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만화 <장도리> 20년간 최다 출연 인물은..."

[인터뷰] <헬조선에 장도리를 던져라> 펴낸 시사만화가 박순찬 화백

등록 2016.01.06 21:51수정 2016.01.0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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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도서 웹진 <북DB>는 <헬조선에 장도리를 던져라>를 펴낸 시사만화가 박순찬 화백과 지난달 18일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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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리' 박순찬 화백 ⓒ 신동석


"이집트 벽화 같은 옛날 그림은 신권이나 왕권을 지키기 위한 거였잖아요. 아마 그것에 반대하는 그림도 있었겠지만 불타거나 없어졌겠죠. 그때 권력을 동원해서 견고하게 그린 그림들만 지금 남아 있죠. 이후에 인쇄술이 보급되면서, 권력의 포장과 허울을 벗기고 실체를 보여주겠다고 나온 게 만화예요. 그게 만화의 기본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신문만화는 만화의 원시적인 미덕과 속성을 가장 잘 가지고 있는 거죠."


경향신문 시사만화 <장도리>를 그리고 있는 박순찬 화백의 말이다. 촌철살인의 풍자로 국민들의 마음을 뻥 뚫어주는 게 시사만화의 매력. 박순찬 화백은 풍자야말로 시사만화뿐만 아니라 만화 자체의 기본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그리는 장도리는 2015년 20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 지난 12월 '장도리의 대한민국 현재사 2014~15' <헬조선에 장도리를 던져라>가 출간됐다.

'장도리 선집' 시리즈는 이번이 다섯 번째다. 2009년 <삽질공화국에 장도리를 날려라>를 펴낸 뒤 2012년 <나는 99%다>, 2013년 <516공화국>, 2014년 <세월의 기억>을 펴냈다. <헬조선에 장도리를 던져라>에는 지옥 같은 현실 속에 국민들을 방치한 채 그들만의 관심사인 국정교과서 제작에 열 올리는 정권과 스스로 권력집단이 되어 법과 언론마저 무력화시키는 재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통쾌한 풍자가 네 컷의 만화로 담겨 있다.

박순찬 화백은 1995년 경향신문에 시사만화가로 입사한 뒤 지금까지 장도리를 그려오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장도리에 가장 많이 등장한 캐릭터는 누구일까? 주인공 장도리도, 대통령 누구도 아니다. 정답은 바로 '익명의 이웃'.

늘 힘센 자들한테 당하고 고생하는 역할로 등장하는 익명의 '아저씨' 캐릭터란다. 이 답변을 통해 그가 20년 동안 해온 작업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우리 주변의 이름 없는 서민들, 권력에 짓눌리고 돈에 치이는 '착한' 이웃들을 그려온 것이다.

2016년 말 전시회를 계획 중인 박순찬 화백. 그동안 출간된 선집들의 표지 그림을 비롯해, 짬짬이 작업해둔 그림들을 전시할 계획이란다. 앞으로 더 부지런히, 어떤 그림이든 많이 그리게 되는 것이 바람이라고 소박하게 말하는 그와 함께, 장도리의 지난 20년과 시사만화의 오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대학에서 천문기상학과 건축공학을 전공했다고 들었습니다. 전공과 한참 멀어 보이는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만화는 어렸을 때부터 많이 그렸고, 생활이다시피 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쯤 만화를 그려서 조그맣게 책으로 만들어 친구들한테 보여주기도 했어요. 꼭 만화가가 되겠다는 건 아니고 계속 만화를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되더라도 만화는 계속 그려야 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대학을 막 졸업하려는 당시에 마침 경향신문에서 시사만화가를 공모한 거예요. 저는 원래 시사만화 쪽에 큰 관심은 없었어요. 왜냐하면 처음부터 신문의 시사만화가 자리를 원하기는 참 힘들어요. 신문에 만화라고 해봐야 아예 없을 수도 있고 있어야 하나둘인데, 그 일을 하고 싶다고 해도 자리가 잘 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마침 경향신문에서 자리가 났고 공모에 합격하는 바람에 시사만화가로 데뷔한 거죠. 지금까지 직업적으로 만화를 그리고 있는 것을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 똑같은 언론사 시험이라도 기자를 뽑는 것과 시사만화가를 뽑는 것은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왠지 상식시험이나 논술시험 같은 것을 보고 그랬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예전에 신문에 시사만화를 그리던 대선배님들, '왈순 아지매'(정운경 화백)나 '고바우 영감'(김성환 화백) 같은 분들은 기존에 만화 활동을 하시다가 신문사와 계약을 해서 연재를 하신 거예요. 그게 일반적인 방식이었죠.

그런 분들이 오래 하시다 보니까 신문사 직원 같은 개념이 생긴 거예요. 그래서 이후에 몇 번 신문사에서 시사만화가 공개채용을 한 적이 있어요. 기자들 작문 시험 치듯이, 시사만화가 지원자들도 모아놓고 어떤 주제에 맞는 만화를 그려보라고 했어요. 굉장히 독특한 경우예요.

그때 한 200명인가 왔어요. 예전에는 시사만화에서 대통령을 그려도 뒷모습밖에 못 그렸는데,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언론 자유가 확대되면서 대통령 얼굴도 마음대로 그릴 수 있는 시대가 됐거든요. 그래서 박재동 화백, 김상택 화백 등 시사만화가들의 인기가 많이 오르고 주목도 많이 받던 시절이었어요. '나도 신문만화를 그리고 싶다'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있었습니다. 저도 그때 시작한 거죠."

- 이번 책 제목이 <헬조선에 장도리를 던져라>입니다. 이렇게 보니 장도리라는 이름이 꽤 세(!) 보이기도 하네요. 맨 처음에 왜 만화 제목을 '장도리'로 정하셨나요?
"(책 제목을) 좀 튀게 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안 팔려요.(웃음) 경향신문 입사하고 연재 시작까지 준비 기간이 한 달 정도 됐어요. 급하게 제목을 정한 거죠. 다른 신문만화 제목이 '고바우 영감', '왈순 아지매' 하는 식으로 친근한 사람 이름들이었어요. 발음도 쉽고 친근한 사람 이름처럼 느껴질 수 있는 제목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죠. 아무래도 제가 관심 있는 단어들을 쓰게 될 것 아닙니까? 제가 뭘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장도리라는 단어가 떠오르길래 그냥 그렇게 지은 거예요. 특별히 의미를 둔 건 아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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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리' 박순찬 화백 ⓒ 신동석


'갓도리'라는 별명... "힘든 청년층 이야기에 고마움 표현한 것"

- 그냥 직장생활을 한다고 해도 20년이나 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더군다나 매일 마감을 해야 하는 신문 시사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더 힘든 일 같은데, 비결은 뭘까요? "독자들의 사랑과 관심 덕분입니다" 같은 식상한 대답은 원치 않습니다.(웃음)
"근본적인 원인은 월급을 준다는 거죠.(웃음) 만화를 그려서 먹고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만화를 그리면서 월급도 받는다는 것. 재미없게 그려도 어쨌든 월급은 나오니까요.(웃음) 만약에 저 혼자 알아서 20년 동안 연재하라고 했으면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매일 신문은 나가야 되는 거거든요. 어쨌든 제가 맡은 지면을 채워야 하니까, 그런 의무 때문에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시작할 때는 부담이 많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사회 경험도 별로 없고 공부도 별로 안 하고 아는 것도 없었거든요. 지금이야 인터넷을 많이 하지만 그때는 정보가 대부분 신문 중심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자리인데, 제가 그 지면을 맡아서 한다는 게 부담스럽고 많이 힘들었죠. 신문사 공채에 지원할 당시에는 그 책임감에 대해 깊이 생각을 못했어요. 뒤늦게 깨달은 거죠."

- 처음에는 신문만화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고 시작했다 하셨는데, '아 이런 게 신문만화구나!'라고 나름대로 깨닫게 된 순간이 있었습니까?
"그런 생각은 가끔씩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나중에 지나고 보면 그게 또 아니더라고요. 새로운 생각이 들고 계속 바뀌는 거죠. 제가 시작할 때만 해도 인터넷 문화가 없었거든요. 그때나 지금이나 네 컷으로 전달하는 것은 똑같지만 내용이나 접근방식은 많이 달라졌다고 봐요. 독자들이 요구하는 것도 바뀌었고요. 형식은 같지만 내용이나 표현은 계속 바뀌는 거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예상하고 있어요."

- 20년 동안 장도리에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했습니다. 정확하게 집계를 할 수는 없겠지만, 화백님 기억에 제일 많이 등장한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서민 역할로 나오는 캐릭터가 하나 있어요. 익명의 이웃, 아저씨인데 항상 고생을 많이 하는 역할로 나와요. 일종의 엑스트라죠. 대통령이야 임기가 5년이니까 임기 끝나면 출연 빈도가 많이 떨어지는데, 익명의 아저씨는 20년째 힘들어 하고 당하고 그런 역할로 꾸준히 나오고 있죠."

- 그런데 명색이 주인공인 장도리가 요즘 잘 안 나옵니다. 왜인가요?
"반응을 보면, 독자들이 요구하는 내용들이 있어요. 현실 상황 자체가 어렵고 답답하다 보니까, 대통령, 정치권, 관료 등 지금 중요한 자리를 맡고 있는 사람들의 허울을 벗기고 비판적으로 그리는 것을 자꾸 요구하는 것 같아요. 지금도 장도리가 등장해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주변의 이야기들을 할 게 굉장히 많다고 보는데, 그런 이야기들을 할 여유가 없는 거예요. 그것 역시 중요한 이야기인데도 지금 상황에서는 더 분노해야 할 일들이 많으니까 독자들 눈에 안 들어오는 것 같아요."

- 만화를 구상할 때 그림이나 영상, 텍스트, 공연 등 다른 문화 콘텐츠의 도움을 받기도 하시나요?
"다양한 경험을 해야 좋은 만화가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책상에 오래 앉아 있어 봐야 별로 좋은 만화가 안 나와요. 본 게 있어야 뭘 그릴 거 아니에요? 읽은 게 있어야 뭘 쓰고. 책도 많이 읽어야 되고 영화도 많이 봐야 되고 동네도 많이 왔다 갔다 해야 되고, 뭐든 많이 접할수록 좋다고 봅니다. 지금 이 카페(인터뷰 장소)에 와서 전시된 사진도 보고 인테리어도 보고 한 것들이 전부 만화를 그리는 데 도움이 되는 데이터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가끔 태블릿PC를 가지고 나와서 카페에 앉아서 그리기도 해요.

이전에 나온 장도리 선집 표지는 이집트 벽화 분위기로 그렸고, 이번 책 표지는 우리 민화 느낌으로 그렸어요. 제가 옛날 그림들에 관심이 있어요. 그들이 무슨 장식을 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린 게 아니잖아요. 절실한 이유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진심이 담겨 있는 그림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최근에 해외 직구(직접구매)를 통해서 쿠션 커버를 샀어요. 그림이 재밌는 게 많더라고요. 마야제국의 원형 달력 이미지로 만든 게 있어서 샀어요. 그런 게 알게 모르게 제 의식에 남아서, 이번 책 표지 그림도 원형으로 나온 거예요. 어떤 것을 봤을 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받을지는 저도 알 수 없어요. 그런데 분명히 영향을 주긴 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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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리' 박순찬 화백 ⓒ 신동석


"시사만화 구분 필요 없어... 형태·주제 다양하게 더 많아져야"

-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장도리'를 검색하면 '갓도리(god+장도리)'라는 단어가 연관검색어로 뜨더라고요. 독자들이 지어준 극찬의 별명인데요, 소감이 어떠십니까?
"'갓짜장'도 있고, 요즘 여기저기 많이 붙이던데요.(웃음) 아무래도 지금 청년층이 고민도 많고 현실도 힘들다 보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을 거 아니에요. 장도리가 그런 것들을 이야기해주니까 청년들이 고마움을 가지는 것 같아요.(갓도리라는 별명도) 그런 마음을 표현한 거라고 생각되더라고요."

- 칭찬도 많이 듣지만 그만큼 비판이나 항의를 많이 받기도 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전화로 항의하시는 분들도 계셨는데 지금은 없어요. 지금은 댓글 시대인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은 다 댓글로 남겨요. 제 만화로 비판받는 당사자들도 요즘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그쪽 직원이 댓글 다는 일을 할 수도 있고.(웃음) 그분들도 지금은 전화는 안 해요.

그리고 제가 항의 안 받게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사실관계를 만화적으로 표현할 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미묘하게 민감한 부분이 있어요.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어떤 수위를 넘어가면 굉장히 불편해지는 거죠. 저도 어떤 그림을 봤을 때, 당사자가 아닌데도 항의하고 싶을 정도로 불편한 경우가 있어요.

물론 진보란 사회의 일반적인 방식을 조금씩 깨어나가면서 하는 건데, 신문만화의 경우는 보폭이 너무 급진적이면 사람들이 불편하게 받아들여요. 그럴 때 항의하는 거예요. 적절함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나아가는 거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문 만화나 기사에서 '좌파'라는 단어 자체를 못 썼어요. '이 사람 좌파다'라고 하면 '이 사람 빨갱이다' 하는 것처럼 굉장히 공격적인 말로 쓰였어요. 제가 장도리에도 '언젠가 우리도 외국처럼 좌파라는 말도 쓰는 날이 오지 않겠나'라는 내용을 한번 그린 적 있어요. 그런데 지금 정말 그렇게 왔죠. 적절함의 선 안에서, 우리가 하지 못했던 표현들을 조금씩 해나가는 방식을 항상 연구하는 거죠. 그게 참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 흑백이 선명하게 갈리는 이슈들 같으면 오히려 풍자하기가 쉬워 보이는데, 그렇지 않고 애매한 이슈들이 꼭 있습니다. 스탠스를 잡기가 난처하실 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신문에 연재하는지가 참 중요하죠. 예를 들어 이른바 '황우석 사태' 때 제가 과도하게 애국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접근을 경계하고 실체를 알아야 한다는 식으로 그림을 몇 번 그렸어요. 만약에 사주가 확실하게 있는 신문사 같았으면 제가 그렇게 못 그렸을 거예요.

편집국장이 못하게 했을 수도 있어요. 경향신문은 사원주주 회사고, 기자 개개인의 의견을 중시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가능했던 거죠. 한번은 제가 그런 내용의 만화를 그린 날에, 우리 신문에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의 칼럼이 실리기도 했어요. 같이 존중해주는 거죠."

- 이번 책에 실린 하종원 선문대 교수의 해설을 보니 "선집을 발간하는 것은 용기와 소신 없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문장이 있더라고요. 과연 어떤 용기로 이번 책을 내신 건가요?
"안 팔리는데도 책을 내는 용기죠.(웃음) 그래서 출판사에도 참 고마움을 느끼고 있고요. 그래도 1년에 한 권씩 시리즈로 내다 보면 언젠가는 하나의 기록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내고 있어요."

- 사실 정통 신문 시사만화는 지금 많지 않습니다. 만화계의 비중은 웹툰으로 상당히 쏠린 느낌인데요, 시사만화의 오늘날을 어떻게 보십니까?
"일단은 시사만화라는 장르를 구분 지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종이신문을 구독하면서 시사만화를 보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다 인터넷을 통해서 보거든요. 그래서 신문을 안 보고 인터넷만으로 장도리를 접한 분들은 장도리도 웹툰이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시사만화든 아니든 구분할 필요가 없는 거죠.

신문만화를 시사만화로 구분한 게, 옛날에는 규제가 엄청 심해서 만화를 마음대로 그릴 수가 없었거든요. 이를테면 명랑만화에서 누가 놀라서 뛰어오르는 장면이 있어요. 만화적으로 과장해서, 천장을 뚫고 올라가면서 천장에서 쥐들이 쏟아지는 장면을 그렸어요.

그런데 그게 다 규제 때문에 삭제된 거예요. 박정희 시대 만화인데, 새마을운동으로 잘 살게 됐는데 쥐가 쏟아지면 되겠느냐는 게 이유였어요. 실제로 옛날에 천장에 다 쥐 있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만화가 무슨 사회적인 이야기를 해요? 그나마 신문에서 은유적으로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거예요. 그래서 신문만화가 시사만화가 된 거죠.

지금은 그게 아니잖아요. 어느 만화든 시사적인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거예요. 꼭 신문만화만 시사만화가 아니에요. 그런 건 네 컷 만화가 아니라 극화로도 다룰 수 있죠. 지금 시사만화는 형태나 주제를 다양하게 해서 많아지고 있고, 앞으로 더 많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송곳>이나 <미생> 같은 만화들이 지금 많이 생기고 있는데, 굉장히 긍정적인 현상이죠."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터파크도서 웹진 <북DB>(www.bookdb.co.kr)에도 게재됐습니다.

헬조선에 장도리를 던져라 - 장도리의 대한민국 現在史 2014~15

박순찬 지음,
비아북, 2015


#박순찬 #장도리 #헬조선에장도리를던져라 #인터파크도서 #북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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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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