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할머니들은 '썸'이 뭔지 아신다, 왜냐고?

[2015 청춘! 기자상] 공동체 라디오 마포FM, 이렇게 삽니다

등록 2015.12.28 14:00수정 2015.12.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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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시작을 알리는 온에어(On Air)에 붉은 불이 들어왔다. 오늘 주제는 '혼밥'(혼자 먹는 밥)이다. 대화 중간중간 '흙수저'라는 말도 등장한다. 놀랍게도 목소리의 주인공은 백발의 할아버지. 10~20대의 언어, 말 줄임 현상이 장년층들의 대화의 주를 이루는 낯선 모습, 마포FM의 '행복한 하루' 녹음 현장이다.


마포FM은 공동체라디오 방송으로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비영리 방송이다. 동네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소식들을 전한다.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프로그램이 기획·제작된다. 너와 나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기는 수용자 중심의 대안 미디어다.

동네 할머니·할아버지의 일상 속 이야기를 다루는 '행복한 하루' 외에도 성소수자들의 수다가 담긴 'L양장점', 홍대의 인디 뮤지션들이 직접 꾸미는 '뮤직홍'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편성돼 있다. 주류 미디어가 다루지 못하는 소수자, 지역의 이야기를 다루는 프로그램들로 가득하다.

내 손으로 만드는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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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FM 편성표 소수자, 지역 그리고 홀대인근이라는 특색을 반영한 인디뮤직까지 주류미디어가 다루지 못하는 부분의 콘텐츠가 제작되고 있다. ⓒ 이도헌


나는 지난 봄부터 마포FM에서 매주 화요일에 방송되는 '행복한 하루'라는 프로그램을 연출 중이다. 매주 수요일이면 출연진들에게 대본을 발송한다. 1시간 분량의 방송은 대본 작성으로 시작한다. 금요일에는 스튜디오에서 녹음·편집의 과정을 거친다.

초기에는 대본 작성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맡은 프로그램의 청취자 층이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녹음도 편집도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딱딱하게 대본만 읽어 내려가는 방송, 내가 생각하던 라디오 방송은 이런 것이 절대 절대 아니었다.


출연진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실버 세대의 일상에 집중했다. 노인들의 하루하루에 관심을 가졌다. 일상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기도 했다. 신문이나 TV를 보며 스쳤던 소재들을 스마트폰에 기록하고 대본을 작성하는 데 활용했다.

할머니·할아버지의 일상에 관심을 가지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했다. 신조어 퀴즈 코너도 장년층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구성됐다.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등의 TV 속 말들을 알아듣기 어렵다는 할머니의 푸념에서 출발했다. 한숨 섞인 한마디에 빛이 보였다. 아! 이거 코너로 만들 수 있겠다.

할머니, '썸'이 뭔지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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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FM 스튜디오 내부 ⓒ 이도헌


세대 간의 소통을 간극을 좁혀보고자 마련한, 젊은 세대의 언어 퀴즈는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인터넷 용어가 주를 이루는 10~20대의 언어들이 대부분 비속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변형시켜서 활용하고 있었다. 비속어를 어르신들께 알려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분별한 줄임 말들도 마찬가지다. 방송에 적합한 단어를 고르는 일이 여전히 가장 어려운 일이다.

폭을 좁혀, 청년 세대가 겪고 있는 현실을 대변하는 말들에 초점을 맞췄다. 청년 세대에 대한 실버 세대의 인식도 함께 담고자 했다. 'N포세대' '고고익선' 등이 이러한 고민들 가지고 고른 단어들이다. 단어의 의미와 함께, 말의 배경 등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더불어 '심쿵' '썸' 등과 같이 대중가요나 기성 미디어에 주로 등장하는 신조어를 범주에 포함시켰다. 장년층들이 TV를 통해 매일 접하면서도 뜻을 모른 채 지나쳐야 했던 바로 그 단어들이다.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신조어 퀴즈'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단어의 뜻을 추측하고 실제 통용되는 뜻과 비교하며 각자의 생각을 논하는 코너로 성장했다. 출연진 중 한 분은 직접 방송을 통해 소개하고 싶은 단어를 선정해 오기도 했다. 경력 단절 여성을 뜻하는 '경단녀'가 바로 그것이었다. 종종 뉴스나 신문에서 '신조어 퀴즈'에서 배운 단어를 봤다는 청취 후기를 들을 때면 뿌듯함이 들기도 했다.

가끔 '이건 모르시겠지' 하고 준비해간 단어를 출연진이 한방에 맞추기라도 하면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럴 때면 순간 머릿속에는 녹음 분량이 스쳐 지나간다. 이대로는 방송시간을 다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정말이지 난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찍먹'과 '부먹'을 알고 계실 줄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행정과 주민의 연결고리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공동체 라디오의 미래는 행정과 주민의 연결고리에 있다. 단순히 방송으로 지역 사회의 소식을 전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함께 지역민을 위한 사업을 펼칠 필요가 있다. 둘 사이의 연결고리가 느슨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공동체 라디오의 지속 가능성은 정책과 떼어놓을 수 없다. 주파수, 소유, 방송 면허, 지원 여부 모두가 제도에 따라 움직인다. 공동체 라디오는 지역 사회와 밀접히 연관돼 있기 때문에 지역 정책과 함께 움직여야 하지만 정작 그렇지 못하다. 방송학을 다루는 대학 수업에서 대안 미디어의 중요성은 언제나 부각된다. 이걸 맞추냐가 재수강의 선을 결정짓는다. 기초적인 문제다. 그렇게 강조되는 이야기가 현실 앞에서 너무도 무력하다. 현재의 제도는 C+이다.

공동체 라디오는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지난 10년이란 시간 동안 지역 민의를 반영하고 다양한 문화 행사 개최하는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공동체 라디오 방송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역 주민을 위한 목소리'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지만 정작 지역민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자기소개서에 공동체 라디오 활동을 적어놓은 탓에 몇 차례의 면접에서 질문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난감하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공동체 라디오란 공익 목적의…'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입에 붙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대안 미디어라는 개념 자체도 생소하기만 하다.

장기적인 지원과 계획을 세우고 지역민의 목소리를 통해, 지역의 문제점을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성장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작은 목소리가 큰 울림이 되는 그 지점, 바로 그 변곡점에 지속 가능성을 꿈꾸는 공동체 라디오의 미래가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2015 청춘! 기자상' 응모 기사입니다.
#마을미디어 #공동체라디오 #마포FM #대안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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