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시베리아로 여행? 41도입니다

[시베리아 여행기 ③] 시베리아에서 만난 시베리안 허스키

등록 2015.12.29 10:07수정 2015.12.2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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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샤먼 언덕 위에서 뿌연 안개 속 바이칼이 내려다 보인다. ⓒ 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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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혼섬 선착장 언덕으로 올라가던 길에 있던 목조가옥. ⓒ 한성희


지난 여름, 8월 6일부터 13일까지의 러시아 동시베리아 여행은 한파주의보가 몰아치는 계절이 되자 다시 그립다. 여름휴가로 시베리아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자 사람들마다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거긴 춥지?"
"시베리아는 영하로 내려가지?"


아무래도 '동토의 땅 시베리아'라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물론 겨울에는 평균기온이 영하 30도에 달하며 아주 추울 때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간다고 브리야트 공화국에서 통역을 맡았던 유리아나가 말하긴 했다.

8월 8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바이칼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으로 올랐다. 오늘 아침을 먹으면 알혼섬을 출발한다. 아침 산책 취미가 없다는 나를 이혜경 화가가 강제로 끌고 올라갔다. 타티아나 부원장은 언덕 위 오색천이 감긴 나무에 두 손을 모아 절을 하고 동전을 던졌다. 이런 모습을 보면 러시아인은 무속에 습관처럼 의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들은 일상생활 속에 오색천을 두른 나무들을 볼 때마다 당연하다는 듯 동전을 던지고 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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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도 바이칼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박순일 대표이사의 지도로 국선도 기체조를 했다. ⓒ 한성희


박순일 한국사회정책연구원 대표이사의 인도로, 둥글게 서서 바이칼을 내려다보며 국선도 기체조를 하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되자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로 빠져나왔다. 수십 년을 해왔다는 박순일 대표이사의 기체조는 중국무술영화를 보듯 날렵하고 능숙했다.

이틀을 알혼섬에서 보내고 이르쿠츠쿠로 향한 시간은 오전 11시,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며 점심을 먹고 바이칼에 몸을 담그는 러시아 여행객, 관광지의 흔한 싸구려 물건을 구경하며 배를 기다렸다.

호텔을 출발해 오는 내내 누렇게 마른 들판과 흙먼지가 따라왔고, 비포장 도로는 덜컹거리며 몸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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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 기념품점 선착장에 근처에서 조악한 바이칼 기념품을 팔고 있다. ⓒ 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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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안 허스키 시베리아에서 만난 시베리안 허스키. ⓒ 한성희


선착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는데 눈에 띄게 잘생긴 개 한 마리를 끌고 다니는 빨간 티셔츠의 러시아 여인이 보였다. 개를 좋아하는 나는 얼른 곁으로 갔다.

"시베리안 허스키? 사진 찍어도 돼요?"

카메라를 흔들며 허락을 구하자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해준다. 시베리에서 만난 시베리안 허스키는 늘름하고 당당했다. 배를 기다리는 지루함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몇 차례 새치기를 당하고 겨우 배에 올라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알혼섬을 바라봤다. 시베리아 수용소, 알혼섬 샤먼, 북부투어, 바이칼 호수를 배를 2시간 타고 구경한 시간 등은 기억에 남을 것이다.

뜨거운 여행길, 41도까지 치솟은 수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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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혼섬 소녀 선착장 카페에서 엄마를 도와 물건을 파는 브리야트족 소녀. ⓒ 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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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혼섬 학교 알혼섬에서 유일한 학교. 초,중,고가 한 곳에 있다. ⓒ 한성희


다시 이르크츠크로 향하는 봉고버스 속은 뜨거운 열기로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러시아를 여름에만 두 번째 방문했고 여러가지 종류의 차를 타보았지만 에어컨이 있는 차는 딱 한 대밖에 못 봤다. 브리야크에서 바이칼로 향할 때 탔던 버스는 35인용 작은 버스였고 새 현대차였지만 역시나 에어컨은 틀지 않았다.

차 안의 생수는 이미 뜨거운 물로 변해있었다. 얼마나 건조한지 땀은 흐를 사이도 없이 마른다. 도로 옆 벌판에 방목된 말이 네 다리를 하늘로 향한 채 죽어있는 광경도 보았다. 뜨거운 생수를 손수건에 부어 더운 바람에 흔들자 기화열 때문인지 신기하게도 시원하게 차가워졌다. 그 역시도 건조한 열기 때문에 잠시 후에 바짝 말라버리긴 했지만. 견디다 못해 라자 교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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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리를 파는 모녀 이르크추크를 향하던 도로 옆에 모녀가 앉아 블루베리가 담긴 양동이를 앞에 놓고 팔고 있다. 맛은 개량종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새큼함이 섞여 있었다. ⓒ 한성희


"여기는 원래 여름에 이렇게 더워?"
"네, 항상 이 정도는 돼요."
"근데 에어컨이 있는 차는 없어? 한 번도 못 봤는데."
"없어요. 항상 이렇게 지내요."
"왜 에어컨이 없는 거냐구우!"

창문으로 들어오는 뜨거운 바람에 지쳐 울부짖는 내게 라자 교수는 피식 웃을 뿐이었다. 이상할 것 없다는 표정이다. 간혹 들른 길가의 휴게소 카페에서도 속 시원하게 시원한 냉수를 먹을 수 없었다. 시베리아 냉장고는 미지근하기 그지 없다. 더 이해가 안 가는 것은 호텔 냉장고부터 가게 음료수 냉장고, 아이스크림 냉동고까지 하나같이 자물쇠를 채워놓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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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앙가라 강가의 가게는 역시나 자물쇠가 채워져 있고 꽃이 아름답게 피었다. ⓒ 한성희


무심코 냉장고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꺼내려다 자물쇠에 걸려 주인을 부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찬물이 있는 곳은 화장실 세면대 뿐이다. 이르크츠크나 브리야트 어디든지 세면대 수도꼭지를 틀면 손이 시릴 만큼 찬물이 쏟아졌다. 동토의 땅이라 여름에도 땅 속은 차갑기 때문이리라.

길가의 주유소나 건물에는 전자 온도계가 광고판처럼 붙어있어 빨간 숫자를 보여준다.

"38도! 헉!"

이 정도로 놀라긴 아직 일렀다. 이르크추크 시내로 들어서자 누군가 외쳤다.

"41도야! 어쩐지 너무 덥더라니."

한국에서도 보지 못한 41도의 뜨거움을 동토의 땅이라던 시베리아에서 경험하게 될 줄이야. 가뭄이 계속된 시베리아 땅에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불었다. 이 건조함은 이날 묵은 이르크추크 호텔에서 한밤중에 빨아 손으로 대충 짜서 샤워실에 널어놓은 청바지가 다음날 아침에 바짝 말라 있을 정도였다.

앙가라 강변의 여유로운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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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레스토랑 앙가라 강가의 레스토랑 음식은 맛잇었다. ⓒ 한성희


호텔에 짐을 풀고 종일 더위에 시달린 몸을 씻고 저녁을 먹으러 로비에 모였다. 냉장고에 생수가 보여 무심코 꺼내려다 보니 역시나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꽤 고급 호텔인데도 냉장고 자물쇠는 고수했다.

바이칼의 전설이 내려오는 앙가라 강가의 레스토랑에서 먹은 저녁은 훌륭했다. 러시아 음식은 전반적으로 우리 입에 잘 맞는다.

메뉴를 가져와도 키릴문자 투성이고, 관광객이 많이 들르는 이르크추크에서도 영어는 보이지 않는다. 라자 교수에게 이것저것 물은 후 음식을 주문했고 흑생맥주와 함께 먹으며 알혼섬 여행의 담소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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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 러시아에서 처음 먹어본 햄버거. 맛은 좋았지만 잘못 나왔다. ⓒ 한성희


화덕에서 직접 구워준다는 말에 솔깃해서 피자를 주문했는데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었는지 나온 것은 햄버거다. 맛은 참 좋았지만 배가 불러서 절반 남은 것을 싸달라 했다.

저녁을 먹은 후 조명으로 물든 아름다운 앙가라 강변 카페로 자리를 옮겨 맥주를 마시며 오색으로 터져 퍼지는 불꽃놀이를 구경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어린이 신발에는 반짝거리는 불이 들어왔고 뽁뽁 소리가 났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한낮 뜨거웠던 더위의 기억은 시원하게 날아갔다. 
#알혼섬 #이르크추크 #앙가라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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