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할머니들 "우릴 인정하고 협상 다시 해요"

[현장] 조태열 외교부 2차관 나눔의 집 방문... "인정 못해, 대통령 바꿔야 해"

등록 2015.12.29 21:05수정 2015.12.30 05:54
17
원고료로 응원


a

위안부 피해 할머니 얼굴에' 햋빛의 위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유희남(88) 할머니가 29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집에서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이 방문해 대화를 하던 중 고개를 떨구자 얼굴로 햇볕이 비치고 있다. ⓒ 이희훈


"우린 인정 못 해요. 우리가 피해잔데 당신들 마음대로 해도 됩니까. 우릴 인정하고 다시 해요. 너무 했어. 너무 무시했어, 우리를."

김군자 할머니(90)가 한일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결과를 들고온 조태열 외교부 제2차관을 향해 꾸짖듯 말했다. 김 할머니는 약 5분간 짧게 발언하면서 '우린 인정 못 한다'는 말을 총 6번 반복했다.

29일 오후 2시 30분께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은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집을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여섯 분을 만났다. 김군자 할머니를 비롯해 정복수 할머니(100), 박옥선 할머니(92), 이옥선 할머니(89), 유희남 할머니(88), 강일출 할머니(88)가 조 2차관을 맞았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두 분은 휠체어를 타고 만남 장소로 나왔다. 앞서 이날 오후 2시께는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쉼터를 방문 했다(관련 기사 : 피해 할머니 "당신들끼리 짝짜꿍 했잖아요" 외교부 차관 "저희 나름 최선을 다했습니다").

a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시설 '나눔의 집'에 거주하고 있는 할머니들. 왼쪽 위 부터 김군자(90), 정복수(100), 박옥선(92),강일출(88), 유희남(88), 이옥선(89). ⓒ 이희훈


할머니들과 마주 앉은 조 2차관은 "우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합의 내용이 다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은 저희도 잘 안다"고 운을 뗐다. 하지만 "외교부와 정부가 있는 힘을 다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애썼다는 말부터 드리고 싶다"면서 "합의에 대한 전체 내용을 찬찬히 봐달라"고 말했다.

조 2차관이 합의 내용을 요약해 할머니들에게 보고한 것은 총 두 가지였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받아냈다는 것과 일본 정부의 예산을 출연해 위안부 피해자 지원 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나눔의집 방문한 외교부 "이 이상의 명예 회복 있기 힘들다" 

a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이 29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집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을 만나 한일 협상 내용에 대해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고 있다. ⓒ 이희훈


조 2차관은 "일본의 아베 총리가 취임 후 최초로 공식 사죄를 표했고, 이 공식 입장을 일본 외무 대신이 공개된 자리에서 했다"면서 "아베 일본 총리가 전화를 통해 사죄 표명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육성으로 전달했다"고 전했다. 그는 덧붙여 "이는 할머니들의 노력으로 이뤄진 결과로, 이것에 대해서는 좋게 받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것은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가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국민과 국제 사회 앞에서 공식적으로 책임을 인정한 것"이라면서 "이 이상의 명예 회복은 있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2차관은 "그 후속 이행 조치로 국내 재단을 만들어 일본의 예산을 출연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 회복과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는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면서 "그 후속 조치 세부 내용은 할머니들께 다시 의논 드려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조 2차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바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취임할 때부터 집중력을 가지고 집요하게 이 문제에 전념하셨다는 것을 아실 거라 생각한다"면서 "그 무엇보다 (위안부 문제를) 중요한 외교 현안으로 인식하시고 해결 되도록 전력을 다하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 2차관의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은 할머니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이날 발언한 할머니들의 한결 같은 주장은 '왜 우리를 빼고 정부 마음대로 타결했나'였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정부끼리 한 협상, 우린 인정 못 한다"

a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88) 할머니가 29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집에서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이 방문해 대화를 하던 중 고개를 떨구고 있다. ⓒ 이희훈


a

위안부 피해 할머니 '제대로 된 사과 해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가 29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집에서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이 방문해 대화를 하던 중 고개를 떨구고 있다. ⓒ 이희훈


a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강일출 할머니가 29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집에서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을 만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a

외교부 조태열 2차관이 29일 오후 위안부 피해 할머니 10분이 살고 계신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을 찾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한 설명을 하자 할머니들이 인정할 수 없다며 발언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조 2차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목소리를 높인 유희남 할머니는 "여태껏 하셨다는 일이... 우리가 있는 걸 (알긴) 압니까"라고 되물으면서 "대통령도 경제 문제, 일자리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 안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해선 왜 이렇게 무심하고 등한시 하는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나는 인정 못해"라고 첫말을 던진 이옥선 할머니는 "대통령을 바꿔야 돼"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당시 피해자 개개인의 의견 수렴 없이 협상을 체결한 일을 언급하면서 "우린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런데 사죄했다고, 배상했다고 하는가"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왜 자기들끼리 합의하고, 할머니들 속이고... 이게 옳나. 나는 우리 정부가 틀렸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군자 할머니는 피해자 개인의 의사가 빠진 합의안을 비판하면서 "다시 협상을 해서 개인별로 합의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할머니는 "협상을 하려면 (우리와) 끝까지 하라"고 당부했다. 할머니는 말 끝에 자신이 일본군에 끌려가 고막을 잃고 칼에 찔린 경험을 말하면서 "너무 억울하다, 정부끼리 한 거 우린 인정 못 한다"고 강조했다.

조 2차관은 할머니들의 의견을 듣고 난 뒤 "무겁게 들었고 깊이 새겨 듣겠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는 우린데 정부가 왜 나서느냐는 말은 지당한 말씀이다"라면서도 "하지만 우리 정부가 할머니를 대표해서 그 아픔이 국민의 아픔이고 명예라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해 노력한 바를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합의 내용을 코끼리 다리 만지듯 하나만 보지 모시고 그 의미를 평가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a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29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집에서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을 만나 협상 내용 관련 대화를 하고 있다. ⓒ 이희훈


a

29일 조태열 2차관이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의 방문해 피해 할머니들께 협상경과를 설명한 후 나눔의 집을 나서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1시간 여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조 2차관이 떠난 뒤에도 할머니들은 이번 합의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이옥선 할머니는 다시 한 번 "우리 정부가 틀렸다"면서 "어떻게 되든 간에 우리 말을 듣고 조금 더 힘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군자 할머니도 "개인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아야하고 명예 회복을 (제대로) 해야한다"면서 "생각을 다시 하시고 당장 다시 해결해라"고 말했다.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은 피해 당사자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타결한 이번 합의를 정면 비판했다. 그는 "기자 회견을 보고 합의문 내용을 알았다, 당사자와 개별 접촉하는 등의 노력을 했다면 할머니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이해했을 것"이라면서 "할머니들의 동의가 없는 합의안을 국제 사회가 인정할지 의문이다"라고 비판했다.

a

29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집에서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이 방문해 대화를 하던 중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두분이 의자 팔걸이에 손을 올려 놓고 있다. ⓒ 이희훈


#위안부 #한일협정 #외교부 #박근혜
댓글1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누군가는 진실을 기록해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이 정도면 마약, 한국은 잠잠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