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막걸리 전국지도'를 공개합니다

[허시명의 술 생각 ⑦] 프리미엄 막걸리 시장이 열리다

등록 2015.12.30 19:52수정 2016.01.1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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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되고 있는 프리미엄 막걸리들. ⓒ 허시명


"프리미엄 막걸리 시장이 형성되었다!"

이제 이렇게 말해도 좋겠다. 이 시장이 형성된 징후는 여러 군데에서 감지된다. 프리미엄급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문을 여는 양조장들이 생겨나고, 유통하려는 업체가 생겨나고, 이에 맞는 안주를 개발해 매상을 올리려는 주점이 생겨나고, 그리고 망설임 없이 이 술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지금껏 막걸리는 크게 생 막걸리와 살균 막걸리 정도로만 구분돼 왔다. 빚어진 지 열흘  안에 소비되는 것은 생 막걸리로, 해외나 장기 유통을 위한 것은 살균 막걸리로 상품화돼 왔다. 이들을 통틀어 보통 막걸리라고 칭한다면, 프리미엄 막걸리는 보통이 아닌, 비범한 막걸리다. 흔히 서민의 술이라는 막걸리의 큰 특징을 벗어던진 막걸리의 새 종인 셈이다.

이 비범한 막걸리의 수를 얼추 헤아려보니 28군데 46종에 이른다. 이를 지도와 도표로 정리해봤다. 기사 하단에 있는 표의 연락처로 주문하면 집에서 택배로 프리미엄 막걸리를 받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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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은 막걸리 아니었어요?

그런데, 왜 프리미엄 막걸리란 말인가? 프리미엄의 사전적 의미는 '아주 높은' '고급의'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니, 이들에는 '보통과 다른 차별화된' 무엇이 있을 것이다.

현재의 프리미엄 막걸리 시장을 선도한 업체로는 전남 함평에서 빚어지는 자희향을 꼽을 수 있다. 자희향은 전통 조리서에 나오는 석탄주 기법으로 전통 밀누룩을 사용해 빚는다. 알코올 도수가 12도로 보통 막걸리보다 2배 높고, 발효 용기도 스테인리스가 아닌 항아리를 쓰고 있다. 또한, 발효 기간도 10일 안팎 되는 보통 막걸리의 10배인 100일 정도 된다.


가격도 보통 막걸리보다 10배나 비싼 1만2000원이다. 자희향은 지역 농산물을 사용하고, 지역 축제와 결합되면서 프리미엄 시장의 가능성을 열어나갔다. 그 과정에서 자희향은 자연스럽게 프리미엄 막걸리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자희향이 사용하고 있는 목이 긴 500㎖ 유리병은, 지금은 프리미엄 막걸리의 전형적인 병으로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프리미엄 막걸리의 시장을 앞서 개척한 최초의 업체로는 경기도 화성의 '배혜정도가'를 꼽을 수 있다. 술을 빚으면 위로는 맑은 액체가 뜨고 밑으로는 앙금이 가라앉는데, 20세기 초반까지 한양의 상류층에서는 이를 청주와 탁주로 분리하지 않고 섞어서 합주(合酒)라 해 즐겨 마신 문화가 있었다. 배혜정도가의 부자 시리즈는 합주의 계보를 잇는 술로 2001년 회사 설립과 함께 출시된 제품이다.

부자 막걸리는 당시 파격적인 알코올 도수인 16도, 13도, 10도짜리를 연달아 출시했고, 용량도 375㎖와 300㎖ 유리병으로 줄여서 냈다. 현재도 부자 막걸리는 밑에 가라앉는 앙금을 균질화해 마시기 편한 고급한 술로 내고 있다. 배혜정 대표는 조금은 무모하리라 싶었던 부자 막걸리를 만들면서, 눈물겨운 고생을 했다고 토로한다.

프리미엄 막걸리, 이런 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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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막걸리들은 주로 유리병에 담겨있다. ⓒ 허시명


이제 프리미엄 막걸리의 특성을 조금 더 조목조목 살펴보자.

첫째. 대부분의 프리미엄 막걸리들은 유리병에 담겨 있다. 프리미엄 막걸리의 유리병 제품은 술의 보존력을 높이고, 안정된 맛을 유지하고, 디자인을 새롭게 하는 효과를 거뒀다. 일찌기 막걸리 업계에서 유리병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갈색 사각병에 막걸리를 담았는데, 20리터 1말로 판매하는 관행대로 막걸리 한 상자 20병을 유리병에 담다보니 한 상자의 무게가 40㎏나 나갔다. 배달하는 사람들이 무거워서 어깨가 빠진다고 아우성을 치니 조용히 패트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프리미엄 막걸리는 1상자 20병 단위로 팔지 않고, 와인처럼 2병이나 6병씩 포장해 판다.

둘째. 막걸리는 쌀을 주재료로 하는데, 프리미엄 막걸리들은 유기농쌀, 찹쌀, 햅쌀, 지역 최상급 쌀들을 사용한다. 술값이 상대적으로 비싼 첫 번째 이유는 좋은 재료 때문이다. 보통 막걸리들이 10원이라도 원가를 낮추려고 한다면, 프리미엄 막걸리들은 원가를 높여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셋째. 프리미엄 막걸리는 차별화된 발효제를 사용하는 곳이 많다. 보통 막걸리들은 1960년대 밀가루 막걸리가 대중화된 이래로 널리 보급된 밀가루 흩임누룩을 사용하거나, 2009년 쌀 소비 촉진을 위해서 쌀 막걸리를 권장하는 분위기 속에서 확산된 쌀 흩임누룩을 사용하고 있다. 이에 반해 프리미엄 막걸리들은 1960년대 이전에 쓰였던 전통 밀누룩을 사용하는 곳이 많다. 아직은 직접 누룩을 만들어 사용하는 곳은 드물지만, 앞으로는 누룩을 직접 만들어 빚는 곳도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넷째. 프리미엄 막걸리는 아스파탐이나 스테비오사이드와 같은 감미료를 넣지 않고 대개 발효된 그대로의 순수한 맛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명주로 나아가려는 시점에, 감미료의 달달한 맛에 기대지 않겠다는 것이다. 장인의 솜씨로만 승부를 보겠다는 의미다. 프리미엄 막걸리들은 단맛을, 곡물의 잔당을 남겨 내거나, 찹쌀을 사용하거나, 물을 적게 넣어 돌도록 한다.  

다섯째. 프리미엄 막걸리는 보통 막걸리보다 가격이 작게는 2배 크게는 10배까지 비싸다. 이상한 것은, 보통 막걸리는 싸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경우가 있었던 반면 프리미엄 막걸리는 막걸리 주제에 비싸다고 질타를 받기도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재 술 시장은 소주나 맥주처럼 마트 판매 기준으로 1000원대 제품들이 주도하고 있다. 막걸리의 애초의 경쟁력도 1000원대 상품을 낼 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 다만 막걸리는 소주처럼 고가의 제품이 존재하지 않고, 맥주처럼 다양한 스타일이 부각되지 않다는 점에서 단조롭고 쓸쓸했다. 이제 프리미엄 막걸리의 성장으로 막걸리의 정체성도 달라져 갈 것이다.

값비싼 막걸리, 그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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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학교에서 프리미엄 막걸리를 시음하고 있다. ⓒ 허시명


프리미엄 막걸리 중에서 고가에 팔리는 술로는 '이가수불'의 이상헌 탁주가 있다. 이태원의 주점 안씨막걸리에서 5만 원에 팔린다. 발효된 원주 그대로를 상품화해 알코올 도수가 19도로 높다. 상표에는 일련번호가 적혀있는데, 지난 12월 7일 막걸리학교의 프리미엄 막걸리 시음회에서 '33-25/60' 번호가 적힌 술을 마셨다.

제조자의 사인도 함께 있어 마치 판화 작품의 일련번호를 연상시킨다. 이 숫자의 뜻이 무엇인지 이상헌 대표에게 물어봤더니, 2013년 10월 1일에 첫 술독을 거른 뒤로 33번째로 빚은 술독에서 60병이 나왔는데 그중에 25번 병이라고 했다. 이상헌씨는 자신이 빚은 술독과 술병의 수효를 앞으로도 계속해 헤아려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보통과 달라도 많이 다르다.

프리미엄 막걸리의 특징은 도수가 높고 수제품이고 항아리에 빚기도 하는 등 많이 있지만, 앞으로도 더 다양한 차별화가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프리미엄 막걸리 역시 막걸리가 다양한 스타일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잠시 머무는 광장이다. 프리미엄이라는 개념이 포괄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프리미엄이 언젠가는 보통이 돼 더 이상 독특한 개성일 수 없는 시절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또 다른 개념의 막걸리 종이 생겨날 것이다. 부디 그런 시절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그때까지 프리미엄 막걸리가 쭉쭉 성장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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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⑥ 사람들은 왜 산에서 막걸리를 찾는 걸까
⑤ '광해군 폐위' 일등공신 가문의 술맛
④ '회장님 생일상' 오른 이 술, 잘 나가는 비결은
③ 아버지의 주전자 막걸리, 그녀의 인생을 바꾸다
② 집밥만 있는 게 아니다, '집술'도 있다
① 조선 선비들이 맛본 술맛 궁금하다면
#막걸리 #허시명 #프리미엄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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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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