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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할리우드가 <스티브 잡스>를 소환하는 법

[미리보는 영화] 잡스의 어록으로 꽉 채운 영화

16.01.14 15:52최종업데이트16.01.14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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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티브 잡스>의 포스터. ⓒ UPI 코리아


일단 영화 <스티브 잡스>를 보기로 했다면 제 시간에 자리에 앉아 첫 장면부터 집중하길 권한다. 리더필름(영화 시작 전 나타나는 제작사와 투자사의 로고화면)이 지나감과 동시에 쏟아지는 대사에 적잖이 당황할 것이니. 작품 스스로 '말'로 관객을 휘어잡겠다고 공언하는 셈이다.

말과 말이 부딪히고, 말 때문에 사건과 갈등이 생긴다. 이게 전기 영화의 특징이기도 한 만큼 스티브 잡스 어록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저절로 양 귀가 열릴 것임은 두말 할 것도 없다. 그만큼 들을 준비를 할수록 좋다.

스티브 잡스를 바라보는 입체적인 시선

집중해 듣기를 강조하는 건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트레인스포팅> 등으로 아카데미가 인정한 대니 보일 감독과 국내서도 마니아층이 두터운 드라마 <뉴스룸> 각본가 아론 소킨의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혹은 제대로 몰랐던 스티브 잡스의 여러 면을 건들며 그를 입체적인 인물로 제시한다.

IT 기업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그 공과 함께 여러 구설수가 따르는 인물이기도 하다. 빛나는 창의력과 추진력으로 눈에 보이는 분명한 성과를 냈지만, 특유의 독선적인 성격과 상대를 무시하는 거만한 말투 등이 문제다. 그를 담아낸 자서전을 비롯해 여러 지인들이 그 증거다.

영화 역시 이를 간과하지 않는다. 친딸을 눈앞에 두고도 자신을 아빠라 인정하지 않는 비겁함, 함께 애플을 일궈낸 창립 멤버들을 등지게 만들고, 아울러 자신의 직원 수 천명을 해고함으로써 (이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뒤로 하고) 수익을 재고하는 등 논란의 여지를 그대로 묘사했다. IT 업계의 상징인 그는 이 지점에서 세계 자본주의의 첨병 역할을 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영화는 다른 방향으로 관객의 마음을 훔쳐야 했다. 하기야 이미 그에 대한 여러 편의 다큐가 이미 나와 있다. 심지어 스티브 잡스의 영원한 경쟁자 빌 게이츠와 비교하는 다큐도 있으니.

제작진이 택한 건 부성애 코드다. 영화의 핵심이 바로 딸과의 갈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제작진은 그 갈등을 축으로 스티브 잡스의 심리를 묘사했다. 스티브 잡스가 1983년에 발표한 차세대 컴퓨터 리사(Lisa)가 그의 친 딸 이름을 딴 것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지만, 그 지점에서 상상력을 발휘했다. 냉혈한 기업가도 가족을 등에 업으니 그 비판이 누그러질만하다. 관객의 마음을 살 요소를 영화는 영리하게, 그리고 꽤 설득력 있게 갖춰놓았다.

같은 인물을 다룬 서로 다른 영화

영화 <스티브 잡스>의 한 장면. ⓒ UPI 코리아


이야기 자체로는 다소 평이해 보일지 몰라도 연출의 독특함이 더해져 작품을 비범하게 만든다. 아론 소킨이 그간 언론에 밝혔듯 영화는 크게 3막으로 구성돼 있다. 1984년 매킨토시, 1988년 넥스트 큐브, 1998년 아이맥 런칭을 기준으로 영화는 색감과 속도감을 달리한다. 스티브 잡스 업적의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들이다.

각 막의 구성은 동일하다. 잡스가 세 번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긴박한 순간을 묘사하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6명의 캐릭터와 주고받는 감정선이 이 영화의 뼈대다. 혁명을 외치며 야심차게 사람들 앞에 발표를 준비하는 그를 두고 오랜 친구와 옛 여친이, 혹은 그를 믿고 지지했던 이사진과 동료 직원이 흔들어댄다. 사람을 품으라는 그들의 외침을 끝내 외면하는 스티브 잡스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충분히 긴장감을 전달할만하다.

필연적으로 <스티브 잡스>는 같은 인물을 소재로 한 2013년 작 <잡스>와 비교당할 수밖에 없다. 애쉬튼 커쳐가 출연한 <잡스>는 스티브 잡스의 대학 시절을 비교적 세밀하게 묘사해놓고도 정작 그가 애플사에서 쫓겨나 어떻게 절차탁마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빼놨다. 인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서사를 소홀히 한 셈인데, <스티브 잡스>는 그 지점을 잘 채웠다. 1985년 애플을 떠난 스티브 잡스가 넥스트사를 설립한 건 바로 애플로의 금의환향을 위한 초석 마련이기도 했다.

3년의 시차를 두고 등장한 두 영화는 그 우열을 떠나서 또 다른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두 영화의 차이가 곧 할리우드가 한 인물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차를 증명한다. 나아가 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덕목을 가늠할 단서일 수 있다. 전자가 오만과 독선의 결정체임에도 성공한 기업가의 면모를 강조했다면, 후자는 알고 보면 스티브 잡스는 마음 한 구석에 따뜻함을 품은 한 사람이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탄탄한 구성과 유려한 리듬감에 감탄하면서도 영화 후 찝찝함이 남을 수도 있다. 손 안의 혁명을 꿈꾸고 실천하다가 결국 암으로 사망한 스티브 잡스는 과연 진짜 존경받을 만한 현대의 혁명가일까? 아니면 자본 사회 구축에 기여한 훌륭한 첨병일까? '아버지' 스티브 잡스 하나만으로는 쉽게 지워질 수 없는 의문 부호다.

하지만 적어도 하난 분명해 보인다. 그는 (적어도 영화에서는) 충분히 꿈 꿨으며, 그 안에서 자유로웠다.

덧붙이는 글 영화 <스티브 잡스> 관련 정보

각본 : 아론 소킨
감독 : 대니 보일
출연 : 마이클 패스벤더, 케이트 윈슬렛, 세스 로건, 제프 다니엘스 등
수입/배급 : UPI 코리아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22분
개봉 : 2016년 1월 21일
스티브 잡스 애플 아이폰 아이팟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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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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