마켓. 이 마켓은 외화가 아닌 북한돈만을 사용하는 곳이므로 북한돈을 소지할 수 없는 외국인은 원칙적으로 방문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간혹 외국인이 쇼핑하는 모습도 보인다. 아마도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화폐교환소가 있어 외화를 소지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은 이곳에서 돈을 교환해 쇼핑을 한다.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1달러에 북한돈 대략 8000원 정도.
김혜영 선생에 따르면 이곳의 물가가 장마당보다 싸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재래식 시장인 장마당 대신 문화적인 시장인 이곳을 보다 많이 이용하게 하기 위해서란다. 그러나 야채같은 품목은 장마당의 물건의 유통이 더 빨라 싱싱하다고 한다. 추측하건대 국가가 이러한 현대식 마켓을 세우는 이유는 장마당에서 돌고 있는 외화를 흡수하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다.
마켓에는 웬만한 물건은 다 있다. 이탈리아산 레드와인의 경우 브랜드에 따라 가격이 다양했다. 어떤 것은 북한돈 2만5900원(한화 약 3800원) 또 어떤 것은 11만3500원(한화 약 1만6500원).
이곳은 촬영이 금지돼 있는 곳이라 겨우 사진 몇 장만 찍을 수 있었다. 그래서 물가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다. 다만 생활필수품인 식료품은 남한에 비해 5~10배 정도 싼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생활필수품이 아닌 경우에는 남과 북의 가격 차이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었다.
마켓을 들러보고 내린 결론은 4인 가족의 경우 국가에서 배급을 받고 50달러 정도의 수입이 있거나 또는 배급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100달러 정도의 수입이 있다면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통계에 의하면 북한의 1인당 GDP는 약 1200달러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 이곳의 싼 물가를 고려해 볼 때 북녘 동포들의 생활이 평소에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터무니없이 힘들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다만, 여기도 소득의 격차가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도시와 농촌 사이의 차이도 있어 이를 극복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기치료'를 받다저녁식사를 마친 나는 김혜영 선생에게 조용히 물었다.
"김혜영 선생, 혹시 내일 병원에 갈 수 있을까요?"김 선생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되묻는다.
"네? 병원이요? 오데가 안 좋습니까?""왼팔이 좀 아픈데 미국서 물리치료도 받고 했지만 좀처럼 낮지를 않네요. 팔을 들기가 좀 힘들어서요.""오마나, 어쩐지 좀 이상하다 했습니다. 지금 친선병원의 의사들이 평양호텔에 나와 있습니다. 재일동포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와서 평양호텔에 있는데 친선병원의 의료진이 항시 대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연락해 보겠으니 오늘이라도 가시자요."평양에 있는 친선병원은 외국인들 그리고 해외동포들이 이용하는 병원이다. 북한에서 15년 징역형을 받고 형기를 치르던 중 석방된 재미동포 배준호(미국명 케네스 배)씨가 친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터넷으로 본 적이 있어 나도 알고 있는 병원이다. 전화로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김혜영 선생이 어서 가잔다. 마침 수기치료(지압 물리치료) 의사 선생님께서 계신단다.
평양호텔에 도착한 나는 리용호 운전기사에게 "갈 때는 택시를 타고 갈 테니 이제 그만 퇴근하시라"고 말했다. 그러나 운전기사는 "몸도 성치 않은 녀사님을 두고 갈 수는 없다"라며 한사코 함께 있겠단다. 나는 운전기사에게 "택시를 타보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라"며 겨우 설득을 마친 뒤 호텔에 들어섰다.

▲ 내가 평양에서 '수기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신은미
치료를 받으니 되레 온몸이 더 뻐근하니 쑤시는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평양에 있는 동안은 매일 오라고 하신다. 출국날짜를 물으며 그때까지는 꼭 치료를 받고 완쾌해서 가라고 강조한다.
지갑을 꺼내 치료비를 드리려고 하자 한사코 거절이다. 나중에 선물을 준비해 드리기로 마음먹고 치료실을 빠져나왔다.
호텔에서 나와 택시를 잡으려는데, 좀처럼 빈 택시가 없다. 1~2분가량 지났을까…. 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 다음 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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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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