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의 어두운 역사와 언론권력

[백운동천을 따라 서촌을 걷다 ②]

등록 2015.12.30 09:53수정 2016.02.0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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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문 옆 북악산 자락에서 시작되는 백운동천이 청계광장에 이르려면 광화문네거리를 지난다. 그런데 이곳 광화문네거리 일대에는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계획의 어두운 역사가 남겨져 있다.

광화문네거리는 해방 후 1952년3월 도시계획에서 서울의 총 21개 계획광장 가운데 하나로 반지름 150미터의 원형 계획광장부지(7만700㎡, 2만1409평)로 잡혀 있었다(1952.3.25 내무부고시 제23호). 이것은 현 시청 앞 광장(8485평) 보다 무려 2.5배나 큰 것이다. 당시 이 계획광장부지 안에 지금의 <조선일보> 사옥, 구 <동아일보> 사옥, 광화문빌딩 등이 모두 속해 있었다.


a  해방 후 첫 도시계획으로 1952년 3월 25일 내무부고시에 의해 계획된 광화문광장

해방 후 첫 도시계획으로 1952년 3월 25일 내무부고시에 의해 계획된 광화문광장 ⓒ 유영호


당시 서울시는 전후 복구에 급급한 처지라서 재정상 바로 광장을 만들 수는 없었다. 도시계획법상 이 부지에 포함된 건물은 철거하지는 않았지만 일체의 신규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았으며 가건물만 허용했다. 서울시내 가장 중심지에 위치한 이곳의 토지소유자들은 이러한 도시계획에 강력히 반발하였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정부는 전쟁으로 인한 파괴 속에서 새로운 도시건설을 위해 '도로와 광장'이라는 밑그림을 먼저 그린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도시설계와 국가재정의 부족이라는 현실 속에서 1952년 탄생한 '가건축제도'는 재산권 침해 논란을 무마시키기 위하여 임시로 만든 제도이다.

그러나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정부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어디선가 공통분모를 찾으면서 상황은 변하게 되었다. 1962년 정부는 계획광장의 넓이를 반지름 150미터에서 102.87미터로 줄였다. 본래 면적의 약 53%가 줄어든 3만 3228㎡로 고시한 것이다(1962.12.8 건설부고시 제177호). 하지만 이렇게 좁혀진 광장 부지에도 당시 <동아일보> 사옥은 여전히 포함되었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이런 도시계획을 무시하고 1970년 창간 50주년을 맞아 새 사옥을 만들겠다며 투시도까지 1970년 4월 2일자 신문에 발표했다. 그야말로 국가권력에 대한 언론권력의 도전이었다. 동아일보사의 끈질긴 교섭에 시달린 끝에 결국 서울시 기획관리관 손정목은 할 수 없이 <동아일보>를 찾아가 막 개발되기 시작한 여의도의 장래성을 설명해주면서 여의도 내 국회 앞 길 건너 서울시청사 터가 자리잡고 있는 1급 땅을 주겠다고 제안하여 <동아일보>의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서울시장 단독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서울시장 양택식은 직접 대통령에게 여의도 땅을 <동아일보>에게 팔겠다는 결제를 올렸고, 당시 매매가는 3689평에 총 2억 원이 채 안 된 가격으로 평당 5만 3500원이었다.

이상의 <동아일보> 여의도 사옥이전에 관한 이야기는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국 담당자였던 전 시립대 손정목 교수의 <서울 도시 계획이야기 2>(2003, 한울)에 보다 자세히 나와 있다.


a  1999년 광화문에 완공한 동아일보 신사옥, 그 옆에 위치한 5층 구사옥은 현재 <일민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999년 광화문에 완공한 동아일보 신사옥, 그 옆에 위치한 5층 구사옥은 현재 <일민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 유영호


그러나 동아일보사는 여의도 부지를 매입하였을 뿐 광화문에서 여의도로 이전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지난 1999년 광화문에 지하5층 지상 21층의 신사옥을 완공한 것이다. 한편 1970년 당시 1억 9764만여 원에 토지를 구매하여 그곳에 신사옥 대신 <동아일보> 별관을 건설한 <동아일보>는 지난 2003년 포스코에게 1370억 원에 매각하였다.

언론권력에 의한 일반시민들의 권익침해는 도로 및 광장의 편익만 놓고 보아도 이것 하나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계획광장에 포함되어 있어 언제든 헐려나갈 수 있었던 구 <동아일보> 사옥으로 인해 1971년 지하철 1호선 설계 당시 시청역과 종각역 사이의 철길은 동아일보사 건물의 일부를 헐고 건설해야 전동차가 정상적으로 운행할 수 있었지만 <동아일보>의 반대로 결국 거의 90도 직각의 형태로 꺾이게 되었다. 이 때문에 이 구간 운행은 전동차 운행속도를 급격히 감속해야 하며, 또 철로의 마모를 막기 위해 수많은 윤활유를 뿌려야 하는 부담은 오로지 시민들의 세금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 세종대로의 경우도 광화문에서 청계광장입구까지의 차선이 조선일보사가 위치한 곳에 이르면 2개 차선이 없어진다. 조선일보 사옥 앞을 걸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인도에 접해 있는 빌딩 입구가 이상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이로 인해 차량 1대당 평균 12초가 지체되며, 연료소비량 등 교통혼잡비용은 엄청나게 증가하는 것이다.

참고로 <동아일보> 구사옥은 1926년 건설된 것으로 <동아일보>의 창간사옥이 아니다. <동아일보>는 1920년 현 정독도서관 앞 종로구 화동 138-33에서 창간되었다. 그리고 광화문 동아일보사 자리는 조선시대 우포도청이 있던 자리이다. 좌포도청은 종로3가 15번출구쪽(서울극장 방향)에 위치했다.

포도청은 성종12년(1481) 좌우로 나뉘었는데 좌포도청은 서울의 동부·남부·중부와 경기좌도를 담당하고, 우포도청은 서울의 서부·북부와 경기우도를 담당하였다. 이것이 1894년 경무청(警務廳)을 신설하면서 통폐합되었고, 현재의 경찰청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포도청이 있던 자리에 언론사가 들어서서 그런지 마치 옛 포도청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광화문계획광장 #광화문광장 #서울도시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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