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더욱 아름다운 샹젤리제 거리

[프랑스 기행 ③] 파리 샹젤리제 거리(Avenue des Champs Elysees) 기행

등록 2015.12.31 16:19수정 2015.12.3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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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젤리제 거리 개선문에서 내려다보면 콩코르드 광장까지 1.8km의 대로가 한눈에 보인다. ⓒ 노시경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Avenue des Champs Élysées)는 프랑스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고 자부하는 곳이며, 사시사철 파리지앵과 여행자들로 붐비는 곳이다.

이 샹젤리제 거리는 이맘때 쯤인 크리스마스부터 연말까지의 겨울 동안 특히 강한 매력을 발산한다. 온갖 조명이 반짝이는 밤의 샹젤리제 거리는 더욱 아름답고 멋있게 변신한다. 건물을 온통 뒤덮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조명이 아니라 건물 외관의 포인트만 세련되게 조명을 비추는 프랑스식 미적 감각은 여기에서도 발휘된다.


이미 해는 5시 무렵에 일찍 졌다. 나는 밤이 온 샹젤리제 거리에 나가보았다. '샹젤리제'의 '엘리제(Élysées)'는 그리스 신화에서 낙원을 의미하고 '샹(Champs)'은 들판을 의미하므로 샹젤리제는 낙원과 같은 들판을 뜻한다. 나는 낙원과 같은 들판의 화려한 조명 속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도 샹젤리제 거리의 가로수와 건물들은 화려한 조명에 휩싸여 반짝거리고 있었다.

예술품 같은 샹젤리제 거리의 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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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조명 건물. 붉은 조명으로 에워싼 거리의 건물은 마치 하나의 예술품 같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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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람차. 대관람차에 오르면 파리의 야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 노시경


샹젤리제 거리는 내가 출발하는 개선문 방향에서 콩코르드 광장까지 무려 1.8km가 일직선의 대로를 따라 길게 뻗어 있다. 개선문 위에서 내려다보니 시원한 대로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고, 그 끝에는 이곳이 콩코르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이라는 듯이 대관람차가 겨울밤의 화려한 조명을 내뿜고 있다. 콩코르드 광장에서부터 길고 길게 이어지는 거리의 가게들은 형형색색의 조명들로 빛나고 있다. 그 앞의 넓은 인도에는 추위를 피해 샹젤리제의 다양한 가게들을 찾아들어가는 발길들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빨간 조명으로 불타는 것처럼 완전히 포장된 건물이다. 잡다하게 여러 색상의 조명을 사용하지도 않고 붉은색 조명의 농도만 조절해서 건물 자체를 멋진 연말 선물상자로 만들어버렸다. 저 리본을 풀면 안에서 무엇이 나올까 하는 괜한 생각이 들 정도로 이 거리의 건축물들은 예술작품이 되어 있다.

샹젤리제 거리를 걸으면 콩코르드 광장의 거대한 대관람차가 계속 눈에 들어온다. 이 대관람차는 크리스마스와 연말 시즌에만 탈 수 있다. 대관람차를 유심히 보니 어디선가 낯이 익은 세련된 색상이다. 대관람차의 조명 색도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채색되어 있었던 것이다. 파란색과 빨간색은 우리나라 국기의 태극과도 같은 색이니 친근감마저 느껴진다. 푸른색과 붉은색이 조명으로 함께 빛나니 참 잘 어울린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크게 인기를 얻지 못하는 대관람차이지만 유독 유럽에는 이 대관람차가 축제의 현장마다 등장한다. 아주 단순한 놀이기구이지만 들여다볼수록 묘한 축제 분위기를 자아낸다. 파리에서 대관람차를 타고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면 참 운치도 있고 야경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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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젤리제 거리. 도로의 횡단보도 한복판에 멈춰서서 샹젤리제 거리를 정면으로 볼 수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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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리시 드럭스토어 브라세리. 파리지앵들이 모여서 여유있게 저녁식사를 즐기고 있다. ⓒ 노시경


개선문에서 가까운 샹젤리제 거리의 횡단보도는 길을 건너려는 사람보다 대로의 한복판에서 샹젤리제 거리와 개선문의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러니까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더 많은 횡단보도인 것이다. 대로의 중앙선 부근에 서서 얼른 사진을 찍고 이동을 해야지 그렇지 않고 혼자 시간을 끌고 있으면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관광객들의 원성을 듣기 쉽다. 나는 뒤에서 기다리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느끼며 얼른 사진을 찍고 이동했다.

샹젤리제의 거리 끝인 개선문 앞에는 온통 흰 눈이 내리는 것 같이 반짝거리는 건물이 있다. 건물 이름은 퍼블리시 드럭스토어(publicis drugstore). 나는 덩치 큰 경비원에게 가방을 열어 안을 보여준 후 건물로 들어갔다. 이름은 꼭 약국같이 들리지만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심야영업까지 하는 맛집 퍼블리시 드럭스토어 브라세리(Publicis Drugstore Brasserie)가 가게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같은 건물 안에는 마카롱이 유명한 피에르 에르메(Pierre Herme)라는 제과점과 함께 디저트와 빵을 파는 가게도 있다. 이름 있는 마카롱 앞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도 없다. 밖의 날씨가 추우니 거리에 있던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은 모두 이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밖의 파리는 한겨울이지만 이 가게 안은 따뜻한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이번 파리여행에서 느낀 점은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가게들이 과거에 비해 많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퍼블리시 드럭스토어 안에는 식당 뿐만 아니라 각종 유제품, 도시락을 파는 가게와 함께 서점, 슈퍼마켓, 와인 가게, 약국, 시가(Cigar)와 라이터 가게, 텀블러 가게까지 들어서 있다. 놀랍게도 이 가게들은 365일 영업에 심야시간까지 문을 연다.

파리지앵들은 이곳에서 먹을거리도 사고 연말선물도 사고 있다. 퍼블리시 드럭스토어 브라세리에서는 파리지앵들이 서로 지인들과 어울려 와인을 마시고 있다. 파리 테러의 암울한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밝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저녁에 친구들과 어울려 고기와 소주를 나눠 마시듯 이들도 와인과 식사를 하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프랑스는 유럽 내에서도 이렇게 밤늦게까지 지인들과 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가 크게 발달한 나라라는 점을 다시 느끼게 된다.

연말을 맞아 화려하게 빛나는 왕비의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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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젤리제 거리의 인도. 폭이 70m나 돼서 걸어다니는 데에 아주 여유롭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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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기 색의 건물.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붉고 푸른 색상으로 조명을 꾸몄다. ⓒ 노시경


나는 마로니에 나무와 플라타너스가 쭉 늘어선 가로수를 따라 샹젤리제 거리를 더 걸어서 내려갔다. 원래 이 길은 17세기 초 프랑스 왕 앙리 4세(Henri Ⅳ)의 비였던 마리 드 메디시스(Marie de Médicis) 왕비가 센 강을 따라 걷던 '여왕의 산책길'이었다.

지금 같이 보행도로를 크게 확장한 것은 당시 프랑스 최고의 조경설계가였던 앙드레 르 노트르(André Le Notre)였다. 그는 샹젤리제 거리에 로터리도 만들고 현재와 같은 가로수도 심었다. 지금도 사람이 걸어 다니는 인도의 폭이 약 70m나 되니 인파가 아무리 몰려도 지나가는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칠 일이 없다. 한적했던 왕비의 산책로는 연말을 맞아 화려한 조명으로 가로수들과 함께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거리를 계속 내려오다 보니 프랑스 국기의 파란색과 붉은색으로 조명 장식을 한 건물이 눈길을 잡아끈다. 역시 프랑스는 자신들의 국기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고 이러한 국기에 대한 애정을 건축물에도 반영하고 있다.

거리에는 건물 안쪽으로 입구가 깊숙이 들어간 아케이드들도 많고, 아케이드 안에는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가게들도 많이 있다. 나는 40개의 가게가 입점해 있다는 갤러리 드 아케이드(Galerie Des Arcades) 안에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아케이드 앞에는 아케이드 상가를 지키는 보안요원이 입구 정중앙에서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다. 내가 그 친구 앞으로 해서 상가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더니 웬일인지 내 가방을 열어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파리 테러 이후 사람들이 모이는 대형건물에 들어갈 때에는 항상 가방 안을 보여주었는데 말이다. 보안요원들이 손님들 외모를 훑어보고 판단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전혀 테러를 할 것 같이 보이지 않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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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의 커피숍. 추위를 피해 따뜻한 카페오레 한잔을 마셔본다. ⓒ 노시경


나는 한 커피숍에 들어가서 카페오레 한 잔을 마시며 추위를 달랬다. 건물 내부에 난방은 하고 있지만 출입구가 따로 없이 개방된 공간이라서 조금 찬바람이 돈다. 다리가 아플 정도로 걷다가 다리를 펴고 쉬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케이드 내부를 그리스식 대리석으로 만든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 아주 운치가 있다. 이 가게의 머그컵은 프랑스 내에서 인기가 많아서 가게의 진열장에는 초록색과 검정색의 머그컵이 가득 진열되어 있다.

나는 가게를 나와 다시 샹젤리제 거리를 산책했다. 메트로 역이 있는 곳까지 걸어오자 크리스마스부터 이어진 연말 시즌의 프리 마켓이 샹젤리제 거리 양쪽으로 열려 있다. 파리 테러를 극복한 이곳 프리 마켓은 부스마다 축제 분위기이고 깊은 저녁시간에도 가게들 위에는 눈꽃 같은 조명이 길게 빛나고 있다. 어린이들이 이용하는 미끄럼틀과 같은 놀이기구도 많고 야외 스케이트장도 성업 중이다. 오르골 가게, 마카롱 가게, 빵 가게, 수공예품 가게, 기념품 가게 모두 각각 개성 있고 볼거리가 많다. 판자 모양의 초콜릿을 가득 쌓아두고 파는 초콜릿 가게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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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샹젤리제 거리의 프리 마켓. 개성있고 볼거리 많은 가게들이 연이어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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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페 가게의 주인 아저씨. 직원의 실수를 웃어넘기는 유쾌한 아저씨이다. ⓒ 노시경


프리 마켓 곳곳에 있는 소시지 가게, 에스프레소 가게 등 먹거리 가게에는 마치 아시아의 야시장 같은 즐거운 장터 분위기가 있다. 서서 먹는 가게들 앞에서 연말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연말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나는 추위도 피하고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에 크레페(crepe)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이 가게의 어린 여종업원이 계속 실수를 하고 있었다. 솥뚜껑 같은 판 위에 밀가루를 종이장 같이 얇게 펴서 팬케이크 모양을 만들어야 되는데 경험이 없어서인지 계속 모양을 망쳐버린 것이다. 하지만 크레페 가게의 주인 아저씨는 아주 유쾌한 사람이었다. 어린 종업원을 타박하지도 않고 껄껄 웃으면서 자기가 직접 나서서 팬케이크를 만든다.

나는 그 아저씨의 유쾌한 웃음을 보면서 순서를 기다리다가 초콜릿을 바른 크레페 한 개를 주문했다. 크레페 위에 초코를 발라주는데 방금 눈앞에서 만들어진 따뜻한 팬케이크가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 추위 속에 먹는 따뜻한 음식은 더욱 맛을 살아나게 한다.
  
가게 밖으로 나오자 겨울 공기가 많이 차가워졌다. 낮에는 춥지 않았지만 해가 지고 깊은 밤이 되자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나는 근처 메트로 역을 찾아 지하로 내려갔다. 메트로 역에는 서울에는 흔하게 적혀 있는 역 이름이 적혀져 있지 않았다. 내가 가진 지도에도 메트로 역 이름이 나와 있지 않았다. 다행히 이 역의 역무원 아저씨가 타이밍 정확하게 내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 역 이름이 무엇인가요?"
"메트로 1호선 프랭클린 디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역입니다."

그는 내가 들고 있던 지도를 보더니 이 지도 어디에서 났느냐며 지도가 불편하다고 씨익 웃는다. 그러더니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도를 꺼내더니 같이 보자고 한다. 그는 나에게 어디까지 갈거냐고 묻는다.

"몽파르나스(Montparnasse) 역까지 갈 건데요. 1호선을 타고 가다가 갈아타야겠지요?"
"그럼 샤틀레(Châtelet) 역에서 4호선 포르트 도를레앙(Porte d' Oreleans) 방면으로 갈아타서 몽파르나스 비엥브뉘에(Montparnasse Bienvenue)역에서 내리세요. 다행히 이 바로 앞이 그쪽 방향으로 가는 개찰구니까 여기서 개찰구를 통과해서 우회전 하면 승강장이 나옵니다. 좋은 여행하시길..."

지난 파리 여행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친절하고 여유있는 파리 사람들을 이번 여행에서는 정말 많이 만났다. 나는 이 친절한 사람들을 보면서, 끔찍한 테러를 경험한 파리지앵들이 그 고통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비해 조금 작은 파리의 지하철은 프랑스 역사가 품었던 수많은 인종의 사람들이 가득 태운 채 겨울 밤의 시간 속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00 편이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 #파리여행 #샹젤리제 #메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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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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