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책임' 비켜 갔는데, '최종 타결'이라고?

[분석] 일본군위안부 문제 '타결' 발표 이후 남는 문제들

등록 2015.12.29 08:17수정 2015.12.29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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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세 외교부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일본군위안부 관련 한일외교장관회담을 마치고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역사적인 공동 기자회견이 있었다."

28일 오후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정부협상 타결 내용에 대한 기자회견이 끝난 뒤, 외교부 당국자는 이렇게 평가했다. 한일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분위기다.

지난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증언에 나서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공론화된 이래, 이 문제는 한일관계의 최대장애물인 과거사 문제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특히 2013년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사실상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지만 아베 일본 총리가 과거사 우경화 행보를 계속하면서,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의 상태가 계속됐다.

한일 정부, '위안부 문제 타결 합의' 배후는 미국

이같은 한일 관계 악화는 '대중국 견제'가 핵심인 미국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정책에 장애물이 돼 왔다. 한미일 3각 협력으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미국의 구상은, 과거사 문제가 한일 협력을 가로막으면서 2012년엔 한미일 정보보호협정이 좌초하는 상황으로 번졌고, 결국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서 한일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1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배경에서 나온 이번 타결을  앞두고, 최대 관심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 차원의 '법적 책임' 문제를 어떻게 표현해 내느냐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언론은 '창의적 대안'이라고 표현했다. 한일 양국이 '서로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는 문구'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는 이번 합의안 1항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는 표현으로 나타났다. 이는 하시모토 등 이전 일본 총리들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보낸 사죄 서한이나, 2012년 3월 일본 민주당 집권 기에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제시한 이른바 '사사에'안의 '도의적 책임'보다는 진전된 표현이다. 정부는 이 조항과 '한국 정부가 설립하기로 한 위안부 지원재단의 자금 10억 엔(약 100억원)을 일본정부 예산으로 일괄거출'한다는 조항(3항)을 묶어, 사실상 일본 정부가 법적책임을 인정했다고 보고 있다.


'일본정부 책임 통감' 과거보다는 진전...'법적 책임' 인정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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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논의하는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열리는 28일 오후 종로구 외교부청사 앞에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회원들이 일본 정부의 '법적배상거부' '소녀상 철거요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그러나 이에 대해 일본이 법적책임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일본 정부가 법적책임을 분명히 인정하고 특별법을 만드는 것이 최상인데, 이렇게 되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 문제가 타국들로 확대되고 현재 소송 중인 강제징용 문제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는 것"이라며 "이전보다는 진전됐지만 애매모호하다"고 평가했다.

기시다 외무상도 이날 기자회견 뒤 일본 기자들에게, 일본 정부 차원의 예산 지원에 대해 "배상은 아니다"며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치유하기 위한 사업을 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배상'은 불법 행위를 전제로 한 용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도 "우리가 돈이 없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죄를 지었으면 마땅히 죄에 대한 공식 배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이번 타결에 대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일본정부가 표명한 조치의 이행'을 전제하기는 했지만, 양국 정부가 사실상 이번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 해결'되는 것이라고 '선언'한 것도 큰 논란거리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반인도적 국가범죄임을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유엔 등 국제사회의 인식이 있고, 피해 할머니들 다수가 이번 합의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최종 해결'을 선언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대목은 특히 일본 정부가 강하게 요구해온 것으로, 앞으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을 비판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정대협 "한국정부, 되를 받기 위해 말로 줬다" 반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아래 정대협)는 이번 합의에 대해 "모호하고 불완전한 합의를 얻어내기 위해 한국 정부가 내건 약속은 충격적"이라고 비판했다. 정대협은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 정부와 함께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을 확인하고, 국제사회에서 비난과 비판을 자제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되를 받기 위해 말로 줘버린 한국정부의 외교 행태는 가히 굴욕적"이라고도 했다.

서울의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위안부 소녀상 이전 문제도 마찬가지다. 윤병세 장관은 공동기자회견에서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시다 일본 외상은 기자회견 뒤에 "소녀상은 적절히 이전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의 '희망성 압박' 발언일 수 있으나, 이날 한일장관회담 전에 이미 일본 측에서 소녀상 이전을 위안부 문제 최종타결의 한 근거로 삼으려 한다는 보도가 나왔다는 점에서 폭발성이 있는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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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 관련 한일외교장관회담이 열리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 된 '소녀상'이 털모자와 목도리가 씌워져 있다. 현재 재건축 중인 일본대사관 주변으로 경찰 차벽이 설치되어 있다. ⓒ 이희훈


이용수 할머니는 이에 대해 "도쿄 한복판에 소녀상을 세우고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고 해도 시원찮을 텐데"라며 "(한국 정부도) 무슨 권리로 (소녀상을) 옮기나"라고 말했다. 소녀상은 민간에서 설치한 것이므로, 정부는 이전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합의에 앞서 '피해자들이 수용가능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안'이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우선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자들이 이처럼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피해 당사자들이 반발하고 있는데, 정부는 최종적·불가역적 타결이라는 입장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 현재 상황에서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정부로서도 피해자들의 반발과 국민 여론이 가장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이후 적극적인 '여론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이날 한일장관회담과 기자회견에 앞서, 긴급하게 언론사 정치부장단 간담회를 열어 전날 있었던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외교부 국장급 협의 내용을 설명한 바 있다.
#일본군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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