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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남류'와 '어남택' 사이, '정환택'을 찾는 이유

<응답하라 1988> '남편찾기'가 만들어내는 상상의 틈

16.01.15 10:28최종업데이트16.01.1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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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당신은 최선을 다했다.

쉬는 날 없이 계속되는 야근으로 힘들어하는 동일(성동일 분). 이런 모습에 일화(이일화 분)는 안쓰럽기만 하다. 선우(고경표 분)는 다시 만나보면 어떻겠냐는 보라(류혜영 분)에게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보라는 당혹스러워한다.

한편, 택(박보검 분)은 정환(류준열 분)을 만나기 위해 정환이 근무하는 사천으로 내려가는데….

<응답하라 1988>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19화 텍스트 예고를 보면 우리는 그 어디에도 성덕선(혜리 분)의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2회를 남겨둔 <응답하라 1988>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마도 '덕선'의 선택이 아닌가 하는데, 여전히 응팔은 덕선의 마음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정환택'을 상상하게 하는 이야기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 tvN



팬들은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 '어남택(어차피 남편은 택)' 사이에서 방황하며 편을 나누어 차라리, 없다면 내가 (자료를)만들겠다는 생산자적 마인드(D.I.Y)로 적극적인 증거들을 미디어 내부에서 확산시키고 있다.

그러나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방황하는 정환과 택, 그리고 덕선의 삼각관계에서 덕선은 왠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정말 응팔은 덕선의 '남편 찾기'에 대한 이야기가 맞긴 한 것인가.

<응답하라 1988>에서 택은 '덕선이 없으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아이다. 좋아하는 것이 '바둑'과 '덕선'뿐인 택에게 고백을 포기하는 것은 어쩌면 고통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 택은 정환을 위해 고백을 포기한다.

정환 또한 마찬가지다. 정환은 1화부터 덕선에 대한 마음을 확실히 보여주는 유일한 캐릭터다. 정환은 택이 좋아하는 사람이 덕선인 걸 알고는 그 마음을 접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전까지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매번 빠지지 않고 나왔던 '동성애'코드는 없지만, 정환과 택은 서로를 위하여 희생하며 끊임없이 덕선과의 관계에서 물러서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사실 <응답하라 1988>은 남성 동성 사회에서 그들의 연대를 위해 '여성이 어떻게 교환되는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텍스트이기도 하다. 이전의 응답하라 시리즈가 삼각관계 내부에서 일정의 주체성을 가진 여자 주인공이 '남편'을 선택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면, <응답하라 1988>은 덕선의 감정선보다는 정환과 택이 '덕선'이라는 교환대상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남성성과 우정을 테스트하는 이야기에 더 가깝다.

특히 16화 <인생이란 아이러니>에 나온 택의 '고백 미루기' 혹은 '고백 포기'는 정환과 택이 덕선에 대한 감정을 서로에게 넘겨줄 만큼 서로를 아끼고 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였다.

혹자는 정환과 택이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15화에서 정환은 택의 운동화 끈을 묶어준다. '운동화 끈 묶어주기'는 이성애적 구애의 클리셰다)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정환이 택의 신발끈을 묶어주는 장면. ⓒ tvn


'남편 찾기', 상상의 틈을 만들어내는 힘 

<응답하라 1988>은 마지막회까지 '덕선의 남편은 누구인가'를 고민하게 만들어야 할 목적을 가진 텍스트다. <응답하라 1988>은 시청자들이 남편을 추리해나가는 과정에서 스토리 내부에 상상의 틈이 많아지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덕선의 감정선은 20화 내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 때문에 드라마는 나머지 회차분에서 다른 사람들의 감정선에 집중하게 되는 경향을 보인다.

사실, <응답하라 1988>은 덕선과 정환, 택을 중심인물로 설정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보라와 선우, 선영(김선영 분)과 무성(최무성 분) 커플의 분량이 이들의 이야기보다 더욱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가족 스토리'에 부합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남편찾기'의 긴장감을 지속시키기 위한 장치이기도 한 것이다.

한 누리꾼(보보)이 만든 '정환택' 패러디 영상 갈무리. ⓒ 보보


미디어 문화 연구자인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는 '모든 수용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텍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모든 수용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텍스트는 아마도 그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텍스트일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응답하라 1988>은 응답하라 시리즈 중 가장 많은 인기를 얻으며 종영까지 단 두 회를 남겨놓고 있다. 그리고 그 결말이 '어남류'이든 '어남택'이든 그 어떤 상황도 시청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시청자들은 끝날 때까지, 혹은 끝난 이후에도 끊임없이 드라마의 '상상의 틈'을 크게 벌려 더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것이 응답하라 시리즈가 가진 힘이며, 사람들이 끊임없이 불만틀 토로하면서 '어남류' '어남택' 혹은 그 너머의 '정환택'을 찾는 이유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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