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추워야 제맛, 이제야 강원도가 웃는다

[강원도 겨울풍경] 겨울의 진수를 맛볼 수 있게 해주는 태백산

등록 2016.01.23 15:10수정 2016.01.25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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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비로소 제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모양이다. 올 겨울 들어 겨울이 겨울답지 않고 봄 날씨처럼 너무 순한 것에 분명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올 겨울에도 혹독한 추위를 기대했던 강원도는 날씨가 예년 같지 않았던 탓에, 매년 어김없이 개최해 오던 겨울축제들을 줄줄이 취소해야 하는 사태를 겪었다.

'홍천강 꽁꽁축제'와 '인제 빙어축제' 같은 경우, 강에 얼음이 얼지 않아 아예 축제 개최를 포기했다. 강원도에서 이런 일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겨울 추위가 매섭기로 유명한 철원에서도 한탄강에 얼음이 제대로 얼지 않아 '얼음트레킹 축제'를 여는 데 애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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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 얼음트레킹. 송대소 얼어붙은 강 위에 모여 있는 사람들 (2013년 1월 촬영). ⓒ 성낙선


이 축제는 꽝꽝 얼어붙은 강 위를 걸어 다니며 강줄기를 병풍처럼 에워싼 기암절벽을 눈앞에서 감상하는 데 큰 묘미가 있다. 그런데 축제가 열리던 첫날, 날씨가 의외로 포근했던 탓에 사람들은 강 위를 걷는 대신, 강 위에 걸쳐 있는 다리와 보행로를 걸어 다녀야 했다. 철원이 그 정도니, 다른 지역은 더 말해 무엇하랴.

이 추위가 좀 더 일찍 찾아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그랬더라면 예정된 축제들 모두 애초 계획했던 대로 순조롭게 진행됐을 것이고, 갑자기 축제를 취소하는 일로 지역 주민들이 경제적 손실을 봐야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날씨가 갑자기 급강하하는 데서 생기는 문제가 없지 않다. 그래도 겨울은 역시 추워야 제 맛이다. 시기를 놓친 축제들은 다시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그나마 철원에서 열리는 얼음트레킹 축제가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는 모양이다. 한탄강이 두껍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철원은 비로소 겨울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시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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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유일사 등산로 초입. 눈 덮인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 ⓒ 성낙선


태백산에서 찾아보는 겨울의 진수

철원 말고도, '겨울 추위'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으로 태백을 빼놓을 수 없다. 태백은 요즘 한창 '태백산 눈꽃축제'를 준비 중이다. 태백은 고원 지대에 위치해 있어, 같은 날씨라도 다른 지역보다는 좀 더 기온이 낮은 곳에 속한다. '따뜻한 겨울 날씨'에도 평창이 별 무리 없이 축제를 개최할 수 있었던 것과 같다.


그런데 태백에서는 그동안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 고민이다. 그런 와중에도 축제 개최 일을 코앞에 두고 다시 대지가 얼어붙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눈꽃축제는 예정대로 진행될 모양이다. 눈꽃축제에 쓰일 눈 조각 작품들이 거의 완성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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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눈축제 준비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 ⓒ 성낙선


눈으로 만든 조각 작품과는 상관없이 사실 태백에서는 이미 축제가 진행 중인 것과 마찬가지다. 겨울로 들어서는 동시에, 축제도 함께 시작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날씨가 아무리 따듯하다고 해도, '태백산'에서 맞이하는 겨울은 늘 혹독한 데가 있기 때문이다.

겨울의 진수를 찾아볼 수 있는 곳으로, 태백산만큼 적당한 곳도 없다. 태백산은 이맘때가 되면 늘 '눈'으로 덮여 있다. 대한민국 국민치고 사진이든 실물이든, 눈꽃으로 뒤덮여 있는 태백산 정상을 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태백산'하면 흔히 겨울 눈꽃을 떠올린다. 하지만 태백산을 진짜 태백산답게 만드는 건 따로 있다.

'겨울바람'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한겨울에 태백산에 올라본 사람은 금방 알게 된다. 태백산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별 생각 없이 산에 올랐다가 두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칼바람을 맞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이 버쩍 든다. ' 이 산의 주인이 누군지 진작 알아 뵀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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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쓸어넘긴 것 같은 주목. 태백산 능선으로 부는 바람의 세기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 성낙선


바람과 일심동체를 이룬 태백산 주목

태백산에서 보게 되는 겨울 풍경이 상당히 독특한 데가 있다. 그게 사실은 거의 대부분 태백산 위로 부는 겨울바람 때문에 생긴 풍경들이다. 태백산 눈꽃도 겨울바람 없이는 제멋을 간직하기 어렵다. 차디 찬 바람이 하늘에서 내려온 눈송이들을 나뭇가지 위에 단단히 들러붙게 만든다. 그렇게 해서 태백산 눈꽃은 해가 쨍쨍 내리쬐는 한낮에도 나뭇가지에 얼음처럼 단단하게 달라붙어 있을 수 있다.

'태백산 주목'은 바람과 거의 일심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은 주목은 살아생전 '바람'과 한 몸이 된 결과 생겨난 작품이다. 그 몸에 겨울철 칼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주목처럼 바람을 잘 기억하고 있는 나무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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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와는 또 다른 기품을 자랑하는 주목. ⓒ 성낙선


태백산 정상 부근에서 고사한 주목들이 무슨 기념비처럼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얀 산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나무가 한 순간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 풍경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살아서 붉은 색을 띠고 있는 주목 역시 아름답기는 마찬가지다. 그 몸통이 하얗게 말라죽은 주목과 달리 온통 붉은 근육질을 자랑하는 껍질로 뒤덮여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나무를 가슴에 안고 있으면, 그 안으로 붉은 피가 감돌고 있는 것 같은 따듯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처럼 주목은 산 나무와 죽은 나무가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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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주목과 산 주목의 극명한 대비.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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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락을 이루고 있는 주목들. ⓒ 성낙선


그런데 사실 주목은 산 나무와 죽은 나무가 서로 한 몸이다. 한 나무가 반은 죽고, 반은 살아 있다. 그런 나무가 부지기수다. 그리고 죽은 주목 곁에는 세상 풍파를 얼마 겪지 않은 젊은 주목이 자라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젊은 주목은 죽은 주목의 분신일 가능성이 높다. 그와 같이 주목은 '부활'을 거듭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새로 생명을 얻기 시작한 주목 또한 겨울철 칼바람과 함께 한 몸이 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건 불문가지다.

겨울철 산행에 주의해야 할 것들

태백에서는 오는 22일부터 이달 말일까지 축제가 계속된다. 계속해서 눈이 적게 오는 경우에, 태백산에서 온 세상이 하얗게 빛나는 광경을 찾아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백산 정상까지 올라가 눈꽃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너무 섭섭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태백산은 하얀 눈꽃 말고도 우리를 매혹시키는 풍경이 더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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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단, 그 너머로 멀리 천제단이 ㅂ바라다 보인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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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천제단. 천제단 안에서 몸을 수그린 채 바람을 피하고 있는 등산객들이 보인다. ⓒ 성낙선


태백산에 가거든 특히 '주목'을 주목하라고 말하고 싶다. 주목을 진가를 찾아보고 싶을 때는 유일사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를 택할 것을 권한다. 태백산은 등산로가 전체적으로 평이한 편에 속한다. 등산 초보자들도 편하게 오를 수 있는 산 중에 하나다. 그렇다고 너무 만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겨울엔 특히 더 그렇다.

산 능선에서 마주치는 칼바람이 상상을 초월한다. 산 능선 아래와는 극단적으로 다른 날씨를 보여준다. 그때 겨울철 산행에 필요한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으면 곤란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태백산에서 고사한 주목을 보면, 산에서 맞는 겨울 찬바람이 얼마나 매서운 것인지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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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눈꽃 터널을 지나가는 등산객. ⓒ 성낙선


산 능선으로 올라서기 시작하면서, 직각으로 불어오는 칼바람에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찬바람을 막을 수 있는 옷가지와 모자 등이 없을 경우, 상당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극단적인 경우, 생명에 위협을 느낄 수도 있다. 덥다고 옷을 함부로 벗어서도 안 된다. 땀이 식으면서 체온을 더 빠르게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바람이 심하게 불 경우, 산 정상인 장군봉과 천제단에서는 10분 이상 버티기 힘들다. 서둘러 산을 내려가야 한다. 철원에서는 얼음 트레킹을 최대 2월 초까지 즐길 수 있다. 얼음트레킹은 날씨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사전에 철원군청 관광과 등에 전화를 걸어서, 먼저 트레킹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떠나는 것이 좋다.
덧붙이는 글 철원군청 관광과(033-450-5559)
#태백산 #주목 #눈꽃축제 #철원 #얼음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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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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