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버지 귀도(로베르토 베니니)가 아들 조슈아(조르지오 칸타리니)에게 유태인 수용소 생활이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하는 게임이라고 속인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K에게 수용소를 반드시 나가야 하는 절실한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견고한 성채가 허물어지는 것은 두 가지 경우다. 하나는 작은 균열에 의해서다. 양쯔강 상류의 거센 물길을 막아 세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댐으로 꼽히는 산샤댐도 손가락만한 구멍 하나로 붕괴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트로이의 목마'에 의해서다. 승리에 도취해 방비를 소홀히 하고 내부에 있는 적을 알아보지 못하면 아무리 그 성벽이 굳건해도 성문은 쉽게 열리고 만다. 비밀스럽고 비공식적인, 그러나 일본 권력의 핵심인 최고의사결정연구단에서는 이 두 가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금이 가기 시작했고, 알 수 없는 내부 적들이 공세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민당 소장파 리더 격인 미나미 겐조 의원과 다케우치 료타 기조실장 사이에서 일어난 주도권 다툼은 이제 공공연하다.
"다케우치 실장, 우리 연구단에 참석하는 사람들 하나하나는 당과 관료, 그리고 외부 단체를 대표해서 온 사람들이오. 그런데 모든 정보와 결정이 다케우치 실장의 독단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소. 무슨 일이든 결정하기 전에 최소한 의견 개진과 함께 더 좋은 의사결정을 위해 견해를 모으는 게 우리 연구단의 존재 이유가 아닙니까?""미나미 의원님 말씀이 지당합니다. 다만 미리 우리의 전략이나 전술은 극도의 보안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연구단의 활동이 노출되지 않습니다.""아무리 그렇다 해도 주요 결정 사항을 우리가 언론을 통해서 알게 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죠. 그렇지 않아도 일본에 있는 한국인과 '자이니치(在日)' 범법자에 대한 분리 수용에 대해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떤 한두 사람이 우리 일본의 미래에 대해 결정할 수는 없어요. 당신이 검사 출신이라서 상명하복에 익숙한 모양인데, 그렇게 연구단 일 전권을 행사하려 들면 안 됩니다. 검사 출신이 무슨 정치적 역량에 대해 알기나 하나?""미나미 의원,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저는 모든 일을 다나카 단장님과 긴밀히 상의를 한 다음 진행합니다. 제가 무슨 전권을 행사한다는 말입니까?"다나카 단장이 말린다.
"미나미 의원, 다케우치 실장, 그만 하면 됐어. 이만 오늘 회의는 끝내지."다나카가 다케우치를 부른다. 담배를 입에 문 다나카는 한동안 말이 없다.
"무슨 하명이라도 있는지요.""자네가 이해하게. 미나미도 나름대로 정치권에서 촉망받는 젊은이야.""…….""그리고 폐하의 어심 말이네. 조금 힘들 것 같아. 아직까지 평화헌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셔. 차차 단계적으로 진행시키는 게 어떻겠나?""안 됩니다. 지금 같이 분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밀어붙여야 합니다.""그럼, 다른 방법이라도 있나? 폐하의 심중이 너무나 단단해서 말이야.""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만….""뭔데? 뭐길래 그리 뜸을 들이나?""선양(禪讓)입니다.""뭐야? 그런 불손한 말은 집어치워!""아닙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합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만세일계, 지존의 자리를 감당하시기 힘듭니다. 그래서 선양이 필요한 겁니다."일본 보수 우익의 입장에서는 궁여지책으로 '차선책'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현재 일왕은 과거에 한국에 대한 애정을 스스럼없이 밝혔던 전력이 있다. 1990년 일본을 방문한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한국과 깊은 연(ゆかり)이 있다고 느낀다"며 "저의 가계를 살펴보면 모계에 한국계 인물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뿐만 아니라 2001년에는 "간무 천황(737∼806)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다는 사실에서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고 발언한 적도 있다. 일본 왕실이 백제계의 피를 타고났다는 말 자체가 만세일계를 부정하는 발언일 수도 있고, 한국을 일본의 발아래에 두고자 하는 일본 보수 우익의 입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인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