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판해도 돈 준다, 일본 사회의 저력

['좌충우돌' 사회적경제 20] 일본 교토 '교토시민활동 종합센터'에 다녀오다

등록 2016.01.09 20:09수정 2016.01.0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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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세가와와 청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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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시민활동종합센터 전경 약칭 교토NPO센터라고도 불린다 ⓒ 교토시민활동종합센터


일본연수 이틀째.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우리가 향한 곳은 교토시 동쪽에 있는 교토 시민활동종합센터(아래 교토NPO센터)였다. 일본 전역의 5만 개가 넘는 NPO(민간 비영리 단체, Non-Profit Organization의 약자) 중 1300여 개가 교토에 있다. 교토NPO센터는 이들 교토의 NPO들을 지원하고 교토시민들과 NPO를 연결하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하나의 중간지원조직이라고 했다.

교토NPO센터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건물 옆으로 펼쳐진 넓은 공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은 과거 소학교 운동장으로 교토NPO센터도 1990년대 이후 10년 동안 폐교된 학교를 이용하는 사례라고 했다. 교토NPO센터는 교토아트센터와 마찬가지로 시민들과 교토시가 폐교의 활용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한 결과물이다. 그것만으로도 시민들이 교토NPO센터에 얼마나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탓에 센터에 들어가지 않고 천천히 그 주위를 둘러보는데 건물 뒤편으로 흐르는 개천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시골 학교 뒤에 흐르는 시냇물이라고 보기에는 그 규모가 작지 않았고, 수로를 이루는 돌들이나 그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들이 결코 범상치 않아 보였다. 뭐지? 이 고전적인 느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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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세가와 후네마와시바 터 이곳은 다카세가와 운하에서 배를 돌리는 장소였다고 한다 ⓒ 이희동


수수께끼는 개천 변에 서 있는 안내판을 보고 풀렸다. 그곳에는 일본어와 중국어, 한국어로 개천에 대한 설명이 새겨져 있었다. 내용인즉 바로 이 수로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1614년에 개통하여 1920년대까지 사용되었던 다카세가와 운하라고 했다. 어쩐지 개천이 곧게 뻗어있고 그 바닥이 너무 고르더라니.

스마트폰을 뒤적여보니 어디서 봄 직한, 다카세가와 운하를 배경으로 한 벚꽃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벚꽃이 피는 봄, 작은 배를 타고 이 운하를 통과하며 술 한잔 하는 것이 교토 관광의 코스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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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다카세가와 운하 300년 넘은 운하의 현재 모습 ⓒ 이희동


그 운하를 보고 있자니 서울의 청계천이 떠올랐다. 왜 우리는 이런 풍경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걸까? 물론 건천의 한계도 있었을 테지만, 무엇보다 가장 다른 건 전통을 대하는 자세일 것이다.


조선 초기에 만들어져 600년 넘게 이어져 온 청계천을 근대화의 이름으로 아무렇지 않게 콘크리트로 덮어버리고, 또 정치적 필요에 의해 제대로 된 조사 없이 마구잡이로 개발하는 우리의 감수성. 과연 이런 우리가 역사와 전통을 논하면서 일본과 경쟁할 수 있을까? 우리는 늘 일본을 이야기하며 역사적 우월감을 주장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열등감에서 비롯된 방어기제인지도 모른다.

일본NPO법과 교토NPO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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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시민활동종합센터의 간판 결국 일본과 중국, 한국이다 ⓒ 이희동

약속 시각이 되어 교토NPO센터에 들어서니 센터장이 직접 나와서 센터에 대해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몸담은 교토NPO센터에 대해 자부심이 커 보였는데, 처음 사회에 나와 신문기자로 활동하면서 보게 된 각계각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민활동과 시민활동에 대한 지원이 필요함을 확신한다고 했다.

그는 교토NPO센터가 설립되었던 배경에 관해 설명했다. 일본의 시민사회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1960~1970년대 전공투 등장과 함께 노동운동이나 학생운동을 지원하는 등 강한 정치성을 띠었다. 당시는 일본의 호황기로 경제가 급격한 성장을 이뤘는데 시민사회는 그런 성장에 걸맞은 분배에 집중했다.

이후 1980년대 사회가 안정기에 접어들고 분배가 어느 정도 이뤄지면서 일본 시민사회의 관심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국가의 영역으로만 치부해왔던 복지나 환경 등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다. 시민사회는 해당 분야에서 국가 영향력의 한계를 인지해서 '사회운동'이 아닌 '사회활동'에 더 큰 방점을 찍기 시작했다. 지금과 같은 시민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당시 일본 시민활동은 정치색이 옅어진 대신 복지, 환경, 여성, 지역 등 삶의 질과 관련된 요소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시민활동이 결정적으로 일본 사회에 두각을 나타낸 것은 6500명이 사망한 1995년 고베 대지진(정식 명칭은 한신-아와이 대지진) 때였다. 당시 피해 복구를 위해 전국적으로 약 130만 명 규모의 엄청난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었는데, 정부는 이를 계기로 NPO법을 만들게 되었다. 관련법을 만들어 NPO단체들이 시민활동을 좀 더 체계적이고 쉽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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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장의 센터 소개 자부심이 대단한 교토시민활동종합센터 센터장 ⓒ 류양선


교토NPO센터는 바로 그와 같은 NPO법에 의거하여 2003년 탄생했다. 교토NPO센터는 시민활동을 종합적으로 지원해주는 주민 주도의 플랫폼이다. 교토NPO센터가 일반 주민들에게 NPO 시민활동에 관한 상담 및 교육을 하고 NPO들 간의 교류 및 협동협 사업을 지원해준다고 했다.

센터장은 교토NPO센터가 관여하는 보건의료복지, 사회교육, 문화예술, 재해구호, 인권평화, 경제 활성화, 소비자 보호 등 17개 분야를 설명해 주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교토NPO센터가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일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교토NPO센터는 행정의 당당한 파트너로서 시민을 대표해서 그 지역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특히 센터장은 NPO센터가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중 와이파이 제공과 공간 및 사무기기 대여 두 가지를 콕 찝어 강조했다. 얼핏 생각하면 별것 아닌 것 같았지만 돌이켜 보면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니는 듯했다. 그것은 센터가 공급자가 아니라 수요자의 관점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뜻이었다. 또한 센터가 관제화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교토NPO센터는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조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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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곳곳의 락커들 교토의 NPO들이 짐을 보관하는 곳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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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시민활동종합센터의 오전 열린 공간, 열린 회의실 ⓒ 류양선


센터에 관한 소개를 모두 듣고 건물을 돌아다니며 현장을 직접 살폈다. 센터장의 말대로 사무실 곳곳에는 각 NPO들의 이름이 적힌 락커가 놓여 있었으며, 오픈된 회의실에서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 몇 분들이 모여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떤 조직을 꾸리면 그들만의 공간이 있어야 하는 우리네와 달리, 수많은 조직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일본 사회에 신뢰가 무너지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인 듯 보였다.

정부 비판하는 시민단체도 지원하는 일본

우리는 으레 일본사회가 우경화되었다고 말한다. 뉴스를 보면 보수정당인 자민당이 장기집권을 하고, 극우파들이 아직 엄연하게 활동하며, 정부가 나서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역사를 계속 왜곡하려 드니 당연히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아베 총리가 평화헌법까지 손을 보려 하고, 말도 안 되는 위안부 합의마저 이끌어내지 않았던가.

직접 일본에 와서 느낀 건 뉴스로 보는 일본과 그곳에서 생활하는 일본인이 꼭 같지만은 않다는 점이었다. 비록 일본 사회가 군국주의를 경험하고 자민당이 오랫동안 정권을 잡고 있지만 일본에는 국가와 다른 층위로서의 시민사회가 분명 존재했다. 각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NPO센터들이 바로 그 증거였다. 개인으로서 시민활동을 하는 일본인들은 현재 일본 정부가 보여주는 모습과 전혀 달랐다.

그렇다면 우경화된 일본 정부가 시민사회를 그냥 놔둘까? 이에 대한 센터장의 대답은 의외였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과 다른 관점을 보이는 NPO 역시 하나의 NPO로 지원을 한다"고 했다. 예컨대 최근 정부와 반대되는 입장을 보이는 원전 반대 NPO 역시 지원한다는 것이다.

비록 정당 정치인의 NPO 지원은 금지되어 있지만, 시민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는 국가도 인정하고 정부가 유불리와 상관없이 NPO를 지원한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일본의 NPO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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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시민활동종합센터의 화려환 외관 예전 학교라고 상상하기 힘든 모습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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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시민활동종합센터 안내판 이 건물에는 시민활동종합센터, 복지자원봉사자센터, 장수건강센터, 마을경관만들기센터가 함께 있다 ⓒ 류양선


부러웠다. 비판적인 시민단체는 압박하고 '어버이연합' 등의 관변조직은 방관하는 우리 정부를 떠올리니 아직도 우리가 일본에 한참 뒤처져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라면 다양한 스펙트럼의 시민단체를 모두 용인하면서,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극우나 극좌 같은 극단적인 세력들을 걸러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분단이라는 한계에 극우 시민단체가 보수인 양 기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가. 도대체 우리는 언제쯤 이 한계를 극복하고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펼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현재 보이는 일본의 시민사회 모습이 마냥 부러운 것만도 아니었다. 1980년대 이후 그들이 미시적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는 대신 거시적 역할을 줄여온 결과, 그들은 현재 급속도로 우경화되는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일본의 시민사회가 1960, 1970년대 가졌던 정치성을 잃지 않고 국가를 감시해 왔다면 일본 정부가 지금처럼 쉽사리 평화헌법을 수정하려 들고, 원전사고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고집하려 할까?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일본의 풀뿌리 민주주의는 부러움의 대상일지 모르지만, 중앙정치와 분리된 모습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아닌 듯했다. 특히 우리처럼 중앙집권적인 국가에서 시민사회마저 탈정치화된다면 그것은 지금보다 더 빨리 사회가 극우화되는 길일 것이다.

요컨대 교토NPO센터에서 마주친 일본 시민사회 모습은 우리의 미래이자 또한 우리가 극복할 모습이었다. 오늘날 많은 시민단체와 중간지원조직이 사회적 경제와 마을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해 탈정치를 고민하지만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그것이 꼭 옳은 것만은 아니다.

물론 초기 정착을 위해서는 모든 정치적 세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겠지만 맹목적인 정치적 중립이나 탈정치는 궁극적으로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는 탈정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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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시민활동종합센터 앞에서 연수단 많은 걸 보고 듣고 배운 뒤 ⓒ 류양선


교토NPO센터를 나와 다음 목적지인 고베 미즈호 협동농원을 향했다. 고작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교토시의 모습을 더는 못 본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컸다.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그리고 연수만 아니었더라면 좀 더 돌아다니며 교토의 속살을 느꼈을 텐데. 아듀! 교토. 나중에 시간이 허락된다면 다시 만나기를.
#일본연수 #교토시민활동종합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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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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