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합의, 졸속 타결
이번에도 배후에 미국 있다"

[인터뷰]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등록 2015.12.30 21:19수정 2015.12.30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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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부수 1천만부를 자랑하는 일본의 최대일간지 요미우리 신문은 29일자 사설에서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정부간) 합의를 진지하게 이행하려고 한다면 먼저 합의에 반대하는 국내 세력을 설득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가 된다"며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가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썼다. 아베 총리는 28일 이후 더 이상의 위안부 관련 언급도 사죄도 않겠다고 했다.

지난 2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정부간 합의 이후, 마치 일본이 피해자인 것처럼 공세를 취하고 있는 양상이다.

왜 이렇게 돼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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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 권우성


국내의 대표적인 한일관계 전문가로 꼽히는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지난 1년 동안 이번 타결 과정이 진행되기 전에 정부 측에서는 피해자들과 불과 세 번 만났다"면서 "이번 한일 장관급 회담을 통해서 해결 방안에 대한 공감대를 만든 뒤 2~3개월간은 피해할머니들, 시민단체들과 소통했어야 한다. 정부가 너무 서둘러서 졸속적으로 해버렸다"고 타결과정을 비판했다.

양 교수는 이번 합의에서 최대 논란거리로 등장하고 있는 '불가역적'(irreversible) 표현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위안부 문제를 거론할 수 없다는 의미라는 점에서, 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의 '최종' '완전' 표현 보다 더 강하다"라며 "주로 이란 핵협상이나 북한 핵폐기 등에 쓰는 이런 표현을 쓴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위안부 타결에 대해 미국이 주목을 끌 정도로 환영의사를 나타내고 있는 데 대해서는 "중국 견제에 있어서 미일협력이나 한미협력과 한미일 3국 협력의 효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미국은 한미일 동맹시스템으로 가져가기를 원해왔다"면서 "한일관계 중요한 포인트에는 모두 그 막후 역할자로 미국이 개입해왔고, 65년 한일협정이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지금 미국의 반응은 위안부뿐 아니라 한일 과거사 문제를 다 정리하고 더 얘기하지 말라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래는 지난 30일 만난 양 교수와의 문답요약.


- 이번 합의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은 에둘러 가버렸다.
"정확히는 합의가 아니다. 양국이 사인한 게 없다. 정부가 밝힌 대로 '공동기자회견 발표문'이다. 법적책임을 인정했다고 하려면, 진상규명·책임자 처벌·개인배상이 돼야 한다. 이번에 '일본 정부 책임'이라고 한 것은 이전의 '도의적 책임'보다는 진전됐지만, 법적책임 수준까지는 못 갔다. 또 위안부들에 대한 강제연행 인정 부분도 중요한데, 이번 발표문에서는 '당시 군 관여'라는 표현으로 애매하게 표현했다. 이미 2007년 3월에 아베 내의 결정으로 강제연행을 공식부인했다."

"'불가역적' 때문에 이번 합의가 65년 한일협정보다 더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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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회 및 제12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집회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라는 조항이 큰 논란이 되고 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도 "(대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확인한다"(2조1항)고 돼 있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하나.
"불가역적(irreversible)이라는 말은 두 번 다시 이 문제를 거론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 강하다. 소급할 수 없다, 더 이상 어떤 것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견고한 것이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의미다. '주로 이란 핵협상이나 북한 핵폐기 등에 쓰는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다. 외교적으로는 final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이번 발표문을 보면,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의 전제는 '일본 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전(前) 위안부 분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 즉 돈에 걸리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으로서는 10억 엔(97억 원)만 주고 털어버리는 것으로 악용할 수 있다.

- 정부는 '돈'뿐만 아니라 '책임 통감', '사죄와 반성' 등 전반적인 부분에 대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 일본이 위안부 등 과거사 관련 망언을 반복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로 우리 정부가 먼저 이 조항을 제안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비판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조항이 어떤 의미인지 한일양국이 똑같은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조항이 없었다면 합의 안 됐을까.
"그랬을 것 같다. 아베 총리가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지시했다는 것 아닌가. 일본은 한국 역대 정부가 계속 입장을 바꿔왔고, 여기에 사법부도 동조하고 있다는 불만이 강하다."

"소녀상 같은 식민지배 피해 상징물, 건드려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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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 권우성


- 이번 합의 과정에서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견은 배제됐다. 협상이라는 점에서 일일이 공유하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었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월 2일 한일정상회담에서 말한 '연내 해결'이 압박요인이 된 게 아닌가.
"그랬던 것 같다. 어떤 내용이든 합의 전에 피해자들과의 소통이 있어야 했다.  지난 27일 한일 국장급 회담에 앞서 11회 국장급 회담이 있었는데, 내가 확인한 바로는 위안부는 여러 주제 중 하나였다. 그러다 27일 국장급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만 다뤘고, 그 다음날 한일 외교장관이 이 문제만을 갖고 만났다.

이번 장관급 회담을 통해서 해결 방안에 대한 공감대를 만든 뒤 2, 3개월간은 피해자, 시민단체들과 소통했어야 한다. 정부가 너무 서둘렀고, 졸속적으로 해버렸다. 지난 1년 동안 이번 타결이 진행되기 전에 정부 측에서는 피해자 단체들과 불과 세번 만났었다.

더 앞으로 가면 위안부 문제가 처음 공론화된 1991년부터 2011년 12월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일본 총리 회담이 사실상 이 문제로 결렬될 때까지 20년간 한국 외교부는 (이 문제를) 방치해왔다. 쟁점화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런 결과가 나와버리니까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나 피해 할머니들도 동의를 할 수가 없는 거다. 처음 듣는 얘기였으니까. 거기다 절대 건드리면 안 될 위안부 소녀상 문제까지 거론해 버렸으니…. 소녀상은 우리에게 독도 같은 식민지배 피해의 상징물이다. 기름에 성냥불을 던진 거다. 피해자가 납득할 만한 수준이 아닌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피해자와 국민이 납득하는 것을 강조했는데, 그에 비하면 굉장히 미흡하게 됐다.

피해 할머니들이 계속 돌아가시는 상황이기 때문에 시급한 것은 맞는데 외교부가 피해자 소통 없이 일을 저지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피해자들 만나러 나서야 한다. "

- 그럼 왜 이렇게 급하게 했을까.
"박 대통령이 연내 해결을 강조하지 않았나. 내년 4월에 총선이 있으니 이 문제는 어떻게 끌고 가든 마이너스가 된다. 아베 총리는 외교에서 상당히 고단수인데, 내년에 한중 공동으로 군위안부 관련 자료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재를 신청하게 된다. 한중 역사 연대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고, 이게 등재가 되면 아베에게 타격이 된다. 또 미국 대선에서 클린턴 전 장관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는 성노예 (sex slave)라는 표현을 쓰는 등 위안부 문제에 강경하기 때문에 아베 총리로서는 빨리 정리하는 게 좋다고 계산한 것 같다."

"한일관계 중요한 포인트마다 미국 개입... 이번에도 마찬가지"

- 이번 합의에 대해 미국은 굉장히 환영하고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만큼이나 중대한 합의"라는 말까지 나오고,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중국 견제에 있어서 미일협력, 한미협력과 한미일 3국 협력의 효과는 완전히 다르다. 미국은 한미일 동맹시스템으로 가져가기를 원한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한일관계 개선을 강조해왔고, 65년 한일협정은 미국의 종용으로 만든 미국의 작품이다. 한일관계 중요한 포인트에는 모두 그 막후 역할자로서 미국이 개입돼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미국 압력이 컸다.

박 대통령도 한일관계 개선하라는 미국 압박에 머리가 아팠을 거다. 미국이 나서지 않으면 이런 합의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일본 내 혐한론에 따른 일본 관광객 120만명 감소 등도 작은 문제는 아니었다. 지금 미국의 반응은 위안부뿐 아니라 한일 과거사 문제 다 정리하고 더 얘기하지 말라는 의미로 봐야 한다. 결국 위안부 문제는 동북아 국제정세의 종속변수다."

- 요미우리신문이 사설에서 "한국은 소녀상 철거로 합의 이행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하는 등 소녀상 철거를 기정사실화하는 보도들이 일본 언론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한일 외교장관에서 합의한 10억엔을 일본이 내기 전에 소녀상을 철거하는 구상에 한국이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는 일본 언론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소녀상 철거를 기정사실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정대협 등 시민단체와 같은 스탠스에 서야 한다. 어차피 발표문에도 '노력'하겠다고 했으니, 구속조항이 아니다. 요미우리 신문은 일본 외무성과 소통이 잘 된다. 일설에는 아베 총리는 산케이 신문만 본다는 얘기도 있다."

- 이번 타결은 합의문 형태가 아니라 공동보도문으로 나왔다. 이번 합의의 구속력을 어느 정도로 봐야 하나.
"최악의 경우 파기될 수 있겠지만, 정부 수준의 약속이라는 점에서 정부에서는 지키기는 해야 한다. 어기면 수습하기 힘든 신뢰 상실 상황이 되지 않겠나. 하지만 국회에서는 계속 위안부 관련 결의안 낼 수 있고, 민간에서 관련 소송은 계속 할 수 있고, 시민단체들은 계속 문제제기하면 된다."
#일본군 위안부 #양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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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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