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까지 건너가 줄걸이 안전교육, 대단한 이 사람

[인터뷰] 안전한 사업장 만들기를 선도하고 있는 이정석 (유)삼주 대표

등록 2015.12.31 18:01수정 2015.12.3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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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 줄걸이 자격증반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있는 이정석 대표 ⓒ 이생곤


산업안전보건교육원 한철호 교수의 연구조사에 따르면 화물을 크레인에 연결시켜 인양 유도하고 분리하는 '줄걸이' 과정에서의 사고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이 매년 평균 78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줄걸이작업 사망 재해 발생빈도도 크레인 1만 대당 17.6명으로, 일본의 4명에 비해 4.4배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크레인 줄걸이 작업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대로 된 교육과 자격증 없이 바로 일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특히 전북은 산업재해율 전국 1위의 불명예 지역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산재로 인한 손실은 연간 17조 원으로 자연재난의 16배 수준이며, 하루 평균 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고 한다. 이러한 산업재해사고는 일반인들에게는 그리 와 닿지 않지만 제조업체가 다수 입주해있는 군산지역에서는 각별하게 곱씹어봐야 할 사안이다.

지난 29일 군산 관내 크레인줄걸이작업 운영업체 대표이면서 삼영크레인중장비학원 원장인 이정석 원장을 만나서 작업장 안전에 대한 그의 운영철학을 들어보았다.

"제조 업장에서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나요?"

줄걸이작업 안전교육 현장에서 시연중인 이정석 대표(사진 우측 네번째) ⓒ 이생곤


"사고가 났다는 소리가 들리면 제일 먼저 '살았냐?'라고 묻는 게 일상이었어요. 최하가 골절이니, 골절 정도야 사고로 치지도 않았죠. 그만큼 위험천만한 직군이에요."

2006년 크레인전문업체 유한회사 삼주를 설립한 이정석 대표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안타까운 사고 소식들을 접하며 생사를 넘나드는 이 위험천만한 작업현장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살아만 있다면 복잡한 법망을 피해갈 수 있으니깐, 관리자들은 사고자가 숨만 붙어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크레인 가동 현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은 바로 줄걸이 작업 안전사고였다. 불안전한 작업방법이 가장 큰 이유였고, 상황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사고는 계속해서 되풀이되었다.

크레인을 조종하는 기사들조차 정작 크레인과 줄걸이 작업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작업 기사들을 모아 교육의 기초부터 하나하나 쌓아가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 줄걸이 작업교육이 열리는 자리면 어디든 마다치 않고 발품을 팔았다. 그 당시엔 체계화된 교육조차 이루어지지 않던 시절이었다.

"제가 70년대 말부터 사회생활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회사 사장들은 저와 같은 견습생들을 사람이 아니라 그저 일하고 돈 벌어주는 기계로 생각했습니다. 돈 벌어주는 것이 첫 번째이고 우리 노동자들에게 안전 따윈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남들과 달라야 살아갈 수 있다고 판단한 그는 산업안전보건교육원에서 줄걸이 안전교육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선배들의 눈치에도 교육에 꼬박꼬박 참가했단다. 그 후, 작업 시에 많은 로프를 사용하는 등 조금씩 변화를 주기 시작하였다. 손이 많이 가긴 해도 균형 잡기와 안전에 훨씬 도움이 됐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발짝 더 나아가 외국인을 수용하지 않던 일본 도쿄지부의 크레인협회 교육에도 자비를 털어 참가해 일본 줄걸이작업안전 자격증도 취득하였다.

"돈은 없으면 벌면 되지만 안전사고는 언제 어느 때 발생할지 모르니 내 돈을 투자해서라도 미리미리 준비하는 마음으로 국내든 해외든 안전에 대한 자격증을 취득하러 다녔지요. 나만 안 다치면 되는 게 아니라 주변을 돌보는 것이 일종의 '사회적인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한 몸이 조금 피곤하더라도 위험한 작업장에서 안전만 지켜질 수 있다면야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자신이 직접 개발한 크레인 전기판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이정석 대표 ⓒ 이생곤


또한 작업표준, 중량물 작업계획서 등 안전수칙 매뉴얼을 제작해 배포하였다. 지역의 관련 업체들과 화물연대에도 무상 줄걸이 교육을 제안하였다. 근로자들의 연령을 고려해 만든 이 대표의 '깜짝 매뉴얼'을 지금은 표준으로 채택해 사용하는 작업장이 많다. 

"세상을 살면서 중요한 게 많지만 특히 제조현장에서 안전이 정말 중요하지요. 사고예방 방안에 대해서 몰두하면 많은 아이디어가 샘 솟습니다."

2010년 11월에는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인 KOSHA18001을 인증받아 사내 협력업체들의 인증 확산에 교두보 역할을 했다. 2013년 7월, 산업안전보건 강조주간행사의 위험성 평가 우수사례 발표대회에서 전국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2014년에는 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유)삼주가 위험성 평가 우수사업장으로 인정받아 모회사 (주)세아베스틸과 협력사들의 위험성평가 인정 확산에 기여하였다. 올해에는 2015 안전문화대상에서 최우수상인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2014년에는 크레인과 관련된 발명특허 3건, 디자인등록 3건 등 정부에서 추진 중인 NCS(국가직무능력표준) 천장크레인 학습모듈 대표집필자로 위촉되어, 후학들에게 크레인 전문 지식과 현장의 실제 내용과 기술을 접목하는 국가사업에도 참여하였다.

제조 업장에서는 안전이 최우선, 나머지 삶은 사회봉사에... 

전남 완도 소재 쓰러져가는 독거노인 집을 수리해주고 있는 이정석 대표 ⓒ 이생곤


"저에게는 아픈 동생이 둘이 있습니다. 여동생은 시력에 장애가 있고 남동생은 다리가 불편해 두 동생 모두 어릴 적부터 장애인의 삶을 살았지요. 제가 강박적으로 안전에 몰두하는 것은 제 작업장에서만큼은 사고로 인하여 불편한 삶을 사는 상황이 발생하면 안 된다는 것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회사 내 안전과는 별개로 그가 틈틈이 하고 있는 사회봉사가 그에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질문해 보았다.

"회사 내 안전이란 나의 직원들에게 최소한의 그들의 권리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장을 해주는 것이고, 봉사란 사회적 약자의 안전하게 살 권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회사 내 안전 유지와 사회적 봉사는 '안전'의 측면에서는 동일한 일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언급을 많이 했다. '안전'을 위한 일들을 조금은 고달프고 귀찮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고 하는 이정석 대표, 안전은 뒷전에 두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작금의 대한민국의 기업가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만하다.
덧붙이는 글 군산매거진 게재, 한국공보뉴스 게재, CBS세바시 강연 추천 송부
#전북 군산 #줄걸이 작업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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