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3억 '독립축하금'과 박근혜의 10억 기부금

[주장] 1965년 한일협정과 2015 위안부 협상, 묘하게 닮았다

등록 2015.12.31 16:34수정 2015.12.3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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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월 30일 오후(현지시간) 파리 르부르제 공항 컨벤션 센터 넬슨만델라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 청정에너지 혁신 미션 출범식에서 기념촬영을 기다리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일본 위안부 합의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일본이야 씻지 못할 범죄의 족쇄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겠지만, 거기에 '최종' '불가역'이라는 문구까지 넣어서 위안부 문제에서 재론의 기회마저 막아 버리는 박근혜 정부의 일방적인 합의와 발표는 도저히 이해 불가다.

'불가역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몰랐다면 무능한 외교 협상력을 드러내는 것이고, 알고도 아무런 문제제기조차 없었다면 합의의 저의를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합의 발표 후 대통령은 대승적 견지의 합의를 강조하면서 피해자와 국민들의 이해를 요구했다. 그러나 대승적 결단은 피해자의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 국민 대다수가 졸속이라며 분노하는 합의를 수용하라는 것. 국가 권력이 국민에게 가하는 또 다른 폭력이다.

3억엔 독립축하금을 받는 박정희. 10억엔 기부금을 받는 박근혜

합의 내용이 알려지자 1965년 한일협상과 똑같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고 보면, 비밀협상·일방추진과 졸속합의에 이르는 과정은 50년 시간이 무색하리만치 묘하게 닮았다. 1965년 한일협정 과정에서 일본의 입장을 대변한 인물은 일본 총리를 지낸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였다. 쿠테타의 주역 박정희. 일본의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 둘의 야욕과 의기투합이 굴욕적 한일협정을 낳은 것이다.

야당과 국민 대다수의 반대에도 박정희 정권은 계엄령을 발동하면서 한일협정을 조인하였다. 청구권을 포기하고 3억엔의 돈을 '독립축하금' 명복으로 받았다. 훗날 알려진 사실이지만 박정희는 1961년부터 5년 동안 일본 6개 기업에서 6600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축적한 일도 있었다. 식민 지배와 청구권 포기의 댓가 3억엔. 일본에게 면죄부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위안부 등 피해자의 청구권과 배상 요구는 번번이 묵살되었다.

알려진 합일협정 뒤에는 독도를 둘러싼 밀약도 있었다. 일본통 경제학자 노다니엘의 '독도밀약'에 따르면 독도에 대해 서로가 영유권을 주장을 용인하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비밀협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쿠데타의 따가운 민심을 무마하고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박정희. 전범 국가 이미지를 벗고 한국 시장의 진출을 노렸던 기시 노부스케. 그 교착점이 한일협정이고 독도밀약이었던 셈이다.

50년이 지난 지금 쿠테타와 유신 철권 통치를 했던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A급 전범이었던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 아베 신조가 총리에 올랐다. 그리고 수교 50년 양국은 위안부 문제를 다시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그러나 결과는 50년 전 한일협정으로 봉인된 청구권과 배상문제를 재봉인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1965년 아버지와 외조부의 음모에 찬 봉인을, 50년 후 딸과 외손자는 또다시 '최종', '불가역적'이라는 부적을 붙여 영원 속에 묻었다. 반복된 역사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버지의 과오가 딸의 허물이 될 수는 없다. 박정희 정권의 친일 매국 한일협정의 비난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아버지의 과오를 알고도, 바로잡지 않고 덮으려 는 행위는 명백히 잘못이다. 대통령의 잘못이 필부와 같을 수는 없다. 청구권과 배상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눈높이를 무시한 채, 정권 일방의 결정으로 한일관계의 구원((舊怨)에 종지부를 찍는 정책 결정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50년 전, 매국적인 한일협상을 맺었던 박정희 정권보다 났다고 할 수 없다.

청와대는 31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와 관련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사실과 다른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다며 소녀상 이전 합의설을 유언비어로 규정했다. 그러나 소녀상 이전에 대한 의심의 진원지는 정부였다. '일본정부가 한국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을 우려하는 점을 인지하고 관련단체와의 협의하에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라며 명문화하고 발표까지 한 마당에, 국민들의 합리적인 의심을 유언비어로 모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또 일본의 수많은 언론에서 소녀상 이전과 10억엔 지원을 연계했다는 소식이 쏟아지고 있는데, 왜 유언비어라고 항의하고 바로 잡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총성 없는 전쟁터와 같은 외교 현장에서 우리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임해왔다며 정부는 위안부 협상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1965년 한일협정 조인 후 자유세계의 대의와 아세아 반공태세의 정비를 위하여 만난을 물리치고 이를 받아들인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담화문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국익과 세계의 대의(?) 언어의 성찬일 뿐이다. 국민들이 가지는 굴욕감은 50년 전보다 덜하다고 말할 수 없다.

'국익을 지키기 위해' 굴욕감을 무마하기 위한 말의 성찬일 뿐

"잘 부탁드립니다. 저에게는 젊다는 것 이외에는 별 자산이 없습니다. 미숙한 소생을 잘 지도해 주십시오"

한일협상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박정희는 일본의 실권자 기시 노부스케 앞에서 다다미 위에 양손을 짚고 절하며 했던 말이라고 '독도밀약'의 저자 노다니엘은 전한다. '일본이 한일문제에 대해 마음으로 성의를 보인다면 우리는 자유당 정권처럼 청구권 자금을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 배상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당시 일본의 이케다 총리와 나눈 대화로 '독도밀약'에 기록된 내용이다.

'독도밀약'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굴욕감에 책을 덮었다. 위안부 협상 후 느끼는 감정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잘못되었으면 돌려야 한다. 개 꼬리 삼 년 두어도 황모 못 된다는 속담이 있다. 과거에 대한 반성 없는 일본의 잘못을 덮고 한일관계가 발전할 수는 없는 일이다. 50년 전 한일협정은 치욕이었다. 그러나 그 과오는 박정희 대통령의 몫일 뿐 박근혜 대통령이 나눠 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2015년 위안부 협상의 과오는 오롯이 박근혜 대통령의 몫이다.
#위안부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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