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띄어쓰기 전의 한글표기(좌)와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한글 띄어쓰기를 처음 사용한 문헌인 존 로스의 'Corean Primer'(조선어 첫걸음)(중) 그리고 띄어쓰기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독립신문>(우)
유영호
그런데 뜻밖에도 우리 한글의 띄어쓰기를 처음으로 사용한 문헌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1877년 영국인 목사 존 로스가 쓴 'Corean Primer'(조선어 첫걸음)이다. 그후 이러한 띄어쓰기를 본격화하며 대중화시킨 것은 주시경이 교정을 본 <독립신문>이고, 1933년 조선어학회는 띄어쓰기를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반영하였다.
지금 이곳에는 비록 그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그 어떠한 흔적도 없지만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이있게 한 그의 공로를 생각하며 그가 이곳에서 살며 한글을 연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한편 우리는 한글이 얼마나 뛰어난 언어임은 익히 잘 알고 있다. 언어연구학으로 세계 최고인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언어학대학에서 세계 모든 문자 가운데 1위로 뽑은 것이 한글이다.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에서도 최고의 문자라는 평가를 하였다. 더욱이 유네스코는 문맹 퇴치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이나 단체에 1989년부터 매년 '세종대왕상'을 수여한다. 그만큼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은 배우기 쉽고 과학적인 글자임을 세계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다. 그리고 세계 유명인사들이 한글에 대하여 남긴 다음 말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글자이며 가장 훌륭한 글자." (소설가 펄벅)"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 (영국 언어학자 제프리심슨)"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 (영국학자 존맨)하지만 이러한 칭찬은 우리 현실 속에서 1년 365일 가운데 딱 하루, 한글날(10월9일)뿐이다. 한글은 여전히 천대받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하다 못해 상품명에서조차 한글로 쓰면 값싸고 촌스러운 것으로, 외래어로 쓰면 비싸고 품위있는 것으로 변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고, 사고는 인간 삶을 지배한다' 따라서 언어는 인간의 모든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다음과 같은 주시경 선생의 말을 되새겨야 할 듯싶다.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려지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도 다스려지나니라." - <보중(보성중학) 친목 회보> 제1호(1910.6.10)한 번쯤 걸어볼 만한 '한글가온길'

▲ 한글가온길, 2012년 이름을 얻은 길로 도로변 곳곳에 한글관련 조형물들이 조성되어 있다.
유영호
'가온'은 '가운데', '중심'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정부는 2012년 한글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높아지는데 따라 위 사진 속의 약 1.8km의 길을 일명 '한글가온길'이라는 문화공간으로 조성하였다. 이 길에 주시경 집터, 세종대왕동상, 한글학회 등 한글과 관련된 것들이 많기 때문에 이곳을 선택한 것이다.
한편 한글가온길 구간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이 한글가온길 북쪽으로 조선시대 한성부 북부 준수방에 속했던 통인동 137번지 일대(통인시장 남쪽이며, 참여연대 동쪽 지역)가 세종대왕 탄신지이다. 또 그 동쪽의 경복궁 안에는 한글 반포에 크게 기여한 '집현전'으로 쓰였던 '수정전'이 있다. 뿐만 아니라 한글가온길 남쪽으로 중구 정동의 현 서울시립미술관 옆에는 순한글로 신문을 발행함으로써 한글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독립신문사 터(현 신아빌딩)가 위치해 있다.
이처럼 이 길 주변에는 한글과 관련된 역사가 오롯이 담겨있는 곳이다. 한 번쯤 우리 한글을 생각하며 걸어볼 만한 길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 한글창제의 주역은 집현전이 아니다 |
한글 창제는 과연 누가한 것일까? 세종대왕인가 집현전 학자들인가? 세종실록에는 세종대왕이 친히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上親制諺文二十八字…是謂訓民正音", <세종실록> 25년 12월.
실록에 세종대왕의 다른 업적에 대해서는 '임금이 직접 만들었다는 뜻'의 '상친제(上親制)'라는 표현이 없지만 훈민정음에 대해서 만큼은 이처럼 분명히 '상친제'라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로써 중국의 한자를 거부하고 새로운 문자를 만든다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었기에 공개적으로 할 수 없었다. 세종대왕 자신과 최측근 만의 비밀사업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집현전은 '창제'에 공을 세운 것이 아니라 '편찬'에 공을 세운 것이다.
한편 후대학자들은 이것에 대하여 성현이나 주시경은 집현전의 도움으로 창제했다고 하며, 이기문은 세종대왕이 동국정운 같은 책을 펴낸 것으로 보아 이미 음운학과 언어학에 깊은 조예가 있었다며 세종대왕 창제론을 지지한다. 즉 집현전 학자들은 한글 창제 후 정음청에서 한글을 사용한 편찬사업에만 관여했다는 것이다. 한글창제에 반대했던 대표적 인물은 최만리이다. 그런데 그는 다름 아닌 집현전 부제학이었으며 그와 함께 반대상소를 올린 신석조, 김문, 정창손 등 7명 모두가 당시 집현전 최고위치에 있던 원로학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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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2015), 『서촌을 걷는다』(2018) 등 서울역사에 관한 저술 및 서울관련 기사들을 《한겨레신문》에 약 2년간 연재하였다. 한편 남북의 자유왕래를 꿈꾸며 서울 뿐만 아니라 평양에 관하여서도 연구 중이다.
안녕하세요. 시민저널리즘부 박정훈 기자입니다.
sometimes8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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