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 남학생과 여학생이 바둑 두는 모습 ⓒ 오문수
며칠 전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있는 한국바둑고등학교(교장 김종구)를 방문했다. 바둑고등학교는 주암호에서 섬진강으로 물이 흐르는 보성강 인근의 조용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1972년에 주암종합고등학교로 개교한 후 2013년에 특성화고인 한국바둑고등학교로 개명했다.
인류가 오래전에 창안한 바둑은 심오한 철학, 예술 및 지혜를 담고 있는 두뇌 스포츠다. 3년 전 개교해 105명이 재학하고 있는 바둑과에는 여류기사를 꿈꾸는 16명의 여학생도 있다. 학생들은 전국에서 주암으로 유학 왔다. 재학생 84%가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의 출신지를 보면 전남이 절반을 차지하지만 두 번째로 많은 곳은 서울이다.
학생들이 이수해야 할 교육과정을 보면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체육, 예술과 제2외국어로 중국어도 있다. '특색사업 1' 추진내용에는 기보 연구회 운영, 교내 리그전, 교내 바둑대회, 명사초청특강, 명사 초청 지도다면기 등이 있다.
글로벌 인재 양성을 목표로 삼은 '특색사업 2' 내용은 미국뿐만 아니라 바둑 강국인 중국, 일본 문화 체험의 기회를 갖고 지구촌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기본적인 회화능력을 기르도록 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바둑영재들을 효율적으로 지도하기 위해서 프로기사들을 교사로 채용하고 있다. 2013년에는 백지희 2단이, 2014년에는 이슬아 3단이, 2015년에는 김민희 3단, 김남훈 초단이 근무하고 있다.
바둑명인양성 프로젝트 중 하나는 지역연구생 운영이다. 프로 입단을 목표로 삼은 30여 명의 바둑영재들이 매월 격주로 주말과 휴일에 프로기사에게 지도를 받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프로기사 초청 지도다면기다.
a
▲ 목진석 9단의 지도다면기 모습 ⓒ 한국바둑고등학교
학생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해마다 세계최정상 프로기사를 초청하여 지도다면기를 열고 있다. 2014년에는 이세돌 9단, 조한승 9단, 최철한 9단, 박정상 9단, 송태곤 9단, 목진석 9단이 다녀갔다. 2015년에는 세계타이틀 획득자인 김지석 9단, 원성진 9단을 초청하여 지도다면기를 실시하고 질의 응답 및 사인회를 가졌다.
학생들의 기력 향상을 위해 주 3회, 전체 학생 무학년제로 교내 승강리그전을 운영한다. 기력 별로 10명씩 1개 조로 편성하여 리그전을 실시하며 매월 결과에 따라 상위 4명(1~4등)은 상위 조로 이동하고, 하위 4명(7~10등)은 하위 조로 새롭게 조를 편성한다.
매년 1회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학생들을 초대하여 교류전을 열며 대학생 멘토링제를 도입해 활기찬 교류도 실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바둑 재능을 지역사회에 기부하기 위하여 격주로 인근 주암초등학교와 주암중학교, 순천노인복지관을 방문하여 지도다면기를 통해 재능기부도 하고 있다.
해외 바둑교류를 위해서 상하이 응창기 학교와 교류(2014.1)를 할 뿐만 아니라 일본 바둑 자문단이 학교를 방문(2014.12)하기도 했다. 올 4월에는 중국 민영방송국에서 학교를 방문해, 교육과정을 중국에 널리 알렸다.
바둑고등학교에는 국가대표 프로기사인 오유진(고1) 2단이 재학중이다. 7살 때부터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는 오양은 김지석, 이창호, 조한승 사범과 1승 2패의 전적을 자랑할 만큼 실력을 갖춘 학생이다. 장래가 촉망되는 바둑 영재인 오유진양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a
▲ 프로 2단인 오유진 학생(고1). 장래가 촉망되는 여류기사 후보다 ⓒ 오문수
- 바둑이 주는 묘미는 무엇이며 현재 활동하고 있는 바둑고수 중 누구를 가장 존경하며 이유는 무엇입니까?"
"매 판 색다른 바둑이 나오는 것이 묘미입니다. 이세돌 사범님을 존경합니다. 항상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매우 멋있습니다."
-장래계획은 무엇이며 바둑고등학교에서 열심히 기량을 연마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앞으로 한국 바둑계를 예상한다면?"
"세계적인 여류 프로기사가 되어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앞으로 바둑을 잘 두는 신예기사들이 많아질 것이고 한국 바둑계도 더욱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둑을 두면서 겪었던 에피소드 하나만 얘기해 달라"고 하자 "축인지 모르고 나갔다가 다 죽은 적이 있어요"라고 대답하는 소리를 듣고 웃음이 났다. 바둑을 두어본 사람은 안다. 축인줄 모르고 계속 두다가 대마가 죽어 절망했던 심정을.
바둑고등학교라고 해서 길이 바둑계만 있는 건 아니다. 전주에서 유학 온 손채원(고3) 양은 올해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합격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마4단이었지만 현재 아마 5단인 그녀에게 바둑고등학교에 진학한 이유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로 진로를 바꾼 이유를 들어보았다.
"제가 잘하는 게 바둑밖에 없어 기능을 살려 명지대 바둑학과에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바둑학교에 오니까 오히려 바둑이 싫어졌어요. 리그전에 나가서 지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국어 시간에 명혜정 선생님으로부터 토론수업을 받으며 국어교사가 되기로 결정했어요."
a
▲ 바둑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왼쪽부터 손채원, 이재성, 최승은 ⓒ 오문수
명지대 바둑학과에 합격한 이재성(고3)군은 고향이 서울이다. 그가 중학교 3학년 때 아마3단이 되자 바둑학원 교사가 바둑고 진학을 권유해 이곳으로 왔다.
경기도가 고향인 최승은(고3)양도 아마5단이다. 중3 때 아마1급 실력을 갖춰 바둑교사가 되고 싶었다. "바둑은 얌전히 앉아서 서로 마주 보며 두는 게 좋아서 시작했다"고 말한 최양은 유아교육과에 진학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졸업하기 전까지 바둑지도사 3급 자격과 아마5단 단증을 취득해 바둑인으로서의 진로를 펼치도록 하고 있다. 자신의 특기를 살리며 미래를 열심히 준비하는 이들을 보며 공부가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