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하면 '치맥'? 이제 다른 얘기를 하자

[허시명의 술 생각 ⑨] 맥주를 빚자

등록 2016.01.14 12:55수정 2016.01.1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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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뉴스를 통해 종종 듣게 되는 게 맥주 소식이다. 그 바닥에서는 적과 동지가 따로 없다. 금융 자본이 소용돌이치는 곳으로, 회사 인수 합병과 브랜드 매각이 무시로, 무차별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도 맥주 시장에 큰 지각 변동이 있었다. 세계 1위 맥주회사 안호이저부시 인베브가 124조 원(약 710억 파운드)을 들여 세계 2위 업체인 사브 밀러를 인수했다. 세계 맥주 시장에서 20.8%를 점유하던 안호이저부시 인베브의 매출은 9,7% 점유율의 사브 밀러를 흡수하면서 30%를 넘어섰다. 맥주 공룡이 또 다른 공룡을 집어삼킨 사건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인수 합병 거래로 기록됐다.


OB맥주를 둘러싼 자본의 '머니 게임'

그런데 이게 우리와 무관한 해외 소식일까? OB맥주의 주인이 안호이저부시 인베브다. 그렇다면 우리 일일까? 답하자면, 남의 일도 아니고 우리 일도 아닌 묘한 상황이다. 자, 보자. 안호이저부시 인베브의 전신인 인터브루 회사는 1998년에 두산그룹으로부터 OB맥주를 인수했다가, 2009년에 안호이저부시를 합병하는 과정에 자금 운용을 위해 사모펀드 컨소시엄 회사에 OB맥주를 1조 원 정도의 이익을 남기고 2조3000억 원(18억 달러)에 매각했고, 2014년에 6조1700억 원(58억 달러)에 OB맥주를 재인수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공룡이 토해놓은 먹이를 다시 집어삼키는 난해한 자본 게임이 OB맥주를 두고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현재 OB맥주의 국내 맥주 시장 점유율은 진로의 유통망까지 합친 Hite 맥주를 제치고 50%를 넘어섰다.

OB맥주는 우리 자본이 아니고, Hite 맥주는 우리 자본이다. 그렇다면 OB맥주는 우리 것이 아니고, Hite 맥주는 우리 것일까? 사실 이런 질문 자체가 우습다. 자본의 위치는 또 언제든 바뀔 수 있다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너무 분리돼 있다는 점이다.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시작된 맥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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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을 넣어서 맥즙을 끓이고 있다. ⓒ 허시명


지구인들이 마셔대는 알코올음료의 80% 정도가 맥주고, 한국인들이 마시는 알코올음료의 55% 정도가 맥주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맥주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알코올음료가 됐다. 사실 맥주는 유럽 자본주의 문명이 세계를 제패하면서, 세계 음료로서 군림하게 된 것이다. 이 맥주판에서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수동적인 소비자로만 존재해왔다.  

막걸리는 집에서도 빚을 수 있지만, 상품화되는 것은 양조장에서 빚어진다. 김치는 상품화돼 있지만, 주로 집에서 담가 먹는다. 김치처럼 농산물을 재료로 만든 발효 음식의 하나가 술이다. 맥주라고 다르지 않다. 유럽의 막걸리가 맥주다. 맥주는 보리나 밀로 만드는 곡주다. 막걸리는 쌀이나 밀로 만드는 곡주다. 똑같은 곡물로 만드는 저알코올 탄산음료가 맥주이고 막걸리다. 강원도의 엿술은 맥아로 쌀이나 옥수수를 당화시켜서 누룩을 넣고 빚는다. 엿술은 막걸리와 맥주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막걸리나 엿술은 우리 것인데 맥주는 우리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짙다. 맥주를 막걸리보다 훨씬 많이 마시게 된 지도 30년이 돼가는 데도 말이다. 이는 맥주가 무슨 재료로 어떻게 빚어지는지, 그 제조법과 변동의 역사를 우리가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인상이다.

한국 맥주는 일본 맥주의 이식으로부터 시작하였고, 국내 자본으로 전환된 뒤로도 수입 재료와 장비에 의존했고, 이제는 자본마저 의존해 맥주를 만들다보니 빚어진 결과다. 이러다 보니 생산과 소비는 철저히 분리되고, 생산에 유리한 측면만 발전해 단일 제품과 단일한 맛을 중심으로 대량 생산, 대량 유통, 대량 소비되는 상황이 굳어졌다.

다행히도 생산자와 소비자의 간격을 좁히는 작업이 최근 크래프트 맥주 바람 속에 들어 있다. 이태원의 경리단길에서 시작된 맥주 바람은, 단순하게 외국의 다양한 맥주를 맛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대자본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의 맥주를 만들겠다고 건립된 작은 맥주 양조장이 새로 20여 개가 생겨났다. 또한 외부 판매가 가능해진 하우스맥주 집들도 시설을 늘려 적극적으로 외부 판매를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은 맥주 제조장에 특별한 제조법을 제시해 주문 생산하는 맥줏집들이 생겼다.

취미 삼아 빚던 맥주, 문화를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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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제조를 하는 작은 공방.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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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된 맥주를 병에 담고 있다.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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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에 세워진 소형 맥주 제조장, 바이제하우스. ⓒ 허시명


우리는 이들의 노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통주와 맥주, 막걸리와 맥주의 각을 세워, 맥주가 우리 것이 아니라고 하는 순간, 외국 자본은 우리의 시장과 입맛을 고스란히 가져간다. 와인은 지역과 기후의 영향을 받지만, 맥주는 필요한 원료를 얼마든지 조달할 수 있고, 훌륭한 기술을 얼마든지 접목시킬 수 있다. 그런 시도가 한국에 일자리를 찾으러 온 젊은 외국인들에 의해서, 경리단길에서 시도됐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경계가 없어진 기호식품을 두고, 어떤 문화를 더할 것인가에 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막걸리처럼 우선 맥주를 직접 만들어보는 경험이 축적돼야 한다. 맥주는 다양한 제조용 키트가 개발돼 있고, 인터넷으로 구매할 수 있다.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바람을 일으킨 것도, 직접 맥주를 만들어보는 마니아들의 출현에 의해서 가능했다. 그들이 집에서 맥주를 만들다가 공방을 만들고, 여기서 분화돼 맥주바나 소형 맥주 제조장을 만드는 것으로 성장해갔다. 대자본만이 맥주의 길을 간 것이 아니라, 취미 삼아 맥주를 빚던 이들이 생산자가 돼, 소비자의 입장에서 맥주를 빚으면서 맥주 문화가 풍성해졌다.

우리에게는 보리밭이 있다. 보리가 있으면 보리술이 존재할 명분도 있다. 한때 남도에서 맥주보리인 두줄보리를 재배하고, 이를 수매해 맥주 회사에 공급한 적이 있다. 맥주회사에서는 대량 생산하는 맥주의 고른 맛을 낼 수 없다면서 꺼렸지만, 국내 보리를 수매하면 맥아 수입에 혜택을 줘서 구매에 응했었다.

하지만 이런 제도도 사라지자, 남도에서 맥주보리 재배 지역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보리밭이 없어진 건 아니다. 소통의 공간이 사라진 것일 뿐이다. 소통의 공간은 보리가 움트는 겨울 들판의 주인들, 즉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야 한다.

[지난 기사]

⑧ 50년 썩혀 먹는 술, 이것이 대륙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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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조선 선비들이 맛본 술맛 궁금하다면
#술 #맥주 #하우스맥주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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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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