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익 "천황도 갈아치울 수 있다"

[소설]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비극 'Another Holocaust' 33화

등록 2015.12.30 10:18수정 2015.12.30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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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에서 이어집니다)

작업에 다녀온 사람들을 통해 전해지는 방사능 방호복에 대한 얘기는 삽시간에 수용소 전체에 퍼졌다. 무기력하기만 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방사능이라는 '공포 바이러스'는 무엇보다도 전염성이 강했다. 방사능은 곧 죽음과 질병이라는 공포를 꼬드겼고, 거기서 비롯된 감정적 폭탄은 언제 터질지 모를 정도로 폭발력을 키워가고 있다. 늦은 늦여름 밤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한 수용소는 폭풍전야다.


미키에게는 후쿠야마현 초행길이다. 오하라가 일러준 주소를 네비게이션에 찍고 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다. 옆에 있는 김윤아가 도움을 줬지만 인적이 드문 곳에 숨어 있는 수용소를 한 번에 찾을 수는 없었다. 두어 번 오는 길을 되돌아 나간다. 마침 계곡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새로 지은 듯하지만 녹음에 묻혀 칙칙한 회색의 수용소를 찾았다.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인 사회선생 리에는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를 핸드백에 몰래 숨겨 왔다. 미키에게 K 구금 소식을 듣고 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일본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상황에 대해 직접 알아보겠다고 고집했다. 명색이 방송사 기자인 미키를 무색하게 만든다.

굳게 잠긴 철문 앞에서 인터폰으로 내부자와 통화가 끝나자 둔중한 쇳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K가 입소할 때 그랬듯 몇 번의 문을 통과한다. 아예 면회소라는 게 없는 곳에 임시로 칸막이를 친 모양새다. 급조된 면회소라는 것이다. 간수 하나가 굽실거리며 나타난다. 권력집행 기관의 말단 그 자체 모습이다.

"오하라 검사님께서 연락 주셨습니다. 이곳이 중죄인들이 수용되는 특수 수용소라서 원래 면회가 허락되지 않는 곳입니다만, 검사님 특명으로 오늘 면회 자리를 특별히, 신경 써서 만들었고요. 불철주야 애쓰시는 검사님께 말씀 좀 잘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죄송스럽게도 면회시간은 총 20분만 가능하니 이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와 '신경 써서'를 교묘히 강조한다. 하기는 일체 면회가 금지된 곳에서 20분이라도 감지덕지다. 간수가 나간 다음 회색 죄수복을 입은 K가 들어온다. K와 미키의 눈에는 동시에 눈물이 담긴다. 둘은 말없이 힘주어 안는다. 그때 입회인이 규정상 안 된다며 둘을 제지한다. 미키는 감정이 배제된 낮은 목소리로 간수를 불러 단호하게 못 박는다.


"어렵게 자리를 마련한 데 대해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면횝니다. 입회인은 데리고 나가 주세요. 그러는 것이 댁의 신상에 이로울 것인지, 아닐지는 알아서 판단하세요."

간수는 난처한 얼굴로 쭈뼛거린다. 이곳에 와서 처음 이뤄진 면회인데다 특별한 규정이 없다. 자신에게 뭐가 득이 되는지 촉각이 발달한, 권력에 굴종하는 전형적인 하급 공무원은 젊은 입회인을 데리고 말없이 자리를 뜬다.


"잘 지내고는 있죠?"

비로소 인사를 건넨다.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물어보는 말이다. K는 조금 검게 그을린 얼굴에 한동안 이발을 못해 더벅머리였지만 다행히 안색은 좋아 보인다.

"난 살아서 못 만난 줄 알았어."

"왜 못 만나요. 오늘도 이렇게 만나고 있잖아요."

"근데 내가 왜 여기에 와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 날더러 살인자래. 게다가 국가안전보장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도 있대."

"이제 됐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모든 것을 알게 됐어요. 당신이 왜, 어떻게 여기에 갇히게 됐는지, 이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요. 일단 여기서 빠져 나가는 게 급선무예요. 지금 밖은 난리가 났어요. 일한관계가 전쟁 직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위기상황이에요. 정부가 주한 대사를 소환했고, 공관 폐쇄 훈령도 발표했어요. 일본 내 체류하는 한국인들과 재일교포들에게 한국이나 북조선으로 귀국하라는 권고도 공표됐고요."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오늘 여기 면회 시간은 겨우 20분 밖에 안 되니까요. 일단 제 말부터 들으세요. 지금 이곳 뿐 아니라 이곳을 포함해서 전국 5개 수용소에 5천여 명이 거의 불법적으로 수용돼 있대요. 대부분 한국인과 재일교포고요. 일부  오키나와 출신자, 그리고 그밖에 불법 체류외국인이 포함돼 있고요. 이건 주로 한국인과 함께 외지인을 따로 분류해 놓은 명백한 인종적 차별 조치예요. 더구나 국가안전보장법을 여기저기에 갖다 붙여서 법을 어겼다고 하는 것 역시 인권 침해가 분명하고요."

"얼마 전 여기 수감자들이 방호복도 없이 방사능 오염 물건을 나눠서 쌓는 작업을 했어. 그래서 사람들이 특히 겁을 먹고 술렁이고 있지."

"알아요. 다른 수용소에서도 원자력 발전소에서 위험 작업에 동원되고 있다는 사실들이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했어요. 지금 이 모든 엄청난 일을 알리기 위해 제가 여러 사람들 도움을 받아서 준비하고 있으니까요. 무조건 몸부터 챙기도록 하세요. 알았죠?"

"나도 도움을 주고 싶어.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말 했잖아요. 건강이나 신경 써요. 무슨 일이든 몸이 건강해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당신이 겪었던 일들 하나하나 모두 기억해 두세요. 내게 말했던 평생의 작업에 대한 준비라고 여기고요."

"알았어. 고마워."

밖에서 간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면회 시간 끝났습니다."

"조금 기다려줘요. 다 끝났으니까. 이젠 언제 볼 수 있을까? 미키?"

"K, 금방 우리는 다시 볼 수 있을 거예요. 여기에 있는 천사와 함께."

미키가 아직 불러오지도 않은 자신의 배를 가리킨다.

"천사라니?"

"태명(胎名)을 뭐라고 지을까요?"

"태명? 배냇이름? 미키, 정말이야?"

"그럼, 거짓말이기를 바래요? 아직 공주인지 왕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마워. 미키. 정말 고마워.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어. 이름은 '조슈아'라고 지었으면 좋겠어.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알지? 거기에 나오는 유대인 귀도(로베르토 베니니)의 아들 이름과 같은 조슈아! 끝까지 살아남는."

"알았어요. K, 뱃속 아기 이름은 조슈아! 아기를 위해서라도 견뎌내세요. 밖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할게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버지 귀도(로베르토 베니니)가 아들 조슈아(조르지오 칸타리니)에게 유태인 수용소 생활이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하는 게임이라고 속인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버지 귀도(로베르토 베니니)가 아들 조슈아(조르지오 칸타리니)에게 유태인 수용소 생활이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하는 게임이라고 속인다.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K에게 수용소를 반드시 나가야 하는 절실한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견고한 성채가 허물어지는 것은 두 가지 경우다. 하나는 작은 균열에 의해서다. 양쯔강 상류의 거센 물길을 막아 세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댐으로 꼽히는 산샤댐도 손가락만한 구멍 하나로 붕괴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트로이의 목마'에 의해서다. 승리에 도취해 방비를 소홀히 하고 내부에 있는 적을 알아보지 못하면 아무리 그 성벽이 굳건해도 성문은 쉽게 열리고 만다. 비밀스럽고 비공식적인, 그러나 일본 권력의 핵심인 최고의사결정연구단에서는 이 두 가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금이 가기 시작했고, 알 수 없는 내부 적들이 공세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민당 소장파 리더 격인 미나미 겐조 의원과 다케우치 료타 기조실장 사이에서 일어난 주도권 다툼은 이제 공공연하다.

"다케우치 실장, 우리 연구단에 참석하는 사람들 하나하나는 당과 관료, 그리고 외부 단체를 대표해서 온 사람들이오. 그런데 모든 정보와 결정이 다케우치 실장의 독단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소. 무슨 일이든 결정하기 전에 최소한 의견 개진과 함께 더 좋은 의사결정을 위해 견해를 모으는 게 우리 연구단의 존재 이유가 아닙니까?"

"미나미 의원님 말씀이 지당합니다. 다만 미리 우리의 전략이나 전술은 극도의 보안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연구단의 활동이 노출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주요 결정 사항을 우리가 언론을 통해서 알게 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죠. 그렇지 않아도 일본에 있는 한국인과 '자이니치(在日)' 범법자에 대한 분리 수용에 대해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떤 한두 사람이 우리 일본의 미래에 대해 결정할 수는 없어요. 당신이 검사 출신이라서 상명하복에 익숙한 모양인데, 그렇게 연구단 일 전권을 행사하려 들면 안 됩니다. 검사 출신이 무슨 정치적 역량에 대해 알기나 하나?"

"미나미 의원,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저는 모든 일을 다나카 단장님과 긴밀히 상의를 한 다음 진행합니다. 제가 무슨 전권을 행사한다는 말입니까?"

다나카 단장이 말린다.

"미나미 의원, 다케우치 실장, 그만 하면 됐어. 이만 오늘 회의는 끝내지."

다나카가 다케우치를 부른다. 담배를 입에 문 다나카는 한동안 말이 없다.

"무슨 하명이라도 있는지요."

"자네가 이해하게. 미나미도 나름대로 정치권에서 촉망받는 젊은이야."

"……."

"그리고 폐하의 어심 말이네. 조금 힘들 것 같아. 아직까지 평화헌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셔. 차차 단계적으로 진행시키는 게 어떻겠나?"

"안 됩니다. 지금 같이 분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밀어붙여야 합니다."

"그럼, 다른 방법이라도 있나? 폐하의 심중이 너무나 단단해서 말이야."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만…."

"뭔데? 뭐길래 그리 뜸을 들이나?"

"선양(禪讓)입니다."

"뭐야? 그런 불손한 말은 집어치워!"

"아닙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합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만세일계, 지존의 자리를 감당하시기 힘듭니다. 그래서 선양이 필요한 겁니다."

일본 보수 우익의 입장에서는 궁여지책으로 '차선책'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현재 일왕은 과거에 한국에 대한 애정을 스스럼없이 밝혔던 전력이 있다. 1990년 일본을 방문한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한국과 깊은 연(ゆかり)이 있다고 느낀다"며 "저의 가계를 살펴보면 모계에 한국계 인물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뿐만 아니라 2001년에는 "간무 천황(737∼806)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다는 사실에서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고 발언한 적도 있다. 일본 왕실이 백제계의 피를 타고났다는 말 자체가 만세일계를 부정하는 발언일 수도 있고, 한국을 일본의 발아래에 두고자 하는 일본 보수 우익의 입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인식이다.

 1971년 충남 공주에서 발견된 무령왕릉에 부장된 무령왕릉 지석(誌石). 국내에서 처음으로 왕릉의 주인을 밝힌 사례다.
1971년 충남 공주에서 발견된 무령왕릉에 부장된 무령왕릉 지석(誌石). 국내에서 처음으로 왕릉의 주인을 밝힌 사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잠시 다나카는 곰곰이 생각한다.

"그럼, 어떻게?"

"역사적으로 막부 입장에 따라서 천황이 집권에 방해가 될 때, 막부는 천황을 암살하거나 폐위시키거나 한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점인 것 같습니다. 우리 대일본의 재현을 위해서 폐하가 걸림돌이 된다면 폐하께서 물러날 수 있도록 길을 터 드려야 한다는 것이죠. 이번 선양은 궁내청을 통해 천황 폐하께서 연로하셨고, 건강상 재위가 힘들다는 이유를 내세우는 게 가장 합당합니다. 그렇게 여론과 분위기를 잡아가면 폐하께서는 아무 소리 못 하고 조용히 황태자님께 양위할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아무래도 이 사안은 자네와 나만 알고 있어야 하네. 황실에 대한 소식이 조금이라도 흘러나가서는 큰일 나는 거 알지? 절대 보안 유지를 하게. 무슨 흔적도 일체 남기지 말고. 내가 윗분들과 상의해보도록 하겠네."

그들에게 보이는 것, 그리고 마음속에 남아있는 것은 오로지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권력과 풍요에 대한 향수뿐이다.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사람들의 목숨과 흘린 피의 양에 따라 그 권력의 무게와 풍요의 양은 많아진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위대한 일본'이나 '야마토 다마시(大和魂·대화혼)'는 허울이나 장식에 불과하다. 동서고금이 결국은 그렇게 귀결된다. 권력을 도모하고, 기획하고, 그래서 권력을 향해 부나비처럼 달려드는 그들이 노리는 것은 오로지 권력 그 자체와 그로 인한 부와 명예,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향락이 전부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조슈아 #백제계 일왕 #일왕 선양 #야마토 다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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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Bella Vita! 인생은 아름답다며, 글쓰기로 먹고 살기 위해 애쓰는 여러분의 이웃입니다. 세계일보, 머니투데이, 한경비즈니스, 이코노미조선 등에서 기자로 일했습니다. 2019년 '아산문학' 공모전에서 '그는 제바닷타였을까'라는 단편소설로 대상을 받고, 전업작가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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