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순구미' 온금동의 골목길 풍경. 집앞에 빨래를 널어놓은 풍경이 눈길을 끈다. 꾀죄죄하면서도 왠지 정겨워 보인다.
이돈삼
고샅길이 안방과 부엌, 화장실 옆을 지나기도 한다. 벽은 헤지고, 슬레이트 지붕도 푸석거려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그 골목에 빨래가 걸려 있다. '조금새끼'들의 체취가 배어있다. 코흘리개 아이들이 금방이라도 뛰어나올 것만 같다.
코딱지만 한 텃밭에는 푸성귀가 무성하다. 몸 붙이고 살 비비며 살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려준다. 낡고 추레하지만 정겨운 풍경이다.
길에서 공동 시암(우물)을 만난다. 큰시암과 작은시암이 있다. 큰시암 옆에는 '김영수시은불망비'와 '정인호시혜불망비'가 세워져 있다. 정인호는 물이 부족하던 1920년대에 마을사람들을 위해 돈을 내서 샘을 팠다. 우물정(井)자 모양을 하고 있다. 김영수는 사람들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데 앞장섰다. 두 사람의 공을 잊지 않겠다고 마을사람들이 세웠다.
째보선창도 있었다. 주민들이 지게로 돌과 흙을 날라 만든 부두다. 배를 매어놓기 좋게 삼면을 막고, 한쪽 면만 열어놓은 ㄷ자 모양이었다. 그 모습이 구순구개열 같다고 해서 째보선창이 됐다. 1981년 광주와 목포에서 함께 열린 소년체전을 앞두고 도로를 단장하고 넓히면서 없어졌다.

▲ 다순구미 마을의 큰 시암. 물이 부족하던 1920년대, 정인호라는 사람이 돈을 내서 판 공동 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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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포의 온금동과 서산동을 가로지르는 아리랑고개. 오래 전에는 험한 고개였지만, 지금은 넓어지고 포장도 이뤄져 쉽게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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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순구미의 올뫼나루길에서 아리랑고개를 넘어 서산동 시화 골목길로 간다. 옛날엔 길이 가파르고 좁아 넘기 힘든 고개였다. 8년 전 뚫리고 넓혀진 도로 덕분에 지금은 가뿐하다. 도로변에 줄지어 선 먼나무의 진녹색 이파리와 빨간 열매가 아름답다.
'(앞부분 생략)…망망대해 나가면/ 움푹하고 볼록한 삶속에서/ 울다가 웃다가// 다시 산기슭에 서 보면/ 그래도 그립고 정겨웠던 곳/ 갯바람으로 절인 비좁은/ 온금동 골목길/ 그 달동네가 그리울 게다' 강해자의 시 '온금동 연가'의 뒷부분이다.
'보고 싶다는 말/ 가고 싶다는 말/ 그곳은 사람이다// 결국은 닿고 싶은 따뜻한 가슴이다' 김혜경의 시 '다순구미 연가'다. 보리마당을 지나 남루한 골목에서 만난 시가 아련하다.

▲ 시화가 걸려있는 목포 서산동의 골목길. 온금동과 함께 '조금새끼'들이 많이 살았던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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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길 계단이 급경사를 이루는 목포 서산동 풍경. 길을 따라 시화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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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가파르다. 오르내리는 계단도 아슬아슬하다. 목포가 개항되기 이전의 모습 같다. 그 길에 집집마다 화분 몇 개씩 내놓았다. 꽃과 남새를 심은 화분으로 고샅을 단장한 그 마음이 애틋하다.
곰삭은 다순구미 사람들의 애환도 절절하게 다가온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 오래 묵은 노래도 입안에서 내내 맴돈다.

▲ 목포 서산동의 골목길 풍경. 험한 계단을 따라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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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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