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한 경고문 '택시에서 신발 벗지 마시오'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 ⑨] 윤이상 음악당 그리고 평양 교통보안원

등록 2016.01.13 21:53수정 2016.01.13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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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그리고 10만인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해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일본 순회강연을 마치고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북녘의 수양딸을 찾아 북한을 여행했습니다. 또 2015년 10월 초에도 북한을 한 번 더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연재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를 통해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하려 합니다. - 기자 말

이 장면, 분명히 어디에선가 봤다

대동강변의 평양호텔은 평양대극장 맞은 편에 자리 잡고 있어 비교적 교통량이 많은 곳이다. 손님들을 태운 택시가 우리가 서 있는 쪽으로 서서히 다가온다. 우리 일행을 본 운전기사는 멈추지 않고 그만 가버린다. 그러나 승객을 한 사람만 태운 택시는 여지없이 우리 앞에 멈춰 선다. 그런데 김혜영 선생과 말을 주고받은 후에 그냥 가 버린다.

우리 옆에 중년의 여성이 나타나 택시를 기다린다. 두 사람을 태운 택시가 그 사람 앞에 서자 그 중년의 여성이 "개선문"이라고 외친다. 그러자 가는 방향이 같은지 바로 차에 올라탄다. 택시 합승이다.

드디어 빈 차가 다가와서 창문을 내린다. 김혜영 선생에게 방향을 묻는다. "고려호텔"이라는 말을 듣자 안 된다며 이내 옆 사람에게로 옮겨간다. 아마도 근무를 마치고 차고 혹은 집으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빈 차는 오질 않고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만 늘어난다. 이번에는 택시가 아닌 승용차가 길거리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한 사람에게 다가간다. 기다리던 사람은 몇 마디 주고받더니 이내 차에 올라탄다. 자가용 영업이다.

나는 일전에 이 모습을 분명히 본 적이 있다. 장소도 모습도 똑같다. 대극장, 호텔,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 모두 다 같은 건물, 같은 사람들이다. 예전 서울의 모습을 떠올리며 일으킨 착시현상인가 보다.


처음 타본 북한 택시

택시가 모자라는 게 분명하다. 당연히 합승 행위와 자가용 영업이 자생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자가용이 흔하지 않으니 아마 기업소 소속의 승용차들일 게다. 아무리 원리원칙을 준수한다고 하지만 적어도 오늘(2015년 6월 26일) 내가 목격한 이 장면을 보고 나니, 어떤 사회도 교과서대로 살아가는 것 같지는 않다. 언젠가는 "고려호텔 따불"이라는 말이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택시가 급격히 늘어날 것은 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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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택시에 오르는 안내원 김혜영 선생.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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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북한 택시 운전기사 손성철씨. ⓒ 신은미


겨우 빈 차를 세웠는데 운전기사는 우리 행선지를 묻는다. 김혜영 선생이 "해외동포 손님을 모시고 있는데 좀 갑시다"라고 말하자 "어서 타십시요"라는 대답이 들려온다. 처음 타 보는 북한의 택시. 나와 김혜영 선생이 뒷자리에, 그리고 남편이 앞자리에 앉았다.

우선 운전기사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 짧게 깎은 머리,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단정한 차림이다. 백미러로 뒤를 힐끗 보더니 고개를 옆으로 돌려 남편에게 말을 붙인다.

"해외동포시라는데 오데서 오셨습네까?"
"미국서 왔습니다."
"야~, 몬 길 오셨습네다."

이분은 평안도 사투리가 엄청 심하다. 집중해서 들어야 할 정도다. 투박한 말씨지만 백미러에 비치는 표정이나 몸짓이 정겹게 느껴지는 사람이다. 말을 할 때는 싱글싱글 웃는 얼굴이다. 호기심도 많아 남편에게 이것저것 묻는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며 평양 자랑을 하는 등 택시 운전기사 아저씨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쉴 틈이 없다.

택시요금은 기본요금이 2km에 196원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km당 49원이다. 이 요금은 외화를 기준으로 표시된 요금이다. 그러니 기본요금은 2km에 약 2달러(한화 약 2360원) 그리고 km당 약 50센트(한화 약 590원)다. 야간에는 2배다. 호출비가 km당 50센트인 걸 보니 호출시에는 결국 왕복 거리에 해당하는 돈을 내야 한다.

"냄새 빠질 때까지 기다릴 때도 있습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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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내 소개글과 요금 안내문. ⓒ 신은미


남편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린다. 내가 왜 그런지 묻자 남편이 안내표를 가리키며 "당신 신발 벗지마"라고 한다. '봉사 안내'라고 적혀 있는 스티커를 보니 '차 안에서 신발을 벗지 마십시오'라는 경고 문구가 있다. 남편이 운전기사에게 물었다.

"차를 타고 신발을 벗는 손님이 있습니까?"
"신발이 다 뭡네까. 더울 땐 꿰딘(뚫어진) 양말을 벗는 사람도 있습네다."
"양말 좀 벗으면 어때요. 그냥 놔 두시죠."
"아, 냄새가 날 때가 있단 말입네다. 운뎐(운전)하기도 한심하디만 다음 손님 태우기 뎐(전)에 문 다 얄아(열어)놓고 냄새 빠질 때까지 기다릴 때도 있습네다."

그러면서 그 냄새가 얼마나 심한지 과장을 해가며 익살을 떤다. 요금은 "두 딸라(2달러)". 남편이 "야간인데 2배 아닌가요?"라고 묻자 "아, 일 없습네다"라며 어서 내리란다. 4달러를 던져놓다시피 하고 차에서 내렸다. 즐겁고 마음 편한 택시 경험이었다.

류동열 그리고 김달삼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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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강연 시 재일동포들이 준 플래카드. ⓒ 신은미


전날 저녁 치료를 받고 오히려 더 뻐근하게 느껴졌던 왼팔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많이 나아졌다. 옷을 입는데 왼팔의 통증도 훨씬 덜하다. 기분이 상쾌하다.

가방에서 재일동포들로부터 받은 선물을 꺼내 들고 방을 나섰다. 교토 강연을 마친 뒤 받은 선물인 것으로 기억한다. 한반도 깃발에 통일의 염원을 새긴 플래카드다. 당시 재일동포들로부터 '북에 가거든 우리의 마음을 담은 이 플래카드를 펼쳐 동포들에게 보여주라'는 부탁도 함께 받았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호텔 로비로 내려와 펼쳐 들었다. 앞으로 이 플래카드를 가지고 다니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펼쳐들고 재일동포들의 '조국통일 염원'의 마음을 보여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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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애국렬사능'. ⓒ 신은미


2015년 6월 27일, 오늘은 '애국렬사능'이라는 곳에 간다. 2012년 5월 북한 여행 당시 '혁명렬사능'이라는 곳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은 독립군(항일빨치산)들을 안장한 북한의 국립묘지다. '애국렬사능'은 해방과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에 이바지한 사람들을 안장한 곳이라고 한다.

내가 이곳에 방문 요청을 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남편이 류동열 장군의 묘소를 참배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광복군 참모총장이었던 류동열 장군은 돌아가신 시아버님의 친구 아버님이셨다. 또 남편에게 류동열 장군의 아들은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고종 6촌 매부다.

둘째 이유는 내가 한 소설가로부터 받은 메시지 때문이었다. 제주 4·3항쟁을 소재로 소설을 쓰고 계신 분인데, "북에 가면 김달삼이라는 분의 자료를 구해줄 수 있겠느냐"라는 부탁을 받았다. 덕분에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던 제주 4·3항쟁에 대해 조금 더 배우게 됐다. 뿐만 아니라 전혀 모르고 있었던 김달삼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게 됐다.

김달삼 선생에 대해 알아봐달라는 내 부탁에 김혜영 선생은 "김달삼에 대한 자료를 구하는 건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대신 애국렬사능에 그분도 안장돼 있는 걸 알아냈다"라고 한다. 우리는 바로 애국렬사능 방문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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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애국렬사능'에 안장된 류동열·김달삼의 묘비 ⓒ 신은미


류동열. 나는 이분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다만 남편으로부터 들어서 알게 된, 광복군 참모총장이셨다는 사실 그리고 이 분과 남편 집안과의 관계에 대해 들은 게 전부다. 김구 선생님을 비롯한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미군이 제공한 C-47 수송기를 타고 임시정부 자격이 아닌 개인의 자격으로 치욕에 가까운 귀국을 해야만 했단다. 이분들 가운데는 광복군 대위 장준하 선생님도 함께 계셨다는 것도 이 일화를 들으면서 알게 됐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묘비에 적힌대로 1950년 10월 18일에 돌아가셨다면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가 아닌가. 광복군의 참모총장이셨다는 분께서 어떻게 이곳에 모셔져 있는지…. 남편에게 물으니 아무런 대답이 없다.

김달삼. 불과 22세의 나이로 제주 4·3 항쟁 당시 빨치산 유격대 총사령관이었다고 한다. 후쿠야마 육군 예비 사관학교 출신으로 일본군 초급장교(소위)였다는 그가 어떻게 반제국주의 민족혁명에 뛰어들게 됐는지 궁금하다. 하긴 굳이 사상이나 이념을 들먹일 것도 없다. 순진한 마을 사람들이 무지막지하게, 무자비하게, 잔인하게 학살당하는 것을 보고 피가 끓지 않았다면 심장이 없는 사람일 테니까. 그에 대한 소설이 출간되면 꼭 읽어봐야겠다.

평양 튀김빵 먹어보니 후회가 밀려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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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내리쬐는 평양의 거리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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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화관의 록차랭면. ⓒ 신은미


애국렬사능을 빠져나와 평양 시내로 들어왔다. 강렬한 햇살이 내리쬔다. 시내를 거니는 여인들은 하나같이 햇볕보다 더 화려한 양산을 들고 있다. 해당화관에서 시원한 '록차랭면'을 먹고 난 뒤, '좀 휴식을 취하자'는 내 강력한 주장에 일단 호텔로 돌아왔다. 오후 일정까지는 2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그러나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 하는 남편과 박 교수가 거리 산책이라도 나가잔다.

호텔에서 나와 평양의학대학 쪽으로 가는 도중 가판대를 발견한 박 교수가 반가워하며 김밥을 사려고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곳은 북한돈만 받는 곳이란다. 북한돈을 소지할 수 없는 외국인은 물건을 살 수가 없다. 박 교수의 안내원 송영혜씨는 자기가 사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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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길거리 판매대에서 튀김빵을 사들고.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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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길거리 판매대 가격표. ⓒ 신은미


가격을 보니 아이스크림, 팥빙수, 과일빙수가 100원이다. 한국돈으로 약 15원 정도다. 박 교수는 김밥을, 나는 야채를 넣어 기름에 튀긴 빵을 들고 평양의과대학을 지나친다. 어려서 스케이트장에서 먹었던 군만두맛과 크로켓맛이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이다. 따라나서길 참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후회가 밀려온다. "두 개 사달라고 할 걸…."

천재 음악가 윤이상을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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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있는 윤이상 음악당. ⓒ 신은미


길을 걷다보니 '윤이상 음악당'에 닿았다. 우리나라가 낳은 천재 작곡가 윤이상. 지난 세기 최고의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세계적인 음악가다. 그의 고향은 경상남도 통영.그러나 그는 고향땅 통영에는 와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런 그를 기리는 기념관이 이곳 평양의 한복판에 우뚝 서 있다.

일명 동백림(동베를린)간첩단 사건. 지금으로부터 거의 50년 전의 일이다. 유럽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과 유학생들이 관련된 간첩단 사건이란다. 그때 당시 국제법을 위반해 가면서까지 중앙정보부(지금의 국정원)에 의해 강제송환된 이들 중 최종심에서 간첩죄가 인정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윤이상 선생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모진 고문을 받고 징역을 살던 그는 차관 제공을 중단하고 국교 단절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독일(당시 서독) 정부와 국제사회의 눈총 때문에 2년 만에 출소해 독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독일로 돌아간 그는 세계 음악사에 남은 많은 작품을 인류에 선사했다.

그는 서양 악기와 음악 체계로 동양적인 음색과 미학을 곡에 담아냈다. 그의 음악적 영감은 어디로부터 비롯된 걸까. 강서대묘의 사신도를 보려고 북한에 간 그는 조상들의 고분 벽화 앞에서 무슨 세계를 봤을까. 도교, 기독교, 불교를 넘나들었던 그가 세상에 전하려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분명 그의 음악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을 것이다.

한국 입국금지가 된 그가 생전에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배를 빌려 조국의 해안가로 다가가 멀리서나마 통영을 바라보다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를 기리는 기념관이 그의 고향 통영에도 있다고 하니 넋이라도 위로가 될까.

단속 걸린 화물기사의 집요한 승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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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학생들의 하굣길 풍경. 모자챙을 동그랗게 구부렸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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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굣길 평양 아이들. 디즈니 캐릭터가 눈에 들어온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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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아이들의 하굣길 풍경. ⓒ 신은미


발길 닿는 대로 여기저기 걷는다. 하교 시간인지라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중학생 이상으로 보이는 학생들은 붉은 머플러를 두르고 있다. 약간 '건달기'가 있는 남학생은 모자챙을 동그랗게 말아서 쓰고 폼을 잡으면서 걸어간다. 여자 초등학생들은 하나같이 만화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가방을 메고 있다. 대부분이 디즈니 만화 캐릭터다. 인민군공훈합창단 소속의 모란봉악단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삽입된 곡을 연주한다니 놀랄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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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위반으로 여성 교통보안원 단속에 걸린 화물트럭 운전기사. ⓒ 신은미


호텔에 다다를 무렵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한 화물차 운전기사가 교통위반 단속에 걸린 모양이다. 운전면허증을 받아들고 있는 여성 교통보안원에게 항의도 해보고 사정을 말하기도 한다. 화물차 조수까지 차에서 내려 합세한다. 운전기사는 위반한 적이 없다고 하고, 보안원은 위반이라고 설명한다. 보안원의 태도는 단호하고 차분했다.

2013년 8월 여행 당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남성 교통보안원에게 단속되면 사정이 통할 때도 있는데 여성 교통보안원에게 걸리면 국물도 없다"는 것이다. 일단 티켓을 받으면 벌금을 내고 벌점을 받는다고. 게다가 교육까지 받아야 한다니…. 나 같아도 할 수 있는 데까지 사정을 해보겠다.

한 번쯤 눈감아 주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결판이 나지 않는다. 지하도를 건너 호텔로 향하며 뒤를 돌아보니, 결국 티켓을 발부받는 것 같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방에 올라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커튼을 열어젖히고 바깥을 내다봤다. 아직도 승강이를 벌이고 있다. 운전기사도 참 끈질기다. 하소연을 끝까지 들어주는 교통보안원의 인내심도 참 대단하다.

마침내 포기한 운전기사가 돌아가려고 하자 교통보안원은 거수경례로 상황을 마무리 짓는다. 항의도 해보고, 통사정한다는 건 그 행위가 통할 수도 있다는 뜻 아닐까. 사람 사는 사회는 어디나 다 비슷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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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화물트럭 운전기사. ⓒ 신은미


#평양 #북한 #신은미 #윤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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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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