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서울 구로고등학교 2학년생 이찬진군이 교내에서 선후배와 친구들을 상대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찬진 제공
서울 구로고등학교 2학년생 이찬진(17)군은 3차 거리행동부터 지난 12월 26일 열린 12차 거리행동까지 빠짐없이 거리로 나섰다. 고2면 한창 공부해야 할 때다. 학업에 대한 걱정은 없었을까. 찬진군은 "공부도 중요하지만, 후배들에게 떳떳한 모습으로 졸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라면서 "교육은 정치인이 하는 게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독재자의 딸인데, 누가 보더라도 속이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누군가는 찬진군의 말을 두고 좌편향됐다고 혀를 찰지도 모른다. 찬진군은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다른 대통령이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했다면 역시 거리에 나섰을 것"이라고 말했다.
찬진군은 교내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서명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전교생의 절반가량인 400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그는 "서명운동을 하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잘 모르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국정화에 찬성하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라고 전했다.
서명운동을 하면서 선·후배와 친구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찬진군은 "(경찰에) '잡혀가는 거 아니냐'는 얘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라면서 "겁먹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잡혀가면 2학년 8반 이찬진이 시켜서 했다고 하라고 했다"라고 밝혔다.
경기도 광주시에 사는 고등학교 3학년생 이한수(18)군은 아는 동생에 이끌려 우연히 3차 거리행동에 참여했다가, 이후 12차 거리행동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한수군은 "사실 역사교과서 국정화든 아니든 상관없었다"라면서 "청소년이 이렇게 입장을 내고 거리에 나서는데도, 정부는 듣지는 않고 계속 국정화를 강행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중학교 2학년생 권혁주(14)군은 집 인근 중학교 앞에서 3주가량 1인 시위에 나섰다. 혁주군은 "저랑 같은 입장을 가진 분들이 음료수를 사다줬다, 비가 온 날에는 어떤 형이 비닐 우산을 사와서 건넸다"라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고, (세상이) 바뀔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정교과서가 계속 나와도, '송곳' 같은 학생과 시민이 튀어나와서 국정화 반대 물꼬를 틀 것"이라고 덧붙였다.
4.19혁명도 고등학생의 시위에서 시작됐다

▲ 지난 10월 17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반대 청소년 2차 거리행동에 참여한 초중고생들이 종로구 인사동거리에서 평화행진을 하는 가운데, 한 50대로 보이는 남성이 행사에 불만을 표시하며 갑자기 현수막에 발길질을 하고 있다.
권우성
학생들의 외침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울림을 이끌어냈지만, 이를 비판하는 어른도 적지 않다. 지난 10월 <오마이뉴스> 기자와 인터뷰했던 한 학생은 학교의 우려와 부모님의 반대에 기사화 포기를 요청했고, 또 다른 학생은 기사가 나간 뒤 "부모님이 알게 됐다"라면서 기사 삭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2차 거리행진 때는 5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너희가 역사교과서를 아느냐"고 펼침막을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 혁주군은 "거리행동 때 박수나 격려를 받기보다는 욕을 더 많이 먹었다"라면서 "학생들의 말을 무시하고 '니들이 뭘 알아서 말하냐'고 하는 건 좋지 않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목소리는 무모한 외침일까. <오마이뉴스>는 2008년 올해의 인물로 '촛불 소녀'를 선정했다. 그해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여한 여중·고생들은 당당하게 최고 권력자를 비판했다. 어른들은 여중·고생들 앞에서 부끄러워했다. 이후 수십만 명의 시민이 거리에 나왔다.
제4대 대통령선거를 보름 앞둔 1960년 2월 28일 오후, 대구의 고등학생 1200여 명은 "학원의 정치 도구화 반대" 등을 외치며 교문을 나서 경북도청까지 시위를 벌였다. 학교가 민주당 장면 후보 강연회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일요일인데도 등교 명령을 내린 것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곧 경찰이 출동했고, 200여 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이후 전국의 고등학생들이 공정한 선거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3월 15일 대통령선거일에 마산에서 한 고등학생이 실종됐다. 한 달 뒤 바다에서 이 학생의 시체가 떠올랐다. 마산을 포함해 전국이 들끓었고, 이는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
중·고등학생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겠다고 했다. 또한 다양한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갖겠다고 했다. 혁주군은 "앞으로 국정화가 철회될 때까지 열심히 활동할 것"이라면서 "학생들도 충분히 이 사회에 의견을 낼 수 있는 존재며, 자신의 의견을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는 존재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