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C, 연탄 같은 뜨거운 나눔을

[지역소식] 대구-경북, 이웃에게 내미는 온정의 손길 줄어

등록 2015.12.29 10:48수정 2015.12.2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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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2, 450, 500, 16만8473, 670, 5만...

이 수치는 어떤 물품과 관련된 것이다. 그게 뭘까?

동지와 크리스마스를 지난 12월 말이지만 예년과 달리 비교적 덜 추운 날씨가 지속됐다. 하지만, 어쨌건 겨울은 겨울. 곧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에 두꺼운 코트를 껴입고도 동장군의 기세에 몸을 움츠리는 계절이 올 것이다. 겨울은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시기다. 그래서, 따스한 나눔과 봉사의 손길이 더욱 필요한 계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내외적으로 어려워진 경제상황 탓에 정을 나누려는 대구경북 지역 온정의 손길이 예전만 못하다. 지난 22일 발표된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통계에 따르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이웃돕기 성금의 액수는 14억 원 이상 줄었다(2014년 47억7700만 원, 2015년 33억3천만원).

목표한 금액에 가까워질 때마다 올라가는 '사랑의 온도'도 31도에서 멈춰, 2014년 동일시기에 기록한 42도에 비해 현저하게 낮아졌다. 전국 평균 사랑의 온도 46도에는 터무니없이 못 미쳤다. 다만, 23일 저녁쯤 2012년부터 매년 1억 원 이상을 기부해온 일명 '키다리 아저씨'로 불리는 60대 남성이 혼자서 1억2천만 원을 기부함으로써 겨우겨우 사랑의 온도가 40도로 상승한 상황.

'연탄' 없다면 추위에 떨 사람들 포항만도 670여 가구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효성캐피탈 임직원들이 사랑의 연탄나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서두에 열거한 수치는 '연탄'에 관련된 것이다. 연탄은 독거노인과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등 소외계층의 겨울철 중요한 난방수단이다. 1장에 3.6kg, 22개의 구멍을 통해 450°C의 뜨거운 열을 뿜어내는 연탄.


전국에서 연탄으로 난방을 해결하는 가구 수는 16만8473가구, 포항에만도 670여 가구가 연탄을 지원 받아야 윗목 자리끼조차 얼어붙는 추운 겨울을 안전하게 날 수 있다. 이런 소외계층을 위해 포항연탄은행은 지난해 5만 장의 연탄을 이들에게 지원했다.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형편이 어려운 계층을 방문·파악해 가정으로 직접 연탄을 배달해주는 포항연탄은행은 2014년 10월 23일 설립됐다. 전국에서 31번째로 생겨난 지역 연탄은행이다. 연탄은 적지 않은 시인과 소설가들에 의해 문학작품 속에서 '따스한 나눔' 또는,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은유로 사용돼 왔다.

포항연탄은행 대표인 유호범 목사는 말한다. "작년에는 설립된 첫 해라 홍보가 부족해 연탄을 지원해 달라는 가구가 올해에 비해 적었다. 하지만, 이젠 포항연탄은행의 존재가 알지면서 지원을 부탁하는 이들은 많아졌는데, 후원을 하겠다는 분들은 지난해에 비해 다소 줄어 안타깝다"고.

한 사람의 100만 원보다 백 사람의 1만 원 소중한 이유

2014년 포항에서 가장 많은 연탄을 기부한 단체는 포항중앙교회. 현물과 기부금을 합쳐 2만3천 장의 연탄을 추위에 곤혹스러워하는 이들에게 지원했다. 유 목사는 이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면서도, "한 사람이 100만 원을 기부하는 것보다는 백 사람이 1만 원의 정성을 보내주시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는 나눔과 기부문화의 저변확대와 이웃을 돌아보는 사랑의 확산을 염두에 둔 이야기일 것이다.

기름 보일러와 도시가스가 보편적으로 공급되기 전. 한국 사람 대부분이 연탄으로 난방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퇴근하는 아버지를 기다려 연탄불에 구운 고등어 한 마리로 온 식구가 웃음꽃을 피우던 1970~80년대. 가난 속에서도 서로를 위했던 그 마음을 기억한다면, "기온이 내려간다고,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의 온도까지 내려가서야 되겠느냐"는 유 목사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포항연탄은행에서 배달 봉사를 하는 이들은 연인원 1천여 명에 달한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광경은 엄마, 아빠와 함께 와서 얼굴에 까만 탄가루를 묻히면서도 웃으며 연탄을 나르는 고사리손의 유치원생들 모습이라고 한다. 나눠주는 사랑의 의미와 기쁨을 이미 배운 아이들. 그들에게 짤막하지만 그 안에 나눔의 진정한 의미를 담은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를 선물하고 싶어진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실린 내용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연탄 #나눔의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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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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