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그림
사계절
"요건 내 강낭" 손가락으로 꼭 점찍어 놓고 (13쪽)
그림책 <강냉이>를 들여다봅니다. 그림책에 흐르는 모습만 놓고 본다면, 1980년대 이야기인지 1960년대 이야기인지, 또는 1940년대나 1920년대 이야기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를 굳이 살피지 않아도 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시골에서는 언제 어디에서나 수수하면서 조용한 살림이거든요. 딱히 어느 연대를 헤아려야 하는 시골살림이 아닙니다. 씨앗을 심고, 흙을 북돋우고, 밭을 보살피며, 곡식이랑 열매를 거두는 살림은 예나 이제나 같아요. 즐겁게 심고 기쁘게 돌보며 흐뭇하게 거두는 살림은 참말 오늘이나 앞으로나 같아요.
그런데, 그림책 <강냉이>는 한국전쟁 언저리 모습입니다. 이리하여, '강낭알'을 심은 아이들은 저희 보금자리에 머물지 못합니다. 어디론가 떠나야 합니다. 애써 심은 강낭알을 거두지 못한 채 떠나야 해요.
전쟁 불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전쟁 손아귀에서 뛰쳐나와야 합니다. 조용히 흙을 일구며 살던 시골사람은 낫이랑 호미랑 괭이만 손에 쥐면서 수수하게 살림을 지었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총칼 탱크 전투기에 밀려서 보금자리를 잃거나 잊어야 합니다.

▲ 속그림
사계절
어매캉 아배캉 난데 밤별 쳐다보며 고향 생각 하실 때만 (25쪽)총칼하고 탱크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총칼하고 탱크를 젊은이 손에 쥐어 주면서 서로 '죽일 놈'으로 여겨서 참말 죽이라고 시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왜 낫이랑 호미랑 괭이를 지어서 흙을 가꾸지 않고, 온갖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젊은이 손에 쥐어 주고는 서로 죽이고 죽는 끔찍한 전쟁을 일으켜야 할까요?
정치권력이 다르니 전쟁을 해야 할까요? 나라가 달라졌으니 서로 싸워서 한쪽은 몽땅 죽어야 할까요? 정치권력이 다르고 나라가 달라도 똑같이 밥을 먹고 강냉이를 먹는 살림이지 않을까요?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흙내음을 맡으면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나날이 되지 않을까요?
서로서로 사이좋게 모여서 강낭알을 심을 수 있기를 빌어요. 강낭알을 네 밭에도 심고 내 밭에서 심으면서 여름 바람이 차분해질 무렵 함께 오두막에 모여서 강냉이를 폭 삶아서 맛나게 잔치를 벌일 수 있기를 빌어요. 네 강냉이도 맛있고 내 강냉이도 맛있는 기쁜 살림을 나눌 수 있기를 빌어요. 오순도순 어우러지는 두레랑 품앗이가 이 땅에서 새롭게 살아날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저마다 제 밭을 가꾸면서 사랑할 수 있기를 빌어요.

▲ 속그림
사계절
강냉이 - 개정판
권정생 시, 김환영 그림,
사계절,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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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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