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박수받던 권은희는 왜 탈당했나

[여의도본색] 전략공천과 탈당, '국정원 수사 상징성' 사라졌다

등록 2015.12.29 22:28수정 2015.12.3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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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희 의원(왼쪽)과 신당창당을 준비중인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천정배 의원실에서 면담을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야당을 담당하는 기자의 휴대전화에는 대부분의 야당 정치인 연락처가 저장돼 있다. 보통 OOO 의원이라고 저장을 하는데 권은희 의원(무소속, 광주 광산을)은 약간 다르다. '권은희 수사과장', 지난 2013년 권 의원이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있던 시절 저장된 번호다. 당시 권 의원은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수사 과정에서 윗선의 수사방해를 폭로했다. 그는 당선이 되고 나서도 계속 그 번호를 사용했다.

권 의원이 광주시당에 탈당서를 제출했다는 지난 28일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수차례 시도에도 휴대전화가 꺼져 있다는 메시지만 반복됐다. 앞서 탈당한 다른 의원들과 달리 기자회견도 보도자료도 없었다. 안철수 의원의 탈당 이후 권 의원 역시 '탈당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이 계속 흘러 나왔다. 하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정확한 설명은 없었다. 그저 다른 광주 의원들의 이탈에 동조할 것이라는 전망만 쏟아졌다.

국정원 수사 상징에서 평범한 국회의원으로 

이틀이 지났지만 권 의원의 행보는 여전히 묘연하다. '안철수 신당'에 합류할 것인지 아니면 천정배 의원의 '국민회의'와 함께할 것인지 알 수 없다. 그가 탈당 전 천 의원을 만나 "생각이 같다"라고 말한 것을 바탕으로 천 의원 쪽으로 기울었다는 추측만 무성하다. 그만큼 권 의원의 탈당 과정은 의문투성이다. 한때 사회적으로 '정의'를 상징하던 인물은 왜 어떤 이유로 탈당하는지도 설명하지 못하는 정치인이 된 것일까?

권 의원은 지난해 7.30재보궐 선거에서 광주에 전략공천을 받아 출마했다. 당시 재보궐 선거는 전국에 15개 의석이 걸린 '미니 총선'이었다. 세월호 정국에서 치러진 6.4지방선거에서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는 '선전했지만 승리하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곧바로 이어진 보궐선거는 새정치연합 지도부에게도 상당한 부담이 됐다. 여전히 세월호 참사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었고, 정부와 여당을 향한 비판여론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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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7월 30일 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광주 광산을 보궐선거에서 60.6%의 득표율로 승리했지만 개표방송을 보는 내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 소중한


그때 김-안 공동대표가 꺼내든 비장의 카드가 '권은희 전 수사과장'이었다. 경찰 옷을 벗고 변호사로 돌아간 권 의원은 광주 광산을에 전략공천 됐다. 이를 놓고 민심은 갈라졌다. 국정원 수사 윗선 개입 의혹을 폭로한 '권은희'라는 인물이 가진 상징성이 훼손된다는 의견과 국회의원이 돼 부정하고 무능한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게다가 '권은희 전략공천'은 다른 지역에 영향을 끼치며 선거 전반의 악재로 나타났다.

당시 광주에는 기동민 전 서울시정무부시장과 천정배 의원이 출마를 준비 중이었다. 권 의원이 전략공천 되면서 기 전 부시장은 서울 동작을에 전략공천 됐고, 천 의원은 출마를 포기했다. 기 전 부시장이 전략공천 되자 오랫동안 지역에서 뛴 허동준 지역위원장이 강하게 반발하며 당 대표실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 천 의원도 결국 지난 4월 탈당해 호남정치세력 교체를 내세우며 4.28재보궐 선거에서 광주에 출마해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이런 상황을 놓고 '권은희 나비효과'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특히 권 의원 역시 '야당의 심장'이라는 광주에서 초라한 성적으로 당선됐다. 사실상의 평가 지표라고 할 수 있는 투표율은 22.3%로 동시에 치러진 모든 재보궐 선거구 가운데 가장 낮았고, 야당에 절대적 지지를 보내는 지역인데도 득표율은 60.6%에 그쳤다. 권 의원은 당선이 되고도 웃지 못했고, 야당이 전국적으로 대패하면서 김-안 공동대표도 사퇴했다.

김 대표는 권 의원을 전략공천하며 "우리 사회 불의를 돕고 싶은 사람들 말고는 대한민국의 어느 누구도 권 후보의 진정성, 양심과 용기와 정의로움을 훼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권 의원이 받아든 성적표는 그의 진정성과 양심과 용기와 정의로움을 훼손하는 결과였다. 포털사이트에 수많은 응원 댓글이 달리고 국민의 박수를 받던 인물이 한순간에 '평범한 정치인'이 돼 버린 것이다.

탈당서 내고 잠적... "자기 생각이 없는 것"

재보궐 선거 이후 국정감사가 끝난 지난해 11월 권 의원을 만났다. 권 의원은 국방위원회에서 들어가 의욕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생소한 군 관련한 이슈를 파악하기 위해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 자리에서 왜 정치를 하게 됐는지 물었다. 특히 재보궐 선거 과정에서 잡음이 생겨 부정적인 평가가 나온 것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권 의원은 그런 평가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저는 지금도 잘 이해가 안 돼요. 왜 '다음 총선에 나왔어야 한다'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수사의 진실을 밝혀야 해요. 늦으면 진실을 밝히기 더 어려워지는데, 왜 다음에 하라고 하는 건가요? 실제로 제가 염려돼서 걱정하는 분들이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국민들이 실망했으니까 그 마음이 풀릴 때까지 조금 기다렸다가 제가 할 일을 해야죠."

1년이 지난 지금, 권 의원은 탈당을 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탈당의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권 의원이 정치를 시작한 것이 국정원 수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면, 탈당을 하는 이유도 그래야 한다. 현재 더불어민주당(구 새정치민주연합)이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권 의원의 침묵이 길어지면서 이러한 명분은 힘을 잃고 있다. 

당 관계자는 "권 의원은 먼저 탈당한 김동철, 임내현 의원과는 정치적 위치가 다르다, 재보궐 선거에서 당의 전략공천으로 당선이 됐고 젊은 신인 정치인으로 참신함과 상징성이 있었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탈당을 하더라도 '호남 기득권'으로 상징되는 다른 정치인들과는 달라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권 의원의 상징성이 아무 의미 없이 소모됐다는 지적이다.

이를 놓고 권 의원이 '계보정치'에 휩쓸리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또 다른 당 관계자는 "권 의원은 김한길-안철수 전 대표들이 국회의원을 시켜준 게 아니"라며 "당에서 호명해 전략공천을 받았고 시대적 역할을 부여 받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장기말이 된 것 같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치적 신념에 따라 탈당할 수도 있지만 지금 기자회견도 못하고 아무 말 하나 못하지 않나"라며 "자기 생각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013년 국회 국정원 댓글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권 의원의 모습을 보고 학생들이 경찰서로 찾아가 응원의 빵을 전단한 일이 있다. 그때 학생들은 "진실을 말하는 것에 감동했다", "정의에 편에 선 것을 존경한다"라고 말했다. 정치에 들어선 지 이제 1년여 된 권 의원은 지금 진실을 말하고 있을까? 그가 서 있는 곳은 과연 정의의 편일까? 그것을 입증하는 책임은 권 의원에게 있다.
#권은희 #안철수 #새정치연합 #더불어민주당 #천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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